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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결혼식 철입니다. 청첩장이 오면 가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동료교수의 자제인 경우는 대개 참석하지만, 졸업생들의 결혼식에 가는 것은 솔직히 망설여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생각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유전자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아주 본능적입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동물사회나 인간사회를 가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을 적용해 설명합니다. 이 게임이론은 상대방에 대해 불리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형량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 두 죄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죄수가 서로 의리를 지킨다면 두 사람 모두 유죄를 선고 받겠지만, 서로 불리한 증거를 폭로한 경우보다는 형량이 적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배신을 한다면 배신한 쪽이 훨씬 유리해집니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게임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편의상 죄수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 버리고,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점수 따기 게임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두 사람이 의리를 지키면(침묵을 지키면) 3점씩(포상) 얻습니다. 둘 다 배신하면 각각 1점씩(징벌) 얻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배신하고 다른 쪽은 의리를 지키면 의리를 지킨 사람은 점수를 얻지 못하고(어리석음의 대가), 배신자는 5점을 얻습니다(악마의 유혹). 따라서 상대편이 배신할 것이라면 여러분도 배신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래야만 0점이 아닌 1점이라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편이 배신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여러분은 배신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이 경우 여러분은 3점이 아니라 5점을 얻습니다. 그러나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은 상호 배신입니다. 의리를 지키면 두 사람 다 최소한 3점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1점밖에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을 한 번만 한다면 상대방은 의리를 지키고 여러분은 배신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바로 5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임이 반복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상대방은 여러분이 배신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에는 상대방이 배신하려 합니다. 그러면 서로 배신했기 때문에 1점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는 서로 의리를 지키는 쪽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입니다. 서로 의리를 지켜 3점을 받는 쪽으로 말입니다.
원래는 이 이론이 경제학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동물행동의 진화를 설명할 때 적용됩니다. 흡혈박쥐는 피를 제공 받은 적이 있는 동료에게만 피를 토해 줍니다. 개코원숭이는 싸움할 때 자신을 도와 준 동료만 도와 줍니다. 임팔라영양은 자신의 몸에 있는 기생충을 떼어준 동료의 몸의 기생충을 떼어줍니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친한 사이에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본 개체나 전에 봤더라도 다음에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 보이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도와주면 다음에 네가 도와줄 거라는 신뢰가 있을 때 협력은 가능합니다. 이 협력을 진화적 안정전략이라고 부릅니다. 상대가 의리를 지키고 여러분이 배신하면 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지만 이것이 진화되지 않고 서로 의리를 지키는 3점이 바로 진화적 안정전략이라는 자연선택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단골집을 찾는 것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가끔 역이나 터미널 근처의 음식점을 찾으면 단골집에서 먹는 것보다 값도 그렇고 맛도 별로 없습니다. 역이나 터미널 근처의 음식점은 대개가 똑같은 손님이 두 번 이상 찾는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단골집은 같은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값이나 맛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됩니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습니다. 서울의 많은 지역에서 인물을 따지기보다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많이 준 것은 뉴타운과 재개발의 기대효과가 한 몫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협력은 개인이 이기적일 때 가능합니다. 한나라당과 지역주민이 죄수의 딜레마게임을 계속해간다면 이렇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한 번에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지역주민 간의 게임에서 분명 누군가 5점을, 다른 하나는 0점을 받게 되는 게임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민들이 5점을 벌기 위해 협력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0점, 즉 배신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동물이나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기적이어서 협력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유익할 경우에만 협력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단골 음식점이 없는 객지여행에서 기사식당을 찾는 것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내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집값 상승의 기대심리로 표를 찍었다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위험한 점수에 베팅을 한 셈입니다.
필자소개
박시룡
경희대 생물학과 졸, 독일 본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한국교원대 교수ㆍ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소장.
대표 저서「동물행동학의 이해」, 「과부황새 이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