김태호 총리지명자(그리고 두 명의 장관 내정자)의 자진사퇴로 이명박 대통령은 또 한 번 초췌한 모습으로 몰렸다. 하기야 김대중 대통령도 장상씨가 낙마했을 때 똑같은 곤경에 처했으니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만의 불운이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우리사회 엘리트군(群)에는 웬만한 흠결 없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아니냐 하는 난감한 사정 그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 하는 관대한(?) 기준이 무너지고 “털어도 먼지 안 나야 한다”고 하는 엄격한 공인(公人) 심사기준이 설정되기에 이른 우리의 사회사적 변화다. 그 과도기에서 지난날의 방식과 오늘의 방식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허술한 여과(濾過) 기능도 문제다. 야당이 두 눈 부릅뜬 채 벼르고 있다는 사실, 오늘의 세상에선 공인의 신변을 묻어둘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몰랐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정책은 우파 아닌 좌파와 야당의 호령에는 번번이 밀려 주기로 작정한 타입 아닌가? 이런 궁색한 판국에 김태호 지명자의 행적 정도는 굳이 야당이 아니더라도 청와대 스스로 알려면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이것이 어째서 총리 지명 이후에 와서 야당의 ‘폭로’에 의해서야 드러났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사청문회의 기준을 국회의원들한테는 왜 적용하지 않느냐 하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남의 흠결을 그렇게 속속들이 파헤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 자신들도 “털어서 먼지 한 점 안 나야” 할 것 아닌지? 죄인을 단죄하는 판사부터가 순백(純白)의 청결함을 견지해야 하듯이 말이다. 공천 심사 때, 선거운동 기간에, 공천 신청자와 후보들의 흠결 여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심사하는 걸름 장치와 절차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가?
‘젊은 총리’라는 발상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유럽도 미국도 40대 주도의 세대교체를 수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젊을수록 먼지가 점점 더 안 나야 할 터인데, 요즘엔 늙은이나 젊은이나 그 점에서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보수’에만 먼지가 많다고들 해서 ‘진보’가 집권한 적도 있지만, ‘진보’의 먼지 역시 난형난제(難兄難弟)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우리 사회에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직을 지망해 그야말로 아무나 지도층이 되려 한다는 느낌도 든다. 대명천지 공공 지배 엘리트를 "아아무나 하나"? 적당히 흠결 만들며 편의대로 살았으면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방밥이라 할 수 있다. 왜 굳이 지도적 공직까지 해 보야 한다는 것일까? 한 번 쯤 생각해 봄즉한 일이다.
“죄 없는자 저 여인을 돌로 쳐라” 했을 때 선듯 나선 자들이 없었다는 성경의 말씀이 있다. 그렇다고 흠결 있다는 사람을 그냥 내세우자고 대놓고 감싸기도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무슨 수로?
이래저래 과도기의 이중고(二重苦)인가? 우리 사회가 이 과도기를 비교적 빨리 통과해서 한결 발전된 수준으로 껑충 뛰어 올라갈 수 있기를 대망할 따름이다. 총리 파동, 어찌 되었건 ‘씁쓸한 뒷맛’이라 해야 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