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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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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07-12-11 17: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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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은 반갑다

‘역사는 슬퍼도 동창은 반갑다’. 자유칼럼 공동대표인 김수종씨가 20여년 전에 쓴 기사의 리드입니다. 일제 때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한일 양국 노인들의 만남을 전하는 기사였습니다. 국권상실과 식민지배, 저항의 역사는 슬프지만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한 동창은 국적이 달라도 만나면 즐겁고 반갑습니다. 그러니 같은 동포끼리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연말을 맞아 요즘 각종 모임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대통령선거기간에는 향우회 종친회 동창회를 아예 개최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에 따라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이 고쳐졌고, 그 덕분인지 올해에는 각종 모임이 더 활발해진 것 같습니다.

나는 11월 중순, 대전에 가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전체 동창회가 아니고 반창회인 데다 참석자도 8명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졸업 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좀 만나자”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습니다. 우리 중학교 동기들은 전체 동창회는커녕 반창회도 구성하지 않았을 정도로 어지간히 무심하게 살아왔습니다.

졸업 후 처음 본 친구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졸업앨범을 들고 온 덕분에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가 막히면 돌려가며 앨범을 보며 친구들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그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는 늘 돌아가며 이야기를 할 것을 제의합니다. 매주 토요일에 모였던 고등학교 시절의 서클에 ‘나의 5분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한 주일 동안의 생활과 생각을 차례로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면 화제가 다양해지고 서로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됩니다. 인원이 많으면 참석자 전원이 발언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공평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모임은 대부분 입담 좋고 목소리 크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돈 많은 사람, 높은 사람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아니면 끼리끼리 떠들며 술이나 퍼마시다가 헤어지거나 노래방 가는 걸로 끝납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이 모임이 파하면 자연히 다음 모임에 나오기 싫어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만날 만나 봐야 그건 헛일입니다.

중학 동창들을 만난 날 ‘나의 5분간’을 제의했습니다. 더러는 40년 동안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방방송’으로 남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긴 세월에 저마다 최선을 다해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서 모두가 서로가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일찍 만나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늦춰 노래방까지 가서 놀다가 야간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주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납니다. 동기회의 공식 송년 모임입니다. 홈페이지는 벌써부터 와글와글 붐비고 있습니다. 올해 특이한 것은 총무직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재학시절 선생님들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1학년 1반부터 3학년 8반까지, 우리가 다녔던 3년 동안 이 24개 학급의 담임선생님이 각각 누구였는지를 표로 완성하는 작업입니다. 11월 19일 홈페이지에 처음 뜬 그 표는 12월 2일에 빈 칸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그게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빠르냐 늦느냐보다 이런 걸 시도하는 일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총무는 우리가 보성고교에 다닐 때 재직했던 전체 선생님들의 이름과 담당과목은 물론, 그 분들의 모교 재직기간까지 다 찾아서 띄워 놓았습니다.

우리 학교는 머리를 기르는 데다 이름표가 아예 없어서(우리는 이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생각했습니다) 3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고도 얼굴만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로 갈리면 더 그렇게 됩니다. 선생님들이 이름을 잘 모르니까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건 별 영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창회는 타임 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새로 친구를 사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경우처럼 서로 이름이 서투르거나 낯선 경우도 자주 만나면 자연히 잘 알게 됩니다. 이름은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게 당연히 없지만, 지금 보는 동기는 그때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로 사귀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여러 번 했던 것 같습니다.

동창회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명함을 주는 것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나오고 싶어도 명함이 없거나 몇 만원의 회비가 궁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동창은 반가워도 세월은 슬픕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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