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1-18 08:52:59

기사수정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아이가 한국에 있다보니 제 마음도 온통 아이와 함께 한국에 가 있습니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둘째가 3주간을 예정으로 지난 2일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서울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무엇보다 눈구경은 언제쯤 할 수 있을지 날마다 조바심을 치다못해 숫제 아침마다 한 주간의 일기예보를 몽땅 확인해 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따스하게 대해 줄까, 혹시 한국 사회에 대형사고가 터지면 어쩌나’ 하면서 마치 적어도 3주간은 내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할 것처럼 같잖고도 유별한 생각을 연신 품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돌보고 있는 친정 엄마에게 ‘뻔질나게’ 전화를 해대면서 ‘일과 보고’를 듣는 일이 요즘 저의 일상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은 뭘 먹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특별한 소감은 없는지, 그리고 그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시시콜콜 다 물어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호주의 한여름에서 겨울의 한가운데로 갑자기 곤두박질친 기온, 혼잡한 교통과 번화한 거리,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 완전하지 않은 한국말 따위로 제 딴엔 긴장이 되었는지 며칠 전에는 그만 몸살로 앓아 누웠다고 합니다.

예정에 없던 돌발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아까운 시간을 축내게 되었다고 안달복달해봐야 소용없는 일, 어서 털고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그 날밤 아이가 전화를 해서는,

“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뭐가… ? 몸이 아프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아무래도 집이 아니니까 마음이 그런가 보다. 빨리 나아야 될텐데. “

“아니, 아파서 그런게 아니고 한국 와서부터 계속 마음이 무겁고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정말.., 미안했어요, 엄마.”

이민 2세대로서 격심한 정체성 혼란에서 비롯된 사춘기의 성장통이 비로소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나 보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아이의 말꼬리가 흐려지는 듯 싶었지만 듣는 저는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 속 썩이는 거라면 몰라도, 자식이 부모 속 썩이는 일이야 물이 낮은대로 흐르는 이치만큼이나 예삿일이니까요. 자식이란 원래 부모 애 먹이고 미안한 일 하라고 태어난 존재이지 않습니까. 여북하면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라고까지하며, ‘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고 할까요. 부모노릇은 어차피 밑지는 장사하자고 좌판 벌이는 것이니 사과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일인데, 아이의 그 말을 들은 후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릿아릿 아파왔습니다.

비대한 자아로 꽉 찼던 마음자리에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몸짓, 산다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평범함 속에서 삶의 내밀한 의미를 찾아나서려는 시도 등, 10대 끄트머리에서 아이가 철이 들어가는 징후를 ‘엄마 미안해’ 라는 그 한마디에 모두 담았대서가 아닙니다.

언젠가 대화 중에 ‘군인은 전쟁 자체를 일으킨 책임은 없지만 열중해서 싸우는것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존재’라며 ‘내가 만들지도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은 이 세상에 그저 던져졌지만, 그래서 약이 오르지만 내 삶과 내 행동의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걸 결국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던 아이의 실존적 각오가 새삼 대견하게 여겨져서만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실은 내 자식을 낳아 기르는 동안 꼭 한 번은 내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깨달음이 아들의 고백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날 이후 귓바퀴에 걸려 떠나지 않고 있는 아이의 말을 입속으로 가져와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엄마 미안해…’

얼마 전에 읽은 엄마에 관한 소설 한 편에는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그 아픈 이야기’라는 평이 달려 있었습니다.

참 고맙게도 저는 ‘아직 늦지 않은 이들’ 에 속해 있습니다. 게다가 제 아이의 고백이 엄마에 관한 ‘슬픈 위로’보다는 ‘큰 깨달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절실함과 참모습을 느낄 때에는 이미 그것이 사라져 버린 후이거나 그리움과 기억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을 때이기가 쉽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아직 직접 말을 전할 수 있는 '살아계신 엄마'가 있습니다.

“엄마 미안해, 다 미안해.”

더 늦기 전에 우리 아들이 제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저도 엄마에게 하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민주당 9대 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관련 당론뒤집고 의장단 꿰찬 조용훈, 민병춘 ,김종욱 3인방에 " 당원권 정… 민주당  중앙당  윤리위는  9대 논산시의회  후반기  원구성과  관련해  지구당  당협의  결정사항을  뒤집고  상대당과  야합 [?]  의장 , 운영위원장 ,행정자치위원장  세  의정 주요직을 거머쥔  조용훈 의장 ,  민병춘  행정자치위원장  김종욱  운영위원장  등 3...
  2. 논산시의회 최초 지역구 여성의원 당선 기록 세운 최정숙 전의원 내년 지방선거 "가" 선거구 시의원 출마 … 논산시의회  최초의  지역구  출신 여성의원 [ 7대] 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최정숙  [69]  전 의원이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논산시의회  가 선거구 [ 연무읍 ,강경읍 .채운면  양촌면, 벌곡면 ,은진면 ,연산면  가야곡면 ]시의원  출마입장을  밝혔다. 가야...
  3. [프로필] 민주 황명선 최고위원…3연속 논산시장 지낸 친명계 초선 [프로필] 민주 황명선 최고위원…3연속 논산시장 지낸 친명계 초선(서울=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충남 논산시장을 내리 세 번 지낸 친명계 초선 국회의원.국민대 토목환경공학과 졸업 뒤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당 사무처장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새천년민주당 소...
  4. 건양대병원 총파업 돌입…"희생 강요 말고 노동조건 개선해야"(종합) 건양대병원 총파업 돌입…"희생 강요 말고 노동조건 개선해야"(종합)총파업 지켜본 환자·보호자, 일부는 지지하거나 항의하기도환아 부모들로 구성된 단체, 대전시 비판 기자회견 열어(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대전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이어 대전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건양대병원 노조도 28일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에 돌입...
  5. 논산시 25년도 수시인사 단행 . 농업기술센터 강두식 농업지도관 승진과 함께 기술보급과장 발탁 눈길 ,… 논산시는  2025년도  수시인사를 통해  농업기술센터 등  8명의  직원에 대한  승진및 전부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수시인사를 통해  전임과장의  이직으로  공석이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에는  강두식  지방농촌지도사를  지방농촌지도관으로  승진과 동시에  직...
  6. "측천무후와 이세적 " "적당히 대처하고 원만히해결하라 " 측천무후와  이세적에  얽힌  일화에서  각박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매사에 적당히 대처하고  원만히ㅡ해결하라"는  처세훈을  배운다.이적[李勣]의  원래의 이름은 서세적(徐世勣)으로, 당 왕조 초기를 대표하는 이름 높은 명장들 중 한 명이다. 선배였던 이정이, 죽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
  7. 논산 철도건널목서 열차·화물차 접촉 사고…60대 감시요원 숨져(종합) 논산 철도건널목서 열차·화물차 접촉 사고…60대 감시요원 숨져(종합)(논산=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29일 오전 9시 44분께 충남 논산시 부적면 호남선 논산∼연산 구간 철도건널목에서 무궁화 열차와 건널목에 진입한 1t 화물차 간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주변에 서 있던 철도건널목 감시요원인 A(60대)씨가 사고 충격으로 튕겨 나간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