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시름의 바다 태안에서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1-28 14:42:25

기사수정
 
시름의 바다 태안에서

죽음처럼 깊은 침묵에 잠겼던 바닷가에 돌연 활기가 넘쳐납니다. 사라진 물새 대신 젊은이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파도 위를 경쾌하게 날아오릅니다. 아직도 이른 시각 노랑 파랑 잿빛 흰색... 갖가지 색깔의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바지런한 손길이 시름에 겨운 겨울 바닷가 모래와 자갈, 돌, 바위를 어루만지며 태안의 아침을 깨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과 태안에 가기로 약속한 그날은 마치 어릴 적 소풍가던 때처럼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꼭두새벽에 깨어나 이것저것 준비물들을 챙기고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친구가 다니는 교회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 네 명이 잇달아 택시에 합승했으니 기사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차, 깜박 잊고 모자를 빠뜨렸네”하고 걱정했더니 나이 지긋한 기사가 불쑥 털모자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마침 어떤 손님이 새 모자를 차에 두고 갔다면서. 우리 일행이 태안으로 간다는 걸 눈치 챈 것이지요.

교회 봉사대원들을 태운 버스는 앉자마자 김밥, 떡, 귤, 사탕에 커피까지 한 아름 안겼습니다. “이거 꼼짝없이 봉사하게 만드는군.” 누군가의 농담처럼 차안 분위기가 마치 전선으로 떠나보내는 장병 대하듯 해서 태안으로 향하는 결의를 새로이 다지게 했습니다.

좁은 해안 길을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수많은 버스들이 줄지어 들어갑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태안반도의 북서쪽 만리포와 신두리 사이의 개목항이라는 곳입니다.

자그마한 포구에 좁다란 모래밭이 깔려 있습니다. 모래밭을 감싸듯 포구 외곽에는 돌과 바위가 포개어져 있습니다. 굴양식, 조개잡이가 생업인 이곳 바닷가는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모래와 뒤섞여 유난히 하얀빛입니다.

먼저 도착한 자원봉사자들이 벌써 판을 벌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입었다 벗었는지 지급받은 부직포 방제복 상태는 엉망입니다. 지퍼가 떨어져 앞가슴이 터진 것, 허벅지가 드러난 것, 등어리가 구멍난 것, 옆구리가 꿰어진 것... 모두들 서로 손가락질해가며 가가대소합니다. 원주민도 물새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린 바닷가에 봉사자들이 떠드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와! 왕건이다. 왕건이-”
넓적한 돌을 뒤집던 젊은이 하나가 소리를 지릅니다. 예전엔 분명 게나 굴조개가 숨어 있었을 돌 밑바닥에 지금은 시커먼 타르 덩어리가 엉겨 붙어있습니다.

제법 희끄무레해진 모래밭이지만 호미나 삽으로 한 뼘 깊이만 파보아도 이내 거무죽죽한 기름 뻘이 암반 위를 지층처럼 덮고 있습니다. 처음 모래밭을 밟으며 “이야, 그 동안 열심히들 치워서 많이 깨끗해졌네”하던 감탄사도 이내 한숨으로 바뀌고 맙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김유미 연무읍장 "존중[尊重]과 경청[敬聽]의 자세로 주민 섬긴다 , "연무읍 논산의 관문답게 가꿀것 , ..". 지난  4월  윤기암  전 읍장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연무읍장에 전격 발탁된  김유미  [56]사무관이  논산시 읍.면지역 중  인구수로나  면적이  가장 큰  연무읍  63개  마을 탐방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무읍 태생의  고향면장을 ...
  2. 서원 논산시의회 전의장" 같은당 소속 국회의원 향해 지역구 현안 외면 당내 계파정치 행동대장? 직격 [ 이런때도 있었는데.......
  3. 논산시 취암동 금호고속 건너편 "전주콩나물국밥집 " 5,000원 으로 맛진 한끼 ! 김태음 전 지사도 엄지척 ! 논산시  취암동  금호고속  건너편애  위치한  "전주콩나물국밥집 " 제법 넓직한  식당내부는  청결한 가운데서도  이른아침부터  늦은 시간 까지  늘상 붐빈다, 십수년재  같은 장소에서  성업중인  이 식당의  단골메뉴는  " 단연  콩나물국밥 "  인기쨩이다,황태국밥 ,콩국수&...
  4. 충남선관위, 선거법 위반 혐의 논산시 공무원 검찰 고발,축우회회원들에 '오인환시장 만듭시다' 문자 전송 충남선관위, 선거법 위반 혐의 논산시 공무원 검찰 고발축우회회원들에 '오인환시장 만듭시다' 문자 전송충남선거관리위원회 전경충남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오인환 논산시장 후보를 지지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논산시청 소속 공무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23일 아시아...
  5. 논산시 의정동우회 10대의회에 강경 사법청사 신축 ,황산벌전적지 위령비 건립 추진해달라 ,,이건창 의… 제10대 논산시의회가  개원한지 한달여만에  역대 논산시의회  의원들의  친목모임인  논산시의정동우회[ 회장  서평석 [1-2대의원 ] 회원들을  의회로 초치  간담회를 갖고  시정전반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역대  의회 중  선대 의원들에  대한  발빠른  예우...
  6. 논산시 포도수출작목반 김동준 대표 내년 상뭘 농협 조합장 선거 네번째 도전 할까? 상월농협 김동준 [63] 전 이사가 내년 3월에 실시되는 전국 지역농협조합장선거에서 상월 농협 조합장 선거에 재도전 입장을 분명히 했다,지난번 선거에서 자웅을 겨뤘던 일곱명의 후보 중 현 임덕순 조합장을 상대로 선전, 의미 있는 득표로 주목을 받아온 김동준 전 이사는 지난 주 굿모닝논산 김용훈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선거에서 ..
  7. 논산 출신 유흥식 추기경, 韓총리 만나 "교황도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 유흥식 추기경, 韓총리 만나 "교황도 한반도 평화에 깊은 관심"韓총리 "한반도 평화와 우리 사회 갈등 치유 계속 지원해달라"(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한성숙 국무총리는 1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을 공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고 총리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한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