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충남 계룡시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의 비전과 가치를 담은 주제어를 발굴하기 위한 SNS 공모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2029년 10월 5일...
낭인[浪人]의 자회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되다,,, 운명의 시간들이 다가서고...
낭인[浪人]의 자화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 대전지방법원에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징역 2년4개월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서울고등밥원에 항소했다. 민주헌정동지회 측에서 이택돈 의원 등 두명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해 주었다. 생각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심정은 담담했고 나...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협의로 징역살이를 경험한데다 육군상병의 군복을 입은채 반체제 운동의 구심점이던 김대중 선생의 동교동 사저 담벼락을 넘는 등의 기행으로 사정당국의 요시찰 대상이된 나의 사병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32 사단에서 훈병 생활을 마친 필자는 신병교육대 수료 후 보안사 요원으로 배치됐으나 두번째 신원 조회를 통해 대통령선거법 위반의 전과 기록이 밝혀지자 논산 ,부여 ,공주지역의 예비군 교육을 담당하던 부여지역의 모대대로 재배치 됐고 군생활 내내 예비군 교육 조교생활 끝에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고 논산으로 돌아왔다.
젊은날의 일상은 순탄치않았다, 일정한 직업이 있을리 없었고 자연스레 군 입대전에 가깝게 지내던 지역의 선배 정객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들이 많아 졌다. 야당가의 막내로 자리매김 하면서 전국 농민회 출범 전 농민권익 옹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카톨릭 농민회 교육을 받기도 했고 수세페지운동에 전넘 하면서 논산군 농민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날들을 통해 전국의 동지들과 더불어 투쟁한 끝에 수세 폐지를 조기에 이끌어 낸것은 지금껏 일말의 보람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
그러던 어느 순간 무의미한 허송세월에 대한 회의감에 가슴이 짓눌리면서 내 미래에 대한 변화를 가져와야 겠다는 일말의 자각 끝에 경찰관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 들려 수험교재를 구입해 들고서는 시험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어느날 논산의 선후배들 넷이서 순경시험에 응시 했다.
그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아마 주관식 문제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같이 시험을 본 넷중에서 홀로였다. 인천 부평에 있던 경찰종합학교에 들어가 3주간인가의 교육을 받았다, 목소리 탓인가 ? 생도 중대장으로 발탁됐다, 나름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같은 값이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겠다는 의지가 늦은밤까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공부에 열중하기도 했다 토,일요일이면 외출외박을 통해 나름 화려한 러브 스토리를 엮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또 절망이 나를 험지로 내몰았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극성하던 시절에서 나의 전과 이력이 다시 또 발목을 잡았다,
하루는 종합학교 학생대정이던 모 경감이 호출했다.
학생대정실에 들렸더니 나를 맞은 학생대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경찰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경찰이 행한 신원 조사에서 일단 통과 되기는 했으나 두번째 신원 조회를 통해 다시또 대통령선거법 위반의 범죄 이력이 뒤늦게 불거져 나왔다고 했다.
내고향인 양촌면의 당시 지서장이 내이름자의 끝자인 훈 [燻] 자를 제 대로 식별해 내지 못하고 통과 시켰던 것이 두번째 조회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했다.
학생대장은 얼마간의 비용을 내게 건네면서 자질은 충분한데 자신들도 안타깝다면서 자퇴를 종용했다, 그러면서 내가 행정소송을 내면 자기네들이 상당한 곤혹을 치를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경찰관으로 성장하는 일은 힘들것이라며 솔직한 속내를 들어내 보였다.
나는 망연자실 했지만 " 어쩔수 없는 것은 역시 어쩔수 없군요 "라는 체념섞인 한마디를 내뱉고 경찰 학교 문을 나서 다시 또 낭인으로 돌아섰다,
3주간의 교육기간을 통해 사귀면서 연인관계로 발전 했던 당시 마포우체국에 적을 둔 주모 양에게는 내 신분상의 변화를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조차 없어 알리지 않고 다시 논산으로 돌아왔다.
그때 "곁"을 나누던 동료들 중 총경을 달고 근무하면서 정년을 맞기도 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