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례방식 혼선 우왕좌왕 .지역주민들 논산시 유림이나 문화원이 맡아 봉행하는것이 타당하다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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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충신 충문공[忠文公]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선생 추모제향이 11월 17일 오전 11시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성삼문선생의 묘역에 위치한 사송당[思松堂] 성인각[成仁閣]에서 봉행됐다,
임영우 논산교육장이 초헌관, 박귀의 가야곡면장이 아헌관, 오명세 회덕향교 전교가 종헌관을 맡아 전통적인 유교제례방식으로 거행된 이날 성삼문 선생의 추모제향은 송영철 충남도의회 제1부의장 양현택 논산중학교총동창회장 이준창 논산문화원 사무국장 을 비롯한 내빈과 성삼문선생의 문중 창녕성씨 관계자 및 지역유림 50여명이 참석 만고충절 성삼문 선생의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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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17일 충남도지정 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된 성삼문 선생의 묘소에는 조선조 세조임금때 사육신의 한사람인 선생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한강가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한후 그 시신이 전국의 산하에 나뉘어 매장되는 과정에서 그 일지체가 매장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성삼문 선생이 거열형을 당한후 그 시신을 전국에 조리돌릴때 선생의시신 일지체를 지게에 지고 양촌리 고개를 넘던 지게꾼이 고개마루에 잠시 몸을 쉬며 ""어휴 날은 덥고 몸은 고단하구,," 하며 불평을 하자 지게에 짊어져 있던 선생의 일지체에서 "그렇게 힘들면 여기 아무데나 묻어라"는 소리가 들려 오자 이에 놀란 지게꾼이 달아나고 인근의 선비들이 선생의 일지체를 현재의 묘소에 매장하고 장례를 모셨다 한다,
그런 연유로 이 고개 이름은 "성삼문재"로 불리우게 됐고 묘소바로 옆에 한그루 소나무가 곧게 자라 낙낙장송이 되었대서 사람들은 이 고개이름을 사송재 라고 부르게 되었고 묘소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말을 내리지않고 그냥 지나치던 사람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다쳤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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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매년 10월경 날을 정해 지역유림들이 주관해 치러지던 추모제향은 언제부터인가 선생의 세가 창녕성씨 문중이 주관해 치르고 있으나 지역유림들과의 갈등으로 논산지역 유림들은 거의 참례치 않는것으로 알려졌고 이날 거행한 제례 또한 제례진행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양촌리 최경락 이장 김용상 노인회장 마을주민 서기중씨 등은 논산시가 매년 제례비용으로 창녕성씨 문중에 5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창영성씨문중의 거마비로 쓰이는지 제수음식 장만하는데는 전혀 지원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민고충절로 추앙받는 선생의 제례를 논산문화원이나 논산지역 유림들이 맡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할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더욱 동 제향을 주관한 이들이 선생의 추모제향을 알리는 초대장을 논산시 관내 기관 사회단체장 들에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는 송영철 충남도의회 제1부의장 양현택 논산중학교총동창회장 이준창 논산문화원 사무국장 논산시 관계자 두서너명 외에는 거의 불참한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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