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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창설 57주년, 젊은날의 꿈이 시작되는 육군훈련소-
○ 1년 365일, 총성․군가․훈련병의 함성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살아숨쉬는 곳, 대한민국 정병육성의 요람으로서 빛나는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640여만명의 정병을 배출하며, 국가안보와 발전에 이바지해 온 육군훈련소(소장 장종대)가 11월 1일, 창설 57주년을 맞았다.
○ 육군훈련소는 국민적인 이목과 관심이 집중되는 부대로써 많은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 나가며, “V-NQ 공동체의식 정착”과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를 바탕으로 “기가 살아있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정예신병”을 육성함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 특히 전체 훈련병을 대상으로 인권 및 기본권 침해행위에 대한 설문을 받고, 고충상담전화, 내부 공익센터운용 등의 노력으로 병영내 악ㆍ폐습을 근절하여 인권이 존중되고 권리가 보장되는 풍토를 조성하고 있으며, 배려와 동기유발․팀워크 중심의 교육훈련으로 성취감을 고취 야전 기질을 함양한 강한전사를 만들고 있다.
○ 이처럼 육군훈련소는 이 곳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의 기억속에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던 곳”, “동기애와 전우애로 맺어진 새로운 만남이 형성된 곳”,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유익했던 추억”으로 젊은날의 꿈이 시작되는 곳이다.
○ ‘집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날~’ 가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애창곡이다. 가사에 나오는 입영열차처럼 ‘연무대’하면 훈련소를 연상하듯이 연무대역은 입영․배출 장정들을 맞이하고 보냈던 훈련소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과연 연무대역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 50년대 당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입영 장정과 군 화물 수송을 위해 추억속의 입영열차가 생기고, 연무대역(충남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 179번지, 강경선 채운기점 5.8km 지점)이 만들어졌다.
○ 연무대역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강경역에 56년 1월 15일 군인열차가 개통하여 장병들을 수송하였다. 이후 58년 5월 15일 연무대역이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면서 본격적인 철도 수송시대가 열린다. 당시의 연무대역은 군 수송뿐만 아니라 강경역까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통근열차가 운행되어 63년 까지는 일반인들도 이용했다고 한다.
○ 63년 11월 5일에는 제반물자와 장비 수송을 위해 연무대역으로부터 부대 앞까지 화물철도인입선을 신설, 군 전용선(1.5km)을 개통하였다.
○ 추억속의 입영열차는 고속도로의 발달과 1986년 7월 1일부로 호송대가 해체되면서 없어졌지만 연무대역은 지금도 계속해서 배출병력을 떠나보내는 장소로 활약하고 있다.
○ 훈련소와 역사를 함께해온 연무대역은 1992년 8월 28일 현 위치에 역사를 준공하면서 구연무대역은 여객수송의 임무를 종료하고 1994년 12월 24일부터 성신양회 전용선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 과거 야간에 배출되어 밤샘 기차를 달려 부대에 갔던 훈련병들은 1999년 6월 1일부로 배출행사 시간이 22시에서 10로 변경되면서 낮시간에 연무대역에서 배출행사를 갖는다.
○ 또한 육군훈련소는 도로망의 발달로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바뀌면서 육로수송확대의 필요성을 인식, 100% 철도 수송에만 의존해 오던 병력배출 수송방법을 개선 7월부터 용역버스를 이용한 육로와 철도를 병행하여 배출병 수송지원을 실시하게 되었다.
○ 연무대역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훈련소 배출인원 6백여만명의 훈련병을 전국각지로 실어 보냈던 입영열차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육군훈련소의 명소라고 할 수 있겠다.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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