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이상 칩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대룡산 근처라는 말만 듣고 나섰지만 새로 난 경춘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는 그의 산골마을을 쉽게 가게 해주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 '손학규' 이름 석자를 대니 촌로가 "이 길로 쭉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자동차 하나 지나갈 비포장 외길로 조금 오르니 산 초입에 아담한 집이 있다. 주변에 다른 민가는 없었고 인적도 드물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이 시기에 이 곳에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무위(無爲)의 정치인가, 그렇다 해도 칩거 기간이 너무 길다.
문도 없는 집으로 들어섰는데 조용하다. 아무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누구시냐"는 말이 들린다. 부인 이윤영씨다. 쳐다보니 몸뻬 차림으로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신원을 밝혔는데 지나가는 과객을 대하듯 표정이 심드렁하다.
손 대표를 찾자 "김대중 전 대통령 삼우제를 갔다가 오자마자 산에 갔다"고 한다. "언제 오시냐"는 물음엔 "한 시간도 걸릴 때도 있고 두 세시간 걸릴 때도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왔다가 앉지도 못하고 돌아간 기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긴 지난 1년 간 인터뷰 기사가 한 번도 없었다.
오후 4시 조금 넘었는데 볕이 영 뜨겁다. 목이 마렵다. 뒤 뜰 수도꼭지를 틀자 지하수가 나온다. 나름 시원하다.
마을로 내려가 한 바퀴 돌고 올라왔다. 기척이 있다. "오셨냐"고 하자 손 대표는 "누군가, 샤워 좀 하고 나갈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뒤뜰 낡은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조금 있느니 밀짚모자를 쓴 그가 왔다. 농부 같다. 편안한 표정인데 객을 맞이하는 게 그 역시 심드렁하다. 부부가 다 그러니 정말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인가?
"도 닦으시는 거냐, 주공(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으로 기틀을 닦는데 큰 역할을 한 고대 중국의 표상)처럼 세월을 기다리시는 거냐"는 말을 삐딱하게 툭 던졌다. 웃는다. "여의도를 떠나 바로 이 곳으로 왔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이 곳, 저 곳을 다녔다. 그랬더니 전국 조직을 만든다는 얘기가 들리더라. 그래서 춘천으로 왔다"고 한다. 누구 집인지 궁금해하자 조그만 사업을 하는 먼 일가의 집이라고 했다. "언제 (여의도로) 오실 거냐"고 묻자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가겠다"고 했다. 이거 뭐 선문답도 아니고, "삼우제는 가셨데"라고 다시 물었다. "가족들만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안 가려 했는데 김 전 대통령 쪽에서 오라고 해서 갔다"고 했다.
뭐라 또 물으려 하자 뜰 옆 닭장으로 간다. 닭장 안팎에는 오골계 토종닭 칠면조 병아리 등 얼추 50마리 이상이 와글거린다. 모이도 준다. 오솔길에서 알 품고 있는 오골계도 보여준다. 비를 맞을까 봐 부인이 덮어준 작은 상 아래 오골계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참 닭들이 사는 얘기를 한다. 오골계는 횟대에서 자고 다른 닭들은 박스 위에서 자는데, 잘 곳이 많은데도 비집고 들어가 함께 잔다는 닭들의 집단주의도 설파한다.
