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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투명망토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9-06 17: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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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로 접어드니 몸도 마음만큼이나 좋아라합니다. 횡단보도를 걸을 때 아스팔트에서 솟는 지열도 없고 가로수 아래를 걸어도 땀이 나지 않습니다. 아침나절과 석양에는 오히려 서늘하여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걸어봅니다. 카디건이 자꾸 흘러내립니다. 망토라면 흘러내리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얼마 전 신문에서 본 투명망토 얘기가 떠오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가끔 투명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멋진 자세로 자전거를 몰고 가는 사람의 등 뒤에 슬며시 앉고 싶을 때도 있고, 막 뽑아내어 향이 기막힌 남의 커피를 한 모금 홀짝 하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남의 것을 훔쳐 도망가는 사람의 발을 슬쩍 걸어 넘어지게 하고 싶기도 합니다. 어떨 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방에 숨어들어 그가 무엇을 하는지, 혹시 제 이름을 적어보거나 제 얼굴을 그려보지는 않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이 발각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인들,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슬쩍 끼어드는 얌체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출, 퇴근 길 지하철에서 남의 몸에 손대는 사람들,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노라 누차 떠벌리면서 정작 내놓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도 투명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반들거리는 이마나 겹진 목덜미를 탁! 갈겨줄 수도 있고, 제 집 욕실에서 마음 턱 놓고 있을 때 똥 침을 놓아 혼비백산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난 달 중순, 머지않아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는 20여개의 국립 연구소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분자물리학의 메카로 불리는 로렌스 버클리 국립 실험 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와 버클리대의 과학자들이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투명망토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들은 빛을 삼차원으로 굴절되게 하는 소재를 개발했으며, 이 메타소재는 마이너스 굴절률을 갖고 있어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후방으로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노미터 수준의 사라짐만이 가능하지만, 같은 원리를 적용하여 사람이나 탱크, 어쩌면 탱커, 즉 유조선까지 사라지게 할 만큼 큰 투명망토를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겁니다.

공상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작가 H.G. 웰즈가 <투명인간>을 출간한 지 꼭 111년 만에 들려온 이 놀라운 소식은 <<네이처 (Nature)>>와 <<사이언스 (Science)>>지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야호! 이제 나쁜 사람들을 단숨에 벌 줄 수 있겠구나!” 하고 법치국가의 시민답지 않게 좋아하다가, 그 반대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금세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웰즈의 소설 속 투명인간 그리핀처럼 도둑질을 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살인,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속출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투명망토가 상용화되면 돈 많고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아무래도 고가에 소량 생산만 가능할 테니 세계의 나쁜 부자들이 첫 손님이 될 테지만, 우리나라의 고약한 거부들 또한 뒤지지 않을 겁니다. 버릇없이 자란 부잣집 아들이 투명망토를 씌운 렉서스 세단을 몰고 비 그친 거리의 물웅덩이를 첨벙대며 달아날 수도 있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 망토를 씌우고 가난한 할아버지의 겨드랑이에 끼인 전세 보증금을 휙 채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투명망토가 생겨서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떠올라 불안합니다. 아무래도 과학자들에게 부탁해야겠습니다. 제발 그런 망토는 개발하지 말라고, 꼭 개발해야 한다면 입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할 때만 보이지 않게 하는 도덕적 센서를 망토에 심어 달라고. 그런 줄 모르는 채 망토를 입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붙잡힐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는 1931년 창설된 이래 11명이나 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그곳의 과학자들이 알프레드 노벨처럼 불행해지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죽음의 상인”이라고까지 불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다 ‘노벨상’ 제정을 유언했던 노벨 같은 이는 한 사람으로 족하니까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과학이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뿐만 아니라 파괴하기 시작한 지 오랩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니 투명망토가 또 하나의 자연 파괴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덕적 망토에 대한 염원을 무시하고 온갖 나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투명망토를 개발하는 사람, 그 사람의 말로는 그리핀의 말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핀의 말로가 어땠느냐고요?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시지요. 가을은 역시 좋은 계절입니다. 석양 걸린 나무 아래를 걸으며 꿈을 꿀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필자소개



김흥숙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기자,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코리아타임스에 "Random Walk"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김 태길의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을 영역한 것을 비롯, 1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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