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년 통일벼 1호 자급자족 신호탄 . 88올림픽 계기로 기능성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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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인 벼 품종 개량의 역사는 일제에 사실상 주권이 넘어간 1906년 수원에 설치된 대한제국 권업모범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업모범장에서는 일본의 벼 품종을 도입해 우리나라 적응시험을 거친 뒤 농가에 보급했다. 아울러 우리 재래종에 대한 수집조사가 이뤄져 <조선 도품종 일람>에 따르면, 1911~1913년에 1451품종이, 1922~1923년에 448품종이 수집 정리됐다. 재래종에 대한 유전자원 조사도 대부분 일본인들 손에 이뤄졌으며 이들은 일제 패망후 이 유전자원 기록을 일본으로 가져가버렸다.
62년 농촌진흥청이 출범하면서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쌀 자급자족의 대전투가 시작됐다. 농진청 연구팀은 필리핀의 국제벼연구소와 합작으로 자포니카와 아열대 인디카계열의 두 품종 간의 삼원교잡을 통해 마침내 71년 통일벼1호를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자포니카 품종보다 20% 이상 수확이 많은 이 통일벼의 개발은 우리나라 벼 육종사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곡 자급자족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통일 품종의 집중 보급으로 75년 쌀 총생산량 467만t을 달성해 쌀 자급을 이루게 됐고 77년에는 ㏊당 전국 쌀 평균 수량이 4.94t으로 단위면적당 세계 최고 수확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른바 ‘녹색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통일벼는 밥맛이 일반미에 비해 떨어지는데다 78년 도열병에 완전히 폐농한 ‘노풍벼’사태, 80년 혹심한 냉해 등을 거치면서 안전성을 중시해 다시 자포니카 품종으로 육종 방향이 돌아서고 통일벼는 사라지게 된다.
88올림픽도 벼 육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올림픽을 계기로 식생활 패턴이 곡류에서 고기와 채소류, 과일로 바뀜에 따라 농촌지역에 겨울철에도 채소와 과일 생산이 가능한 비닐하우스가 대거 등장한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끝난 5~6월에 파종이 가능한 조생종벼들이 이후 집중 육성된다.
농진청 작물시험장은 90년대부터 특수미(기능성쌀)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93년 일반 품종 쌀알보다 1.7배나 큰 ‘대립벼1호’를 시작으로 95년에는 향기나는 쌀 ‘향남벼’, 누룩과 청주 제조용으로 ‘양조벼’ 등을 개발해 냈다. 2000년대 들어서 발효식품용 ‘설갱벼’, 검은쌀인 ‘흑진주벼’, 적갈색쌀 ‘적진주벼’ 등을 잇따라 내놓았으며 최근에는 혈당 감소와 비만환자의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고아미벼2호’를 개발했다.
황홍구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벼유전육종과장은 “우리 육종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우수한 쌀 품종이 있는 만큼, 보관·유통 과정을 개선하고 쌀 가공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부가가치도 높이고 새로운 수요도 창출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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