다시 낡은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낚시를 던져본다. "출마설이 나오는 곳이 수원 어디냐"고 묻자 "장안구던가"라고 한다. "(장안구 선거법 위반에 대한) 재판은 어찌됐느냐"는 말에 "연기된 모양이던데"라는 답이 온다. "10월 재보선 이전에 결론이 나느냐"고 묻자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그의 시선이 완전히 여의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한 그이기에 소회를 물었다. "차이가 있더라. 노 전 대통령 조문은 정서적, 감성적 기류가 강했는데 DJ 조문은 이성적이고 깊이가 있었다. DJ 삶에 대한 성찰, 이해가 있다는 진한 느낌이 다가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순리론을 펼쳤다. 한국의 민주화가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시대 흐름을 탄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었다. 1970년대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의 민주화, 80년대 남미의 민주화, 86년 필리핀 시민혁명, 87년 한국의 직선제 도입, 이어진 동남아 민주화와 90년대 동구권 민주화가 일련의 흐름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DJ YS를 비롯 수많은 노력과 희생을 빼놓고 한국의 민주화를 얘기할 수 없지만 시대정신, 시대흐름도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역사의 순리라면 우리 지도자들이 시대 흐름에 적합했다는 말이냐"고 묻자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름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가 나왔다고 본다"고 답했다. 일단 김대중, 김영삼 두 거물을 제쳐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게 평가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본다"고 단언하며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컸다. 이회창 후보는 구정치의 상징으로 비쳐졌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다고 보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인 뒤 "시대흐름을 탔다고 본다"면서 "결과는 두고봐야 하지만 경제대통령을 바라는 국민 요구가 MB와 맞닿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서를 달았다. 경제적 성과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여의도를 멀리한다, 그런 태도가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로 돌아가는 흐름은 옳지 못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것이 과거 회귀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서 정치보복의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았느냐, 뭔가 매끄럽지 않았다"고 했다. 이 밖에도 그런 징후는 여기저기 많다고 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선진국 정치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정도인데 최근 20년 간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 동안 주요 선진국들의 집권세력은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기조 위에 서있었다는 것이다. 클린턴 미국 민주당 정권,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정권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클릭 이동,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질서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기를 꺼려하는 듯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아버지 부시-클린턴-아들 부시에 이르기까지 레이건의 흐름이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민주당 정권이었지만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을 상당부분 차용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권이 대처 이래 취해온 경제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논리였다. 독일의 쉬뢰더, 메르켈 정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논쟁이 따를 수 있는 주장이었지만, 그 논리의 저변에는 지금 그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드러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하는지, 좀더 확대하면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나아가 한국은 어떤 발전모델을 취해야 하는지가 그가 천착하고 있는 테마인 듯 했다.
그가 설파한 논지대로라면 본인이나 민주당이 지금보다 더 왼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신자유의적 기조가 그의 해답일 수는 없었다. 이미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그 한계가 명료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오바마 민주당 정권을 전혀 새로운 차원의 흐름이라고 규정한 게 그런 의미였다.
"영어 관용어 중에 'enough is enough'(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말이 있다. 그 동안의 자유방임적 시장주의가 한계를 드러내 더 이상 시대정신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오바마 정권은 이런 신자유주의 한계를 토대로 탄생한 전혀 다른 정권이다. 사실 누가 오바마가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선거 당일에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는 유색인종이 우세하다가도 막상 뚜껑을 열면 열세이던 백인이 이기는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당선됐다. 그 자체가 역사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의료보험 개혁도 넘어야 할 여러 산 중 하나다."
일본의 경우도 민주당의 단독 집권이 현실화한다면 이 역시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과거 제1야당인 일본 사회당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민주당이 이제 집권하게 됐다는 부연설명을 했다. 이 역시 중도주의에 대한 선호를 엿보게 한다.
결국 그가 몰입하고 있는 주제는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시대정신을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운데로 수렴되는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그의 고민은 앞서 말한대로 신자유주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대안이 무엇이냐에 꽂혀있었고 아직 그 해답은 나오지 않은 듯 했다.
얘기가 더 진전되려는 순간, "전화 왔어요"라는 부인의 외침이 들렸다. 손 전 대표는 휘적휘적 집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지금 몇 시냐"고 나에게 물었다. 주변을 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시계는 7시 반을 넘고 있었다. 손 전 대표는 "이제 저녁을 먹어야지, 막국수와 닭갈비 중에서 무엇이 좋을까"라고 물었다. 막국수를 하자고 답하면서 "그냥 집에서 김치에 밥 먹는 게 더 좋은데"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아이구, 나도 밥을 잘 못 얻어 먹어"라고 말했다. 하하, 즐거운 넋두리였다. 시중에 떠도는 남자들이 이혼당하는 사유 중 하나인 '세끼 밥 달라고 하는 경우'를 떠올리게 했다.
각자 차를 타고 한 참 양구 쪽으로 가니 춘천에서 알아준다는 막국수 집이 있었다. 수육과 모듬전을 놓고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을 때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인사한다. 한 교사는 아예 자리로 와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역설한다. 손 전 대표는 수첩에 정성껏 메모를 했다. 역시 정치인이었다. 막국수까지 다 먹고 자리를 일어서자 밤 9시를 넘고 있었다. 식당을 나서는데 마침 밤 마실 다녀온 주인 할머니가 손 전 대표의 손을 잡고 한참 얘기를 한다. 다정한 인사를 나눈 후 그는 나와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게 돌아오시라"고 덕담을 했다. 미소로 답하며 그는 집으로 향했다. 또 다시 내일 그는 산을 오를 것이고 닭 모이를 줄 텐데 과연 시대정신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이글은 인터넷한국일보 이영성 부국장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찾아 인터뷰한 내용으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