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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은 시성(詩聖) 괴테의 교양소설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이야기 시(Ballade)이며, 원 제목은 “그대는 아는가, 그 나라(Kennst du das Land)”입니다. 시의 첫 연을 풀어써 제목으로 삼는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 레몬 꽃 피는 나라를(Kennst du das Land, wo die Zitronen blhn)"이 될 터인데 우리에게는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나라가 남쪽에 있는 레몬 꽃 피는 나라이고, 이탈리아를 뜻하는 것이니만큼 잘못된 번역은 아닐 것입니다.
같은 소설에 나오는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Nur wer die Sehnsucht kennt)”도 유명한 시인데, 4편의 ‘미뇽의 노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개하려는 “그대는~”은 유랑 악단의 나이어린 무희인 미뇽(Mignon)이 단장의 명을 어겨 채찍으로 맞으려할 때 젊은 수행자인 빌헬름 마이스터(Wilhelm Meister)가 구해주며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그녀가 감사하며 읊는 시입니다. 그리움과 향수가 스며있는 서정적인 시인데 모두 3연으로 되어있습니다.
시의 기법으로는 점층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미뇽의 빌헬름 마이스터에 대한 호칭이 ‘사랑하는 사람-소중한 사람-아버지 되신 이’ 로 변해감에 따라 이탈리아의 자연도 서정적인 풍광에서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로 바뀌며 호응합니다. 즉, 레몬 꽃과 월계나무 숲에서 큰 신전과 대리석상으로, 나중엔 용이 살고 있는 동굴과 산봉우리 구름사다리 길로 바뀝니다. 운율은 되풀이되며 형식과 내용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데, 첫 연을 소개합니다.
“그대는 아는가, 레몬 꽃 피는 나라를,
검푸른 잎 새에 황금빛 오렌지 불타고,
실랑이는 바람은 푸른 하늘에서 불어오고,
뮈르테(관목식물의 일종)는 고요하며 월계수는 높이 서있고,
그대는 혹 그 나라를 아는가?
그곳으로! 그곳으로,
그대와 함께 가리,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 빌헬름 마이스터와 미뇽의 이야기를 토대로 프랑스의 작곡가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가 오페라로 만들었는데, "그대는~“은 제 1막에 나오는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는 프랑스어로 많이 불리지만, 원전이 독일어여서인지 독일어 버전이 훨씬 더 감흥을 줍니다. 여기서 듣는 독일어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독일어가 아름답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시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독일어가 딱딱한 언어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독일어에는 약음(略音)과 묵음(音)이 없고, 모든 단어를 빠짐없이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의 독일어는 스타카토로 끊어지면서도 무척 빠르게 연결되어 따라잡기가 무척 힘듭니다.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머리가 없게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노랫말로서의 독일어는 확연히 다릅니다. 한층 여유가 있으며 제대로 된 발음과 여음(餘音)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습니다. 서정적인 멋, 시적인 감흥과 함께 철학적인 깊이도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노래가 바로 이 “그대는~”입니다. 저는 독일어(노랫말)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아는 이들에게 권합니다. 독일어를 잘 모르더라도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 청신함, 동경의 정서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담겨진 열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다힌(dahin; 그곳으로)! 다힌(dahin)” 할 때 귀속을 파고드는 음성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뒤돌아 보면, 저는 이 노래를 고등학교 때(1960년대 중반) 기독교방송 음악프로에서 처음 듣고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후 이 노래는 ‘내 마음의 보석 송’이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클래식 음악 퇴조와 맞물려 이 노래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불렀는지도 기억이 희미하여 안타깝습니다. 메조소프라노 노래이니 줄리에타 시묘나토인지? 소프라노가 부르기도 하니까 롯데 레만이나 엘리자베스 슈발츠코프, 혹은 니농 발린이 아닐까? 아니면 프랑스인으로서 독일에서 활동한 필라 로렝가일 수도? 시묘나토 같기는 한데...어찌되었든 간에 이 노래는 저에겐 ‘내 마음의 보석 송’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독일어를 전공하기로 뜻을 굳힌 데에는 이 노래의 영향이 컸습니다. 물론 꼭 이 노래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학교를 졸업하며 공부의 끈을 놓아버려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저는 독일어를 사랑하며, 아직도 독일어의 인력권(引力圈)과 자기장(磁氣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곡의 노래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김창식님은 독어독문학을 전공, 대학시절 교내 단편문학상을 수상했고 독일어로 쓴 소설,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항공회사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문학도의 꿈을 놓지 않고 수필, 칼럼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일상생활에서 얻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감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