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구집권을 꾀하던 빅정희 정권을 행한 국민의 원성은 높아졌고 독재 종식을 위해 항거하던 민주화 세력은 전국적인 저항조직을 결성 투쟁에 나섰다 .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의 줄기찬 민주수호투쟁이 전개되면서 전국 각지의 교도소들마다 반체제 인사들로 북적였다.
그런 가운데 중앙정보장이던 김재규가 박정희의 목숨을 앗았다.충격이었다 당시 국무총리이던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군한 대행이 돼서 국정을 이끄는 가운데 당시 국무총리이던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이 됐고 전국에 바상계엄령을 선포 했다, 당시 내가 투옥돼 있던 영등포 구치소에서는 박정희의 죽음이 알려지자 "우리가 이겼다" 거나 "만세" 소리가 진동했다.

박정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작고 큰 형을 받았거나 고법 등에 항소중인 민주 투사들은 곧바로 긴급조치의 해제와 함께 석방될것이라는 기대에 온통 들떠 있었고 어느날인가 교도소측은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던 민주인사들을 서너명씩 합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나는 오랜날의 민주화 운동의 선배동지이던 송좌빈[작고] 선생과 동아투위 사건으로 투옥됐던 성유보 선생 [작고]과 셋이서 혼거 하게 됐다. 그분들과의 합방 생활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께우침을 얻었다 "그 짥은 시간을 통해 그분들과 교유하면서 익힌 말씀들이 지금껏 소중한 내삶의 지표가 됐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정국 수습에 나선 최규하 정부는 1979년 12월 7일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해제 했다.
그날밤 12시가 다 된 무렵 석방됐다..
나는 어머니가 지어주신 한복바지저고리에 수염이 덮수룩한 모습에다 수건 으로 지어만든 보따리에 보던 책들을 담은 보퉁이를 짊어지고 성유보 송좌빈 선생과 함께 감옥문을 나섰다.
아버님과 만주헌정동지회에 속한 선배동지들이 우리를 반겼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중앙일간지 기자들이 우리가 감옥을 나서는 표정을 카메라 에 담았다.
그맨앞에 내가 있었다,아마도 한복 바지 저고리에 덮수룩한 수염이 그날 중앙 언론의 주목을 받은 듯 했다.

시간은 새벽으로 흘렀고 영등포 구치소를 나오면서 늦게 까지 불밝힌 한 식당에 들어가 간단한 국밥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비우고 나니 긴장이 풀리더니 몸이 피곤했다.
나는 일행의 안내로 가까운 호텔로 옮겨 단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7시 눈이 떠졌고 우리의 다음 일정을 안내하던 유바오로 [작고] 선배의 안내로 안국동 윤보선 전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하는 것으로 감옥에서 벗어난 첫 일정을 시작 했다.
커다란 한옥이던 노 대통령의 사저에도 이미 방문객들로 북적 였다, 나는 감옥에 머무는 동안 대통령님과 부인 공덕귀 여사님이 영치금을 보내주시고 동 서양 고전을 넣어주셨던 감사함을 전하면서 두 분께 큰절을 올렸다,
다시 뵙갰노라며 하직인사를 고한 뒤 동교동 김대중 선생의 사저를 방문 했다, 이미 군복무사절부터 몆번 방문 했던 터라 눈에 익은 동교동 사저에 도착하니 연금에서 풀려나신 김대중 선생의 사저는 이미 수백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내노라하는 전국의 방문객들이 찾아와 넓직한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비서실 직원들의 안내로 접견실에 들어갔다, 활짝웃어 반겨주시는 김대중 선생과 부인 이희호 여사를 뵙고나니 그저 눈물이 핑돌았고 나는 그자리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감옥 생활 중 부어주신 은의에 감사드렸다.
몸은 어떠냐 아픈데는 없느냐는 물음과 함께 내손을 한참 동안 잡아주시며 바라보던 선생께서는 하직 인사를 드리는 나에게 " 용훈군은 일주일만 쉬고 올라오소 " 라는 말씀을 주셨다.
"일주일만 쉬고 올라오소 " 라는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계속 밀려드는 방문객 때문에 더 머물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접견실을 나서 돌아서는데 동교동 비서실의 큰형님으로 불리우던 권노갑 선배님이 나를 비서실로 데려갔다.
커피 한잔을 손수 권해주신 권노갑 선배님은 내게 산생님께서 일주일만 쉬고 올라오소 라고 말씀 하신것은 내게 동교동 비서실에 합류하라는 말씀이시니 집에가서 일주일만 몸을 추스리고 다시 올라오라는 친절한 안내를 곁들였다.
어안이 벙벙했고 당혹을 금치 못했으나 권노갑 선배 님의 그말씀을 듣고나니 가슴이 뛰었다.
언감생심 그 무엇하나 내세울것이라고는 없던 스물 여덞살의 내가 선생님을 곁에서 모실수 있다는 그 사실 앞에 마음은 콩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