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저는 ‘금녀(禁女)구역’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의 마음, 그들의 순정’을 목도했다고 하면 뜬금없이 무슨 유행가 가사 읊는 소리냐고 하실 테지요. 거기에 한술 더 떠 여자 마음 알아주는 남자 중의 남자, 진정으로 멋진 사나이들을 무더기로 만났다고 하면 어떤 궁금증이 드실지요.
제가 다녀온 곳은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아쉬운, 자식 땜에 살지, 안 그러면 버얼~써 갈라섰을, 젖은 낙엽마냥 떼어내도 자꾸 달라붙는’ 변변찮아 보이는 우리의 남편들이, 본래의 남성성을 확인하고 가정 내 위치를 회복하도록 돕는 자리였습니다.
들어보셨겠지만 한국의 한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두란노 아버지 학교>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에 이어 지난 달에는 서부 도시 퍼스에서 열렸습니다. <두란노 아버지 학교>는 지난 1995년에 개설된 이래 지난 2007년까지 국내외에서 12만 5천여명 (약 2천 회)의 수료자를 배출했고 군부대와 교도소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참가자 및 진행자, 봉사자들 일체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움직이는 행사에 저는 취재를 핑계삼아 ‘여성 금지’라는 전통을 깨고 4일간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주저하면서, 더러는 용기있게 드러내는 속엣말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감하며 참가자들의 면면을 지켜보노라니, 일정이 진행되는 내내 ‘남자들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에 줄곧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배 밑바닥에 서서히 물이 스며들 듯 가정에 알 수 없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자발적으로 등록했다는 한 젊은 아버지의 혜안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등록비를 내줘서’, ‘아버지 학교에 안 갈 거면 이혼하자고 하는 데야 어쩔 수 없었다’며 참가 동기를 절반 쯤 농담 섞어 전하는 중년의 남편들에게서도 내면의 갈급함이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원망을 품은 채, 정리되지 않은 혼란과 상처를 가슴 한켠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채, 아무 일 없었노라며, 이제는 다 잊었노라며, 용서했노라며, 허위허위 위태롭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한 참가자의 안간힘은 모두의 가슴을 시리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혐오했던 아버지의 태도를 자신 또한 자녀들에게 그대로 반복하며 가정의 저주를 대물림하고 있는 상한 영혼들, 아내와는 기왕 틀어져 버렸으니 핏줄인 자식들하고라도 끈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하지만 관계 맺기의 전후 순서가 뒤바뀐 탓에 매번 헛발질로 지쳐버린 가장들도 해묵은 감정을 털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원래 그렇게 서먹하고 서로 할 말이 없는 관계’라는 자포자기식 단절감이, 프로그램 중에 ‘아버지께 편지 쓰기’를 통해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경험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가슴으로 울음 우는 부자간 화해의 기회를 선사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비로소 ‘제대로 떠나 보내는 의식’을치르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과감히 들춰내고 낯설었던 자아와 조우하며 비로소 통합된 자신을 맞대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나란히 참가하여 “그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진정한 사과에, “꼭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냐”며 울먹이는 아들, 서로의 편지를 읽어내리며 20년간 견고하기만 했던 부자간의 담을 헐어내던 몸짓은 연출되지 않은 한편의 드라마로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들로, 어느 덧 장성한 자식을 둔 아버지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 속에서 ‘매듭 자리’를 찾아가는 남자들의 여정은 그렇듯 순수하고 치열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저 또한 깨어진 가정을 신앙을 통해 되찾은 경험이 최근에 있었기에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우리 시대 한국 남성들, 남편들의 내면세계를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모르는 이들 속에 섞여 가슴으로, 눈물샘으로 솟구치는 순도 백 퍼센트의 눈물을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맘껏 흘려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요. 맺힌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반전된 분위기에서 터져나오는 폭소는 또 얼마나 짜릿하고 상쾌했던가요. 제가 그날 경험했던 진정한 남성의 세계는 순수한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이웃의 가정이 무수히 깨지고 가족간의 관계가 뒤틀리고 있음에도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혼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요새는 흉도 아니다. 혼자 살면 이꼴저꼴 안보고 오히려 편하다 ’는 말들을 쉽게 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세간에 떠도는 말들 중에 정작 자신에게 위안이 되고 자기 상황에 적용되는 말이 있더냐고. 상실의 아픔으로 가슴이 산산이 깨어져 나가는 와중에 남들이 쉽게 하는 소리가 한 조각이라도 와 닿더냐고.
<아버지 학교>같은 '그 딴 데' 한번 다녀왔다 해서 거꾸러진 가정이 당장 바로 서냐고 비아냥거리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위태로운 남편들로부터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버지 학교에서 배웠다’라는 고백을 듣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도 들어서 오히려 무감각해져 버린 ‘가족의 소중한 가치’와 ‘가정의 회복’을 진정 열망하는 남편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그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런 작은 노력들이 우리 사회에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온갖 시시껍질하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세태에 글쟁이의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소식 한 가지를 전하고 싶었기도 하구요.
삭풍이 심신으로 파고드는 매서운 세모입니다. 여건과 상황이 어려울수록 삶의 참된 행복을 꼭 붙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