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정치인들 제례시작전 악수만 건네고 자리떠 빈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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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의 대표적 사액[賜額]서원인 연산면 임리소재 돈암서원 2010년도 춘향제가 3월 28일 오전 11시 김명규 논산시유림회장 및 전국에서 모인 기호학파의 후예 및 지역유림 등 20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됐다,
조선시대 성리학과 예학의 대가인 문원공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선생을 기리는 이날 춘향제는 임성규 논산시장이 초헌관을 맡아 봉행했고 제관이 제물을 바치는 봉진례(奉進禮), 비단을 바치는 전폐례(奠幣禮), 술잔을 바치는 초헌례(初獻禮)등의 전통적인 유교제례방식으로 진행됐다,,
돈암서원은 1660년(현종 1)에 사액(賜額)된 호서지방(충청도)의 대표적인 서원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한편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 창건.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예학파(禮學派)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1993년 10월 18일 사적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을 주향하고, 그의 제자로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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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돈암서원 춘향제가 시작된 오전 11시 돈암서원 광장에는 경향각지에서 모인 기호학파의 후예들과 지역유림 등 200여명이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논산지역의 모 유력정당 당협위원장을 비롯해 오는 6,2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각급 선거 후보예상자들이 검은넥타이까지 착용하고 나타나 지역유림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정작 숭례사에서 제례가 시작되자 마자 총총히 자리를 떠 지역유림들의 빈축을 샀다.
이를 지켜본 한 유림의 간부는 선거를 앞두고 얼굴알리기에 급급해 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매번 계속돼온 이들 지역정치인들의 이같은 행태는 천박하기 짝이없는 무례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앞으로는 본 제례에 참석하기 싫으면 아예 돈암서원 문턱도 넘어오지 말아야 할것 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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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돈암서원 춘향제가 거행된 숭례사에는 논산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백성현 씨와 신임 김준수 양촌농협조합장이 끝까지 학생석에서 끝내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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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 (金長生 1548∼1631(명종 3∼인...)
조선 중기 문신·서예가.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본관은 광산(光山). 대사헌 계휘(繼輝)의 아들.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올랐으며, 창릉참봉(昌陵參奉)·정산현감(定山縣監)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조정랑(戶曹正郎)으로 공을 세웠으며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가 되었다. 1602년(선조 35)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고, 이후 익산(益山)군수·회양(淮陽)·철원(鐵原)부사를 지냈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에 연루되어 심문받았으나 누명을 벗은 뒤에 관직을 사퇴, 연산(連山)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장령(掌令)에 보직되었고 사업(司業)·상의원정(尙衣院正)·집의(執義) 등을 거쳐 공조참의(工曹參議)·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그후 다시 사퇴, 낙향하였으나 1625년 특명에 의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행호군(行護軍)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로서 군량미 조달에 힘쓰며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였다.
1628년 형조참판(刑曹參判)이 되었으나 사퇴하고 교육에만 전념하였다. 송익필(宋翼弼)과 이이(李珥)의 문인으로서 예학(禮學)과 성리학(性理學)을 배웠고 예론(禮論)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아들 집(集)에게 계승시켜 조선예학의 태두로서 예학파의 주류를 형성했다.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등의 유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서인(西人) 중심의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루었다. 1688년(숙종 14)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고 안성(安城)의 도기서원(道基書院), 연산(連山)의 돈암서원(遯巖書院) 등 10개 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서체는 왕법(王法)을 기초로 조맹부·문징명(文徵明)법을 가미하였으며 저서로 《경서변의(經書辨疑)》 《의례문해(疑禮問解)》 《서소잡록(書疏雜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