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해당문중에 관리책임있다, 변명 , 해당문중에선 직손이 관리해야 발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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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의 향토문화유산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논산시 벌곡면 신양리 도로변에 위치한 효자 안여택[1691-1783]의 정려는 조선조 숙종조의 효자 안여택의 덕행과 효행을 기리기위해 고종 28년 [1890]조정에서 안여택에 대해 숭록대부 호조판서겸 동직여례의 벼슬을 추증하고 정려의 명을 내려 세운 것으로 100년이상을 고을 관아및 문중에서 관리해 왔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도 돌보는이 없이 방치된채 오가는 길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산시의 한 문화재 담당자는 동 정려에 대한 관리는 해당문중에서 하는것이 맞다고 말하고 국가지정문화재나 시,도 지정문화재 자료가 아니어서 논산시에서 여러곳에 산재해 있는 정려 등에 대해 모두 관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벌곡면 신양리에 거주하는 이모[54]씨는 동 정려가 문화재급 자료는 아니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만큼 시 당국의 적극적인 관리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여택 정려의 안내문에는 정려의 주인공 안여택은 순흥인[ 順興人]으로 문성공 안향의 17세손이다. 그는 母親이 병환에 있을 때 비록 18세의 나이였지만 단지[斷指]하여 그 피를 넣어 드리며 병간호를 했고,
그 후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 맞아들인 계모가 병들어 누웠을 때에도 단지하여 그 피를 넣어 드려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아울러 그의 나이 63세 때에는 부친이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분뇨의 맛을 보며 효성을 다하였고 모친이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시묘[侍墓]하였다고 전한다.
안여택은 육영사업에도 관심을 보여 고을에 양곡서당을 설립 하는 등으로 유림의 효행천거로 동지중추부사 숭정대부에 올랐고 9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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