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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라, 힘을 빼 !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11-18 17: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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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식 솜씨가 좀 있는 편입니다. 아줌마들끼리 뽑은 ‘우리 동네 요리 3인방’에 낀 적도 있고, 이따금 이웃들의 손님 상차림 도우미로 불려갈 때도 있습니다. 얼추5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별 도움 없이 혼자 치러 본 경험에다, 주부 경력이 20년이니 이제는 집에 찾아오는 분 접대하는 일로 겁이 나지는 않습니다.

아는 사람 중에 요리사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살던 도시 브리즈번에서 음식을 제일 맛있게 하는 한식당의 주방장입니다. 그 이가 쉬는 날, 제가 저녁 초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도 몇 사람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었던 터라 미리 사다놓은 이틀치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리사 손님을 부른 날, 다른 때와는 달리 유독 음식 맛을 제대로 내질 못했습니다. 하루 전날 똑같은 음식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수없이 해봐서 척척 해내던 것조차 그 날은 맥없이 망쳐버렸습니다.

그 이는 “나도 뱃 속부터 요리사였던 건 아니라”며, “내 손으로 안 한 건 뭐든 맛있다”는 말로 저를 위로했지만, ‘한 음식’ 한다는 주위의 칭찬에 익숙해져 있던 저로서는 황망하니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손님들이 돌아간 후 제 나름으로 분석해 본 ‘패인’은 바로 ‘힘이 들어간 탓’이지 싶었습니다.

손님 중에 ‘요리사가 끼어있다’는 사실에 사뭇 긴장이 된 데다 이참에 프로의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언감생심, 치렛말이라도 전문가보다 솜씨가 낫다는 소리를 기대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요, 공자 앞에서 문자쓰기며, 세탁기 앞에서 빨래하기라더니, 감히 주방장 앞에서 음식 솜씨 뽐내려 했으니 결국에는 평소 실력도 발휘하질 못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자랑과 의욕이 지나쳤습니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울 적에 “손가락에 힘을 빼라”는 소리를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악에서는 ‘목에서 힘을 빼야’ 제대로 발성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발버둥을 칠 때는 가라앉더니 ‘온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물 위에 드러누워버리자 저절로 물에 뜬 경험도 있습니다.
스윙이 필요한 운동에서 동작이 자연스러우려면 ‘상체에 힘을 빼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요.
초보의 글쓰기는 장황스럽고 미사여구가 난무하는 것으로 티를 냅니다. 역시 힘이 잔뜩 들어간 탓입니다. 군더더기가 줄고 표현이 간결해지기 시작하면 이제 힘 빼기에 들어갔다고 보면 됩니다.

골프는 ‘힘 빼 3년, 힘 줘 3년’이라고도 하지만, 어떤 분야이건 수없이 ‘힘 빼’를 되뇌이는 걸 보면 무슨 일에든 초보 단계일수록 힘이 잔뜩 들어가기 마련인가 봅니다.

‘힘 빼는 데 10년이 걸리고, 힘을 주어야 할 순간을 아는 데 또다시10년이 걸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살이의 원리도 매사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리며 용을 써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젖먹던 힘마저 뺀다면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간결한 글쓰기처럼 삶을 단촐하고 담백하게 꾸리기 위한 힘 빼기 작업을 시작하고, 힘 빠진 유연함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상당한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에 지속적으로 ‘힘을 빼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역설은 ‘삶의 매순간에 깨어있음으로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고 제 나름의 정의를 내려봅니다.

요즘 저는 수많은 언쟁과 시시비비, 타인과의 대립각 속에서 섣부른 판단과 정죄, 요지부동의 자존심을 내세우던 ‘힘 들어간 삶’을 내려놓는 일에 집중하고자 노력합니다.

제 나이가 생의 초보 단계를 진즉 벗었어야 할 때이기도 하고, 이즈음 1년의 막바지이기도 할 뿐더러, 무엇보다 날개없이 추락하는 하수상한 시절이 힘 빼기를 재촉하는 듯 해서입니다.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고 모든 길이 막힌 것 같은 때일수록 힘부터 빼고 볼 일입니다. 그렇게 한 10년 힘을 빼다보면 또다른 10년을 맞아서는 힘을 주어야 할 순간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않겠습니까.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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