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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넥타이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22 16: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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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래 한 가지 원칙만은 지키려 노력해왔습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읽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정치가들의 말로가 대개 부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끝나는 걸 본 터라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집권 여당의 원내 대표인 홍준표 의원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건 정치적 문제보다는 넥타이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홍의원은 누구보다 빨간 타이를 자주 매는 것 같습니다. 싸이 월드 미니홈피에도 연한 회색 동그라미가 찍힌 빨간 넥타이를 맨 사진이 떠 있고, 홈페이지에 번갈아 나타나는 넥타이 중에도 빨간 바탕에 여러 가지 색의 꽃이 그려진 넥타이가 보입니다. 직접 보면 멋질지 모르지만 텔레비전 화면에선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색은 사람보다는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빨간 넥타이가 본격적으로 정치인들의 목을 장식하게 된 건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1981~1989 재임)이 빨간 넥타이의 카리스마로 자국의 힘을 과시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소위 ‘파워 타이 (power tie)’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세를 겨루는 자리에서 빨간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토너먼트 마지막 날 빨간 티셔츠를 입는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최근 독일 뮌스터대의 노베르트 하게만 박사팀이 내놓은 연구 결과는 빨강의 심리학적 영향력이 낭설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게만 박사팀은 파란색과 빨간색 보호대를 착용한 태권도 선수들의 대련 화면을 42명의 심판들에게 보여주고 채점하게 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첫 세트에서 파랑을 입었던 선수들이 둘째 세트에서는 빨강을 입은 것으로 보이게 했다고 합니다. 각 선수의 기량을 보고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더니, 같은 선수라도 빨간 옷을 입었을 때 13퍼센트나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스포츠 경기보다 훨씬 복잡한 게임이고 정치 행위는 축구 경기 룰보다 훨씬 다양한 잣대로 판단됩니다. 2004년 9월 30일 밤 미국 전역에 방영된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와 민주당 후보 존 케리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부시는 즐겨 매는 푸른 색 타이를 하고, 케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게 하는 빨간 타이를 매고 설전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명백한 케리의 승리였지만 한 달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선 부시가 승자가 되었습니다.

홍의원이 빨간 넥타이를 자주 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넥타이가 몇 개 되지 않는데 우연히도 그 중에 빨강이 들어간 게 많다, 정치는 무엇보다 협상인데 협상에서 이기는 데 빨간 넥타이가 좋다고 해서 빨강을 맨다, 가지고 있는 넥타이는 대개 직접 고른 것이 아니고 선물 받은 것인데 우연히 빨강이 들어간 게 많다, 용한 역술가로부터 빨강을 착용해야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오랜 진통 끝에 18대 국회가 정상화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야 모두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고 합니다. 국회의 원(院) 구성 협상을 지연시킨 <<가축 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에 대한 합의를 두고 한나라당 안에서는 원칙 없이 양보했다는 비난이 들리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겨우 이 정도를 얻어냈냐고 성토합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협상 타결 직전 외교통상부가 통상 마찰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하자, 홍의원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놓고 여당의 협상대표였던 홍의원이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만스러운 타결이라도 여당의 단독 원 구성보다는 나으니 홍의원이 상처를 입었다 해도 오래가진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국회 정상화를 알리는 기사 바로 옆에는 국회의원들의 ‘무노동 무임금‘을 법제화하겠다는 홍의원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원 구성을 못하는 기간에는 국회의장단을 제외한 국회의원들의 세비와 보좌관의 월급을 모두 지급 중지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국회가 공전하는 3개월 동안 84억 원이나 되는 돈이 의원들에게 지급되었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원 구성이 늦어진 책임을 민주당에게 전가시키려는 고도의 계산이 숨어 있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국회의원들 때문에 화가 난 국민들은 홍의원에게 박수를 보낼 겁니다.

시간은 늘 진실을 밝혀줍니다. 홍의원이 이번 일로 상처를 입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이익을 보았는지, 실제로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될지, 홍의원의 빨간 넥타이가 레이건의 넥타이와 같은 효과를 발휘했는지 어땠는지, 모두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겁니다. 제가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 이제 홍의원이 빨간 넥타이를 그만 맸으면 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빨강을 싫어하느냐고요? 200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터어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그러나 반짝이는 눈, 타오르는 열정, 날아오르는 새들, 빨라지는 심장 박동... 이런 것들의 세상엔 평화가 없습니다.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대한 태권도협회 회장인 홍의원이 ‘파워 타이’를 풀 수 없다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만 빨간 타이를 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투성이인 살림을 꾸려가느라 핏발 선 국민들의 눈을 더 이상 피곤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필자소개



김흥숙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기자,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코리아타임스에 "Random Walk"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김 태길의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 을 영역한 것을 비롯, 1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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