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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디지털 타령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4-25 09: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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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디지털 타령



최근 번호이동으로 핸드폰을 바꾸었습니다. 동네 공원 옆의 휴대폰 가게를 지나가다가 점원에게 자석처럼 끌려들어가 낡은 핸드폰을 바꾸라는 권유를 받고 바꾼 것이죠.

전자 기기라면 푼수를 모르고 환장하는 필자에게 2000년인가 생일에 아내가 큰 휴대폰을 선물했습니다. 익스플로러 웹 브라우저로 컴퓨터 수준의 인터넷을 볼 수 있는 핸드폰이었습니다. 인터넷이 휴대폰으로 접속하는 방식이라 요금이 좀 나왔습니다. 거리에서 전화를 받을 때에는 행인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한 손으로 잡기엔 부담스럽게 덩치가 컸던 이 1세대 기종은 이제 핸드폰으로 못씁니다. 이동통신회사에서 단말기로 인정을 안해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녹음기로 가끔 쓰거나 스타일러스 펜으로 뭔가 끌적인 후에 저장하는 용도로 쓸 뿐입니다. 비싼 장난감이 되었죠. “전자기기는 점점 발달하니까 기다리라”던 아내의 말이 뉘우침으로 떠오릅니다.

이번에 돈 한 푼 안 내고 ‘내 맘대로 바꾼’ 핸드폰은 MP3, 130만 화소 카메라, 사진 1,000장 기본 저장, 1기가바이트 외장 메모리카드, 지상파 DMB 등의 기능을 가졌습니다. 이소연 씨가 우주 정거장에서 공중에 둥둥 떠다니면서 사탕을 입으로 ‘잡아 먹던’ 우주중계방송도 이 핸드폰으로 녹화하여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전화기가 유선에서 무선, 사진, 동영상, 텔레비전, 카메라, 결제 기능 등을 골고루 갖추게 된 진화 과정을 보면 일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분야가 세계 첨단인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휴대폰 가입자 4,000만, 지상파 DMB가입자 1,000만 돌파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500만, 세계 4위권의 휴대폰 통화량 등은 소비자의 주머니가 뒷받침해왔습니다. 그렇게 ‘소비자가 만든 통신강국’은 가계의 통신비 지출을 OECD 평균의 3배가 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통신비를 내리라는 목소리도 큰 것이죠. 정보통신 강국의 요체는 저렴한 소통(커뮤니케이션)입니다.

필자는 지하철로 이동할 때에 MP3를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DMB텔리비전 방송이 들리는 이 나라의 지하철에서 FM라디오 방송이 선별적으로 들린다는 데 놀랐습니다. 밖에서 잘 들리던 FM방송이 역 구내로 들어가면 먹통이 됩니다. 서울 2,3,4 호선이 늘 그렇습니다. 가끔 타는 1, 5, 6, 7호선은 역사와 열차 내에서도 잘 들리더군요. 8호선은 타 볼 기회가 없었죠. 가령 같은 지하 서울역에서도 1호선 주변은 잘 들리다가 4호선 환승 통로로 들어오면 먹통이 되는 모양새라서 짜증이 많이 납니다.

지하철에서 DMB 방송은 잘 들리는데 값싸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범용성이 강한 FM라디오 방송이 안 들리는 이유는 혹시 ‘대가를 내는 가입형 소비자’만이 대접을 받는다는 발상 때문이 아닌지요. 물론 독립형 DMB단말기를 사면 무료로 지상파 DMB시청은 가능하죠.

한 때 터널에서도 차량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한다고 요란을 떨며 터널 입구에 주파수를 적어 놓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국방송공사는 ‘국민의 방송’이라며 자랑하고 있는데 그 ‘국민의 방송’ 라디오가 수도 서울의 지하철에서 난청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지하철 굴속에도 존재하는 디지털 격차는 기초를 다지지 않고 뒤죽박죽 걸어온 이 나라의 압축성장과 같습니다.

오늘도 노령인구가 몰리는 서울 종로 3가 파고다공원 언저리에는 노인들을 상대로 싸게는 몇 천원에서 비싸게는 2만원 정도의 중국산 라디오를 파는 노점상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청취의 대가를 낼 필요가 없는 정보 입수 수단이자 오락 수단으로 라디오를 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고 기본적인 것부터 소중히 해야 사회는 안정되고 발전합니다. 외국을 보면 재난 방재용품 목록에는 반드시 라디오가 들어있습니다. 그만큼 라디오는 사회의 기본 틀이기도 하죠.

노무현 정권시절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소외지대를 없애겠다는 다짐으로 지하철 열차 안에 인쇄물을 붙여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하철은 라디오 청취 문제만 놓고 보아도 여러모로 ‘사각 지대’입니다. 관료나 정치인들은 화려한 데, 높은 데만 쳐다보지 말고 지하철처럼 서민이 애용하는 낮은 곳도 부디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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