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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두 얼굴
“이명박 선생은 왜 친박연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까?”
‘선생’이란 호칭만 빼면 대구나 한나라당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음직한 언사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말은 북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5월 중순 개성구경을 하는 남한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북한 관광안내원들은 어느 샌지 모르게 이런 남한 정치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휴전선을 넘기 전에 현대아산 관광 가이드는 북한 땅에 들어서면 북한체제나 정치에 대한 언급은 문제가 생기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간곡한 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안내원들은 관광객들로부터 남한 정치사정을 요것조것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땅이니 그들은 ‘갑’의 위치이고 관광객은 꼼짝없는 ‘을’의 신세일 수밖에요.
“국무성 김성 과장이 평양에서 핵보고서를 가져갔다는데 청와대에는 들렀습니까.” “조미관계는 어찌 봅니까?” “김문수 경기지사가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야무진 사람같이 보였는데 김 지사는 북남관계에 뭘 하려는 게 있습니까.”
북한 안내원들의 관심은 한나라당 내부 사정, 정부의 대북정책, 그리고 북미관계 전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이명박 , 박근혜, 김문수, 김성, 오바마와 힐러리, 부시 등이었습니다. 역시 그들의 관심은 북한의 안보나 경제에 영향을 줄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무현, 손학규, 정동영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남한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모드로 전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성관광, 아침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 간에 합의된 이동로와 관광지만을 둘러보고 오후 4시면 군사분계선을 다시 넘어와야 하는 기이한 여행입니다. 안내원의 인솔에 중압감을 느껴야 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관광대상지만 촬영이 허용되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그 룰이 지켜졌는지 검열을 받아야 합니다. 남한에서 같으면 “야, 미쳤냐”며 모두가 포기할 여행, 그러나 북한 관광의 매력은 북한 땅을 밟는다는 흥분과 더불어 통제된 사회를 들여다본다는 야릇한 긴장입니다.
임진강을 금방 넘어온 초행길의 관광객에게는 개성의 첫 인상이 불도저로 밀어놓은 수백만평의 허허벌판입니다. 그러나 수 년 전 필자가 처음 개성공단을 구경할 때 한 두 개의 공장 빌딩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던 기억을 되살리면 지금은 상전벽해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북한 안내원이 개성공단의 남북협력사업을 입주현황에서 업종에 이르기까지 청산유수같이 설명했습니다. 개성공단에 공급되는 용수를 설명하면서는 “선생님들, 남측에서는 삼다수를 제일 좋은 물로 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곳 개성 물은 삼다수보다 품질이 훨씬 더 좋습니다”고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실상은 어떤지 몰라도 자랑할 게 있다는 것은 자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송악산 아래 펼쳐졌던 고려조 500년의 치열한 권력투쟁과 조선조의 풍류를 탐방해 보았습니다. 왕건의 고려개국과 ‘코리아’의 서양 전파, 칼을 휘두르던 무신들과 왕실을 주무르던 승려들, 원 제국의 궁궐에 바쳐진 아름다운 고려 여인들과 몽골에서 시집온 왕실 여인들, 공민왕 최후의 나날들, 선죽교를 사이에 두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정몽준과 이성계 이방원 부자,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머리채를 날리며 가무를 뽐내던 황진이의 이미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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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30여년 기자로 활동했다. 2005년 주필을 마지막으로 신문사 생활을 끝내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다. 신문사 재직중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환경책 '0.6도'와 '지구온난화와 부메랑(공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