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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이 아름답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10-29 09: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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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이 아름답다



100여 년 전 마이크로네시아의 한 대추장이 유럽에 초대되었습니다. 섬나라로 돌아온 추장은 ‘유럽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섬사람들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 보고에서 추장은 유럽인의 풍요로움에 대한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유럽인들은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먼저 물건을 갖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물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럽인이 말하는 물건이란 비행기나 자동차, 텔레비전 등 인간이 만든 물건이지만, 세상에는 또 하나 ‘신이 만들어 주신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이나 하얀 백사장, 산들바람, 맛있는 물고기 등입니다”

추장은 앞의 물건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뒤의 것이라면 우리들 쪽이 유럽보다 훨씬 풍요로운데 그들이 우리를 보고 물질적으로 빈곤한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추장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이상하게도 인간을 대단히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두 의상을 덕지덕지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모아 두고 있다는 미술관이라는 곳에 갔더니 인간의 나체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것을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어 “우리들은 맨 몸의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알몸으로 살고 있는 것인데, 유럽인이 하고 있는 일은 아무래도 사상적으로 통일이 안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라고 피력했습니다. 서 태평양 작은 섬나라 추장은 우리들에게 엄중하게 문명에 대한 경고를 던져 준 것입니다.

며칠 전 전철역 입구에 놓인 무가지(無價紙)를 뒤적거리다 사회면 기사를 훑어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제목만 소개하면 ‘수돗물 그대로 마시는 국민 1.4%’, ‘광복절 특사 기업인 범죄금액 16조원’, ‘징수 못한 추징금ㆍ벌금 25조원’, ‘5년간 도난 전신 길이 3,400km’, ‘스팸신고 956만 건 중 제재는 단 2건’ 등입니다.

시정(施政)에 대한 불신, 징벌의 불균형, 정부기관의 감독 기능 부재, 도덕과 양심의 상실 등 나라 망칠 일들만 모아놓은 전시장 같은 느낌입니다. 신문의 속성상 비정상적 사안 중심의 뉴스만 취급했다 치더라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뉴스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와 짜고 장애인 등급을 높게 받아 가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연가스 승용차를 사고 주차료나 주행료를 덜 내려는 속셈입니다. 돈을 주고 더 큰 바보가 되겠다는 심보입니다.

어른들의 부패는 청소년들의 심성까지도 썩어 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지난달 중고교생 1,100명을 대상으로 한 ‘2008 청소년 반부패인식 지수’ 설문조사에서 17.7%가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받게 된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2002년 조사 때보다 0.9%가 높아졌다니 아연할 일입니다.

법은 왜 만들고, 교육은 왜 받아야 하는지, 전통 관습 윤리 도덕규범은 왜 존재해야 되는지......선다형 문제를 내면 모두가 정답을 맞힐 것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의 궁리와 실제 행동은 따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한심한 작태나 생각이 만연해졌는지 명쾌하게 진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러는 물신주의(物神主義)의 팽배, 가치의 혼란, 교육의 왜곡, 사명감 상실 등이 원인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가톨릭 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이동익(레미지오) 신부님은 왜곡된 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인정하는 사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자유주의는 오늘날 ‘극단적 형태의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개인만을 극대화하는 자유주의는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논리를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자유주의는 낙태죄 폐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인간 배아 복제 연구 등 ‘죽음의 문화’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 신부님은 “참된 자유란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와 너, 너와 우리가 함께 누리는, 반드시 주위에 대한 책임이 함께 따르는 자유”라고 했습니다.

물질문명은 분명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과 바람, 물과 공기, 숲과 바다 같은 신의 선물들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자산입니다. 알몸으로도 살 수 있는 자연은 나와 너, 너와 우리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보루이니까요.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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