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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와 충청남도 지역을 통칭하는 이름.
1896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북도와 남도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단일한 행정권을 이루고 있었다. 삼한시대에 충청도는 마한(馬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쟁탈이 이루어졌던 지역으로, 대부분 백제에 속했으나, 옥천·보은·영동·황간·청산·회인·문의 등은 신라의 영역이었으며, 백제가 공주·부여의 남쪽으로 도읍을 옮긴 후 충주·청풍·단양·괴산·제천·영춘·연풍·청주·청안·진천 등은 고구려 영역이 되었다가 후에 신라의 세력권에 들었다. 660년(의자왕 20)에 신라와 당의 연합군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잠시 당의 관할하에 있다가 신라에 귀속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웅주도독부(熊州都督府)를 두고 군현을 관할하게 했다. 통일신라 말엽 후삼국이 성립되자 이곳은 후백제와 태봉의 영역으로 나누어졌다. 고려에 들어 995년(성종 14)에 충주·청주 및 주변 지역을 중원도(中原道)로, 공주·운주(運州:洪州) 및 주변 지역을 하남도(河南道)로 했다. 1106년(예종 1)에 관내도(關內道)와 중원도·하남도를 합하여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고쳤다가 1172년(명종 2)에 중원도·하남도를 분리하여 충청도(忠淸道)라 했으나, 1314년(충숙왕 1)에 다시 양광도에 통합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충청도를 분리했다.
조선의 건국으로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함에 따라 1395년(태조 4)에 양광주(楊廣州) 관할 군현은 경기도로, 충주·청주·공주·홍주 관할 군현은 그대로 충청도로 이름했다. 1399년(정종 1)에 강원도의 영춘을 편입하고 영월을 강원도로 이관했다. 1413년(태종 13)에는 여흥·안성·음죽·진위·양성·양지를 경기도로 이관하고, 경상도의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로 편입하여 수도의 이전에 따른 도의 경계를 마무리짓고, 조선시대 동안 54개 군현을 관할했다.
충청도라는 명칭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가장 큰 4개의 고을, 즉 충주목·청주목·공주목·홍주목 가운데 충주와 청주의 머리글자에서 연유한 이름인데, 조선시대에는 이들 고을에서 모반이나 강상죄인(綱常罪人) 등이 발생하면 그 고을을 현으로 강등하여 개칭함에 따라 도의 이름도 충공도(忠公道)·청공도(淸公道)·공청도(公淸道)·공홍도(公洪道)·홍충도(洪忠道)·충홍도(忠洪道) 등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가 복구되곤 했다. 충청도는 호서(湖西)라는 별칭으로 많이 불렸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충청도가 폐지되어 사라지고 충청도에 속했던 군현은 모두 군(郡)이 되어 공주부·홍주부·충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의 13도제(道制) 실시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나누어졌다.→ 충청남도, 충청북도
1896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북도와 남도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단일한 행정권을 이루고 있었다. 삼한시대에 충청도는 마한(馬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쟁탈이 이루어졌던 지역으로, 대부분 백제에 속했으나, 옥천·보은·영동·황간·청산·회인·문의 등은 신라의 영역이었으며, 백제가 공주·부여의 남쪽으로 도읍을 옮긴 후 충주·청풍·단양·괴산·제천·영춘·연풍·청주·청안·진천 등은 고구려 영역이 되었다가 후에 신라의 세력권에 들었다.
660년(의자왕 20)에 신라와 당의 연합군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잠시 당의 관할하에 있다가 신라에 귀속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웅주도독부(熊州都督府)를 두고 군현을 관할하게 했다. 통일신라 말엽 후삼국이 성립되자 이곳은 후백제와 태봉의 영역으로 나누어졌다
. 고려에 들어 995년(성종 14)에 충주·청주 및 주변 지역을 중원도(中原道)로, 공주·운주(運州:洪州) 및 주변 지역을 하남도(河南道)로 했다. 1106년(예종 1)에 관내도(關內道)와 중원도·하남도를 합하여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고쳤다가 1172년(명종 2)에 중원도·하남도를 분리하여 충청도(忠淸道)라 했으나, 1314년(충숙왕 1)에 다시 양광도에 통합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충청도를 분리했다.
조선의 건국으로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함에 따라 1395년(태조 4)에 양광주(楊廣州) 관할 군현은 경기도로, 충주·청주·공주·홍주 관할 군현은 그대로 충청도로 이름했다. 1399년(정종 1)에 강원도의 영춘을 편입하고 영월을 강원도로 이관했다.
1413년(태종 13)에는 여흥·안성·음죽·진위·양성·양지를 경기도로 이관하고, 경상도의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로 편입하여 수도의 이전에 따른 도의 경계를 마무리짓고, 조선시대 동안 54개 군현을 관할했다. 충청도라는 명칭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가장 큰 4개의 고을, 즉 충주목·청주목·공주목·홍주목 가운데 충주와 청주의 머리글자에서 연유한 이름인데, 조선시대에는 이들 고을에서 모반이나 강상죄인(綱常罪人) 등이 발생하면 그 고을을 현으로 강등하여 개칭함에 따라 도의 이름도 충공도(忠公道)·청공도(淸公道)·공청도(公淸道)·공홍도(公洪道)·홍충도(洪忠道)·충홍도(忠洪道) 등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가 복구되곤 했다. 충청도는 호서(湖西)라는 별칭으로 많이 불렸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충청도가 폐지되어 사라지고 충청도에 속했던 군현은 모두 군(郡)이 되어 공주부·홍주부·충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의 13도제(道制) 실시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나누어졌다.→ 충청남도, 충청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