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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 서재필 박사의 동상이 지난 5월 6일 워싱턴의 한국총영사관 앞에 세워졌다는 소식이다,
동상은 양복차림에 왼손에 재킷을 든 모습으로 박사의 외갓집이었던 전남 보성에 세워진 동상과 같은 모습이라고 알려졌다,
워싱턴의 한국인 동상 1호로 알려진 서재필 박사의 동상이 세워진데 이어 워싱턴 시는 5월 6일을 “서재필의 날”로 선포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미국한인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서재필박사의 동상건립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젊은이들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라라는 기대가 있음직하다,
송재 서재필 박사는 잘 알려진 대로 1884년 12월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했고 그사이 조선에 남아있던 가족들은 모두 역적으로 몰려 죽는 바람에 혈혈단신이 됐다,
그는 믿었던 일본정부가 조선의 망명 정객들을 냉대하자 박영효 서광범등과 함께 미국행을 결심하고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낮엔 막일을 하고 밤에는 영어를 배우는 등 주경야독 끝에 워싱턴 컬럼비안대 의학부를 졸업 의사가 됐다,
미국주류사회의 일원이 된 서재필박사는 조선에 갑오경장이 시작되면서 개화파 정권의 권유로 다시 귀국 ,독립신문을 만들며 활약하다 수구파가 정권을 잡자 1898년 또 다시 미국의 추방됐다,
서재필 박사는 3,1운동이후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의사로 일하던 중 광복 후에 미군정 최고 고문으로 귀국 했으나 정부수립 후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세상을 떴다,
6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조국의 개화와 독립에 몸 바쳤고 주미대사관은 그가 몸으로 실천한 나라사랑 동포애를 동상건립으로 구현해냈다,
이는 재미 한국인의 자부심의 표현이자 고국사랑의 변치 않는 다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송재 서재필 박사의 워싱턴 동상건립과 관련한 주요보도매체의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송재선생의 본가 와 생가가 있는 논산인 으로서 반갑고 대견한 마음에 앞서 손재 선생이 전남보성 출신이라는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송재 서재필 박사의 본가는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이며 박사의 부친 서광효 선생과 모친 성주이씨 는 지금도 금곡리 선영에 모셔져 있고 송재 선생의 부인 광산김씨는 선영에 모셔져 있다가 송재 선생이 국립묘지로 안장된 2년여 후 합장됐다,
송재 선생의 부친 서광효선생과 모친 성주이씨는 송재 선생을 잉태 한 뒤 출산을 위해 당시의 관습에 따라 외갓집인 전남보성으로 가서 출산을 했고 다시 본가로 돌아온 송재 선생은 유년기와 소년기를 논산 연무읍 금곡리 에서 보낸 것이 명약관화 한데도 송재 선생과 관련한 근세의 모든 기록들에는 송재 선생을 전남보성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음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거기에 더해 전남 보성군에서는 송재 선생의 외갓집을 중심으로 상당한 예산을 들여 성역화 사업을 펼치고 있고 송재 선생의 외가가 성주 이씨 문중 인데도 불구하고 안동김씨가 외가라고 주장하고 있다니 기가 찰 일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송재 선생의 본가가 있는 연무읍 금곡리 주민들이 나서서 해마다 송재선생 추모제를 지내고 7년여 전부터는 동양한방병원 이사장 김광수 선생을 필두로 송재 서재필박사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생가 및 본가복원 은 물론 선생의 고결한 애국 애민정신을 기릴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니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일이다,
필자는 논산시나 충남도가 송재 선생에 대한 모든 기록들에서 본가 및 생가 에 대해 보성출신이라는 오류부터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임을 감히 주장하고 싶다,
또한 숫한 어려움 속에서도 매년 연무읍 금곡리 송재선생 사단에서 매년 추모제를 거행해 송재 정신의 얼을 기리고자 애쓰는 김광수 선생을 비롯한 뜻있는 지역인사들의 고향사랑의 큰 뜻에 삼가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뜻을 드리면서 머지 않은 날 우리 논산에 자랑스러운 논산사람 송재 서재필 박사의 동상을 건립하고 그 앞에 엎드려 큰절한번 하고 싶은 소망을 전한다,,,
[전 김대중 대통령 특보 김수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