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수필] 권선옥 논산문화원장 "부질없는 생각 "
  • 편집국
  • 등록 2020-08-20 14:09:14
  • 수정 2020-08-20 14:23:58

기사수정

부질없는 생각



집을 지은 지가 어느덧 삼십 년이 넘었다.



처음 새 집에 들어갔을 때는 무엇보다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지금과 같은 넓이인데도 그때는 빈 곳이 많았다. 그러나 삼십 년을 지내며 그 집은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 차 버렸다. 방의 주인이었던 아이들이 집을 떠났으니 그때보다 훨씬 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삼십 년 동안 무얼 그리 모아 쌓았는지 처음의 여유를 느낄 수가 없다. 그 많은 물건들은 어느 한 때 긴요하게 쓰이던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능을 잃어서, 또는 다른 새 것들 때문에 쓰임새가 없이 되어 버렸다.


온갖 잡동사니들로 채워져 있는 집은 낡고 헐어서 여기저기 손댈 곳이 많다. 그간 때때로 손을 보기는 하였으나, 고치는 것보다 부서지는 것이 더 많으니 상처 투성이다.


목욕탕 바닥의 타일 사이는 까맣게 곰팡이가 슬었다. 이 걸 어쩌나, 궁리하는 중에 홈쇼핑에서 타일 줄눈 보수제를 판매하기에 냉큼 구매하였다. 방송에 나오는 영상은 숙련된 기능을 가진 이가 하는 것이어서 내가 따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쉽게 하기에 나도 그럴 줄로 알았다.


●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게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썩 잘하지는 못해도 그런대로 할 만한 일이었다. 내 깜냥으로는 잘한답시고 시공을 마쳤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보수제가 굳지 않아서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뭔가 수상쩍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굳어지겠거니 기대를 하며 며칠이 지났다.


잘못된 일은 시간이 지난다고 바로 되지 않는다. 그 사이 목욕탕에 드나들던 아내는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나는 귀를 막은 듯이 모르쇠 했다. 그러나 아내보다도 내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경화제(硬化劑)를 제대로 섞지 않아서 굳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꾀를 냈다. 그 위에 경화제를 칠했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 그러나 찐득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헛수고였다. 견디다 못해, 나 자신에게 짜증을 내며 그것들을 모두 긁어냈다.


참으로 후회막심(後悔莫甚)이었다. 보수제를 이중으로 써서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굳지 않아 찐득거리는 것을 긁어내는 데는 시공을 하는 것보다 상당히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것도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그보다는 그 사이에 겪은 아내와 나의 불편이 더 큰 손해였다. 그런데 또 그보다도 훨씬 더 큰 손해는 따로 있었다. 내가


그토록 어리석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처절한 자괴감을 안겨 주었다. 정성을 다하지 않고서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나는 타고나지 못했다. 그것을 진즉에 알았으면서도 어찌어찌 수습해 보려고 했던 나의 부질없음이 한심했다.


●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처음에 정성을 다하여 정해진 대로 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일이 틀어졌으면, 그것을 안 때에 얼른 처음으로 돌아가 수습을 하여야 했다. 안 되는 것은 역시 안 된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만다. 그 결과는 어김없이 빗나가고, 그 실패를 받아들이려면 고통스럽다.


이런 일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의 진행을 보면서 이건 억지다,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나같이 우둔한 사람의 생각으로도 그 결과를 성공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강행할 때가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여러 사람이 나서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일을 추진하여도 성공은 쉽지 않다. 일의 성패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독선과 아집. 자리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피해는 더욱 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멍에가 된다.


나는 가끔, 이곡의 <차마설(借馬說)>을 생각한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본래의 말 주인이 아니라 그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재상의 말은 임금이 준 것이요, 임금의 말은 백성에게서 얻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말 주인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나 역시 내가 타고 있는 작고 느린 말은 내가 본래 주인이 아니었다.


내가 타고 있는 말은 그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 대답은 말을 탄 사람이 것이 아니라 말 주인의 판단이다. 그 대답이 두려워 새삼 말고삐를 다잡기도 한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민주당 9대 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관련 당론뒤집고 의장단 꿰찬 조용훈, 민병춘 ,김종욱 3인방에 " 당원권 정… 민주당  중앙당  윤리위는  9대 논산시의회  후반기  원구성과  관련해  지구당  당협의  결정사항을  뒤집고  상대당과  야합 [?]  의장 , 운영위원장 ,행정자치위원장  세  의정 주요직을 거머쥔  조용훈 의장 ,  민병춘  행정자치위원장  김종욱  운영위원장  등 3...
  2. 논산시의회 최초 지역구 여성의원 당선 기록 세운 최정숙 전의원 내년 지방선거 "가" 선거구 시의원 출마 … 논산시의회  최초의  지역구  출신 여성의원 [ 7대] 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최정숙  [69]  전 의원이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논산시의회  가 선거구 [ 연무읍 ,강경읍 .채운면  양촌면, 벌곡면 ,은진면 ,연산면  가야곡면 ]시의원  출마입장을  밝혔다. 가야...
  3. [프로필] 민주 황명선 최고위원…3연속 논산시장 지낸 친명계 초선 [프로필] 민주 황명선 최고위원…3연속 논산시장 지낸 친명계 초선(서울=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충남 논산시장을 내리 세 번 지낸 친명계 초선 국회의원.국민대 토목환경공학과 졸업 뒤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당 사무처장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새천년민주당 소...
  4. 건양대병원 총파업 돌입…"희생 강요 말고 노동조건 개선해야"(종합) 건양대병원 총파업 돌입…"희생 강요 말고 노동조건 개선해야"(종합)총파업 지켜본 환자·보호자, 일부는 지지하거나 항의하기도환아 부모들로 구성된 단체, 대전시 비판 기자회견 열어(대전=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대전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 이어 대전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건양대병원 노조도 28일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에 돌입...
  5. 논산시 25년도 수시인사 단행 . 농업기술센터 강두식 농업지도관 승진과 함께 기술보급과장 발탁 눈길 ,… 논산시는  2025년도  수시인사를 통해  농업기술센터 등  8명의  직원에 대한  승진및 전부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수시인사를 통해  전임과장의  이직으로  공석이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에는  강두식  지방농촌지도사를  지방농촌지도관으로  승진과 동시에  직...
  6. "측천무후와 이세적 " "적당히 대처하고 원만히해결하라 " 측천무후와  이세적에  얽힌  일화에서  각박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매사에 적당히 대처하고  원만히ㅡ해결하라"는  처세훈을  배운다.이적[李勣]의  원래의 이름은 서세적(徐世勣)으로, 당 왕조 초기를 대표하는 이름 높은 명장들 중 한 명이다. 선배였던 이정이, 죽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
  7. 논산 철도건널목서 열차·화물차 접촉 사고…60대 감시요원 숨져(종합) 논산 철도건널목서 열차·화물차 접촉 사고…60대 감시요원 숨져(종합)(논산=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29일 오전 9시 44분께 충남 논산시 부적면 호남선 논산∼연산 구간 철도건널목에서 무궁화 열차와 건널목에 진입한 1t 화물차 간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주변에 서 있던 철도건널목 감시요원인 A(60대)씨가 사고 충격으로 튕겨 나간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