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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들이 무서워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3-11 11: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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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젊은 여자들이 무섭습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젊은 여자들의 무례하고 억세고 난폭하고 이악하고 영악한(또 비슷한 말 뭐 없나?) 모습과 행동에 기가 질립니다. 개성미 지성미 발랄함을 합치고 줄여서 개지랄이라고 한다던데, 이 이상한 뉘앙스의 말이 저절로 생각나게 만드는 여자들을 참 많이 보고 겪게 됩니다.

10여 년도 더 전, 꽤 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공중전화를 걸고 부스를 나오는데 20대 여성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며 “무슨 전화를 그렇게 오래 써요?”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나는 공중전화든 개인전화든 전화를 오래 쓰는 사람을 경멸ㆍ혐오ㆍ타기(또 비슷한 말 뭐 없나?)하는 사람입니다. 그 날도 아주 짧게 통화를 했습니다. "아니, 그게..." 갑자기 당한 일이라 말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하는 동안 그녀는 나를 밀치고 공중전화 부스의 문을 꽝 닫더니 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해서 멍청하게 서 있는 동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더운 날씨에 차례를 기다리다가 화가 났나 봅니다. 그래도 그렇지. “야, 너 좀 나와 봐. 이걸 그냥 확…” 속으로는 그런 말을 했지만 막상 그녀와 싸웠다가는 길거리에서 나만 망신 당할 게 뻔하고 이길 자신도 없어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습니다.

3년 전 회사 사무실에 들어갈 때의 일입니다. 사무실 앞의 유리문에는 보안장치가 돼 있어 신분증이 있는 사람만 열 수 있습니다. 보안장치에 신분증을 갖다 대고 문을 열었을 때, 안에 있던 젊은 여자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문을 연 것은 난데. 그녀가 내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정말 싸가지 없군”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녀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는지 조금 지나서 “여~보세요” 하고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이미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 나는 얼른 남자화장실로 가 대변기의 문을 열고 숨었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습니다. 설마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교양 없는 말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 숨어 있다가 이젠 안전하겠다 싶을 때 밖으로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은행에서 볼 일을 보고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왼쪽의 닫힌 문 앞에 서 있던 아가씨가 내가 연 문으로 확 나갔습니다. 내가 손님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은행 직원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데, 도대체 그녀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도 않았나 봅니다. 처음 당한 게 아니어서 그 날은 “허 참”, 그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동안 여자들, 그것도 젊은 여자들에게 못된 짓을 여러 번 했습니다. 꼴불견 행태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눈에 띕니다. 문이 열리면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밖에서 밀치고 들어오고, 내리는 사람이 다 나가기도 전에 안에서 ‘닫힘’ 단추를 누르는 경우를 매일같이 보게 됩니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거의 모든 여성이 다 그럽니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일부러 '닫힘' 버튼을 가로막고 서 있기도 합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닫힘’ 버튼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버튼을 누르는 여성을 보았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안 눌러도 곧 닫힙니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똑 같은 행동을 하기에 나중엔 손을 쳤습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 나와 그녀 둘밖에 없었는데, 화가 난 그녀는 찢어지게 나를 흘겨보고 나갔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아가씨들(오피스 레이디라고 해야 더 좋아할 것 같음) 중에는 빨대를 꽂은 음료를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너 명이 커피나 주스를 하나씩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시끄럽기도 하지만 꼭 음료를 옷에 흘릴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그런 경우 3,000원짜리 점심 먹고(정확하지 않음) 5,000원짜리 음료 마신다(정확하지 않음)고 속으로 흉 보면서 ‘에이구,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슨 큰 일을 한다고…’ 이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나는 성질이 참 못돼 먹은 것 같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도 꼴 보기 싫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타는 여자도 보기 싫어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옆 자리에서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여성을 지켜봤더니(물론 곁눈질로) 컵을 꼬깃꼬깃 구겨 발치에 살짝 내려놓더군요. 내릴 때 그냥 나가기에 “아, 이거 잊어 버렸어요. 갖고 가세요”하고 컵을 집어 주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나는 대개 책을 읽는 척 하다가 잠자는 게 보통인데, 그 날은 그녀를 감시하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젊은 여성의 행동을 보며 정말 무섭다고 느낀 사례는 이런 것입니다. 어느 날 명동 지하상가로 들어가는데 가방을 멘 여중생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하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고개도 들지 않고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 아이는 유리문 앞에 오자 치마 입은 다리를 들어 문을 발로 밀어 차고 나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기억을 나는 정말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delete’가 안 됩니다. 그게 다른 어떤 모습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무슨 일인가 저지를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한 여성에게만 시비를 거는 걸까? 꼴불견 행태는 젊거나 늙거나 남자들의 경우에도 많이 보게 되는데, 비겁하게 여성의 행태만 문제 삼는 이유가 대체 뭘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여성, 특히 젊은 여성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더 우아하고 교양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었습니다. 1857년과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입니다. 특히 1908년엔 섬유공장 여성노동자 1만여 명이 선거권과 노조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뉴욕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2년 뒤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의 제창에 따라 이 날이 ‘세계 여성의 날’로 제정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일요일 101년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3월은 봄의 시작이어서 세계 여성의 날 행사는 봄철의 첫 축제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익 향상을 생각해야 할 의미 깊은 날을 보내면서 겨우 젊은 여성이 무섭다는 소리나 하고 불쾌한 기억이나 떠올리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기 싫은 건 어디까지나 보기 싫은 겁니다. 남성 중심적 시각인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이라도 좀더 아름답고 우아하고 교양 있고 부드러웠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참 무례합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한국일보에서 30여년간 근무하는 동안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주필로 일하며 신문에 ‘임철순 칼럼’을 연재한다. 사회현상에 대한 참신한 시각과 함께 감성적인 터치로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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