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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에 관한 이야기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5-20 13: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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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라지만 환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은 저 혼자 시작한 후 좀 빠져서 얼마간 허우적대다가, 어느 계기를 만나 또 저 혼자서 피식하고 무안쩍게 끝내버리면 그만이지만, 환상은 내부의 어떤 집요한 영양을 공급 받으면서 형체를 갖춰가는 양상을 띱니다.

철저히 내부 소관이라는 점에서는 착각과 환상 모두가 무죄입니다만, 환상에 있어서만큼은 그 대상에게 고단한 상황을 끼칠 때가 없지 않다는 점에서,실체와 본질과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더러는 위험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섣불리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크고 작은 금기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작가의 맨얼굴, 옛사랑의 현재 모습 같은 것들도 있다. 물론 그것은 작가의 인간성이나, 옛사랑의 속물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며, 단지 환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일찍이 설파한 어느 소설가의 말을 슬쩍 빌려 봅니다.

서리서리 풀어져 나오는 글이 곧 작가의 고매한 인격과 옥토같은 마음밭의 절대 반영일 것이라는 환상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혹여 ‘작가의 맨얼굴’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공연한 배신감과 박탈감에 허망해 할지도 모릅니다.

유들유들한 표정에 머리 벗어지고 배 나온 현재 모습의 그, 탄력잃은 얼굴 피부와 두루뭉술 흩트러진 선의 그녀를 확인하는 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다름아닌 '내가 품고 있던 환상'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러브 스쿨' 같은 사이트를 통해 옛사랑, 첫사랑을 찾아나서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목사나 교사들도 실제 자신의 삶은 그 가르침대로 완전히 꾸릴 수 없듯이, 글 쓰는 사람 역시 자기가 표현한 글의 내용만큼 지당하고 멋지게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함께 글을 쓰는 분 중에 제가 존경하는 K선생님은 ‘남들이 글에서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실제의 자신은 한 60, 70퍼센트 정도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머지 30,40 퍼센트는 '글에서 보여지는 꽉 찬 듯한 이미지를 향해 스스로도 노력해야 할 분량’ 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K 선생님 실제의 모습은 60, 70 퍼센트이며 나머지 30, 40 퍼센트는 환상이라는 뜻도 될 것입니다.

저도 이따금 그런 경험으로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읽는 이들이 키우는 환상도 각기 다를 것입니다만, 제 경우는 마음이 무지 여리고 결이 고울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 남들이 보기엔 제가 그런 분위기로 글을 쓴다 해도 실은 저는 끝장을 볼 때까지 질기게 구는 면이 있고, 가혹하리만치 제 자신을 들들 볶는 편입니다.
제 맘자리가 노상 편치 않다 보니 오히려 글에서는 ‘맑은 척’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을 때 속된 말로 '얼짱 각도' 라는 게 있듯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맘짱 각도' 같은 게 있습니다.

사진을 예쁘게 나오게 하려고 얼굴의 순간 각도를 포착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동안은 정신과 마음, 의식을 순수히 모아 '맘짱'을 내어보려는 노력을 매번 할뿐입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쌩얼’을 보여야 할 인연이 닥치면, ‘보시는 분’들은 아쉽고 허망하고 씁쓸하실지 모르지만 ‘보이는 처지’에서는 웃자라는 환상의 가지들을 솎아주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무리 실체와 본질에 무관하다고 한들 삶이 어찌 환상없이 꾸려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을 버티기 위해 또다른 환상을 잦는 것, 그것이 곧 사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 옛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작가에 대한 환상만일까요.

부와 명예, 권력 따위에 대한 환상, 남자에 대한, 여자에 대한 환상, 결혼에 대한 환상, 자식과 부모에 대한 환상,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에 이르기까지 권태와 불안이라는 두 레일 위에 놓여있는 일생을 끌어가기 위해 크고 작은, 가깝고 먼 환상을 끊임없이 품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은 진저리를 칠 만큼 도망가고 싶지만 ‘현실’은 절대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은 청량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마치 ‘화~한’ 박하사탕이 답답했던 목을 일순 씻어내린 것 같은 ‘느낌의 환상’처럼 말입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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