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충남 계룡시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의 비전과 가치를 담은 주제어를 발굴하기 위한 SNS 공모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2029년 10월 5일...
낭인[浪人]의 자회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되다,,, 운명의 시간들이 다가서고...
낭인[浪人]의 자화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 대전지방법원에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징역 2년4개월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서울고등밥원에 항소했다. 민주헌정동지회 측에서 이택돈 의원 등 두명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해 주었다. 생각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심정은 담담했고 나...
낭인의 자화상 [1] 두번의 감옥생활 , 김한수 의원 비서로,, 다시 野人으로.....
한평생을 살면서 겪은 두번의 감옥생활 ,, 돌이켜보면 악몽이었다는 생각 보다는 두번다 곱징역이라 불리우는 독방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그 시간들을 후회해본 기억은 없다.
아니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다시 그런경우가 생긴다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 싶다.
첫번째 김옥행은 내나이 스물 한살 시절 1971년도 에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서울고법에 항소한 끝에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것이고 두번째는 스물일곱살 시절 1979년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 협의로 징역 2년6개월 자격정지 5년형을 받고 대전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 그것이다.
그날들을 회억하면서 다시 또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모진 날들을 통해 겪은 쓰디쓴 경험은 그후 이어진 내인생행로를 통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엔 쉽게 내놓을 답이 없다,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첫번째 감옥생활을 할 때도 지금처럼 째는 듯한 여름날이 었고 두번째 감옥에 단져졌을 때도 염천폭양의 계절이었다.
첫번째 감옥에 던져진 것은 71년도에 치러진 7대 대통령선거 때 내나이 스물 두살때 그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 선거후 상대 정당의 고발에 의해서 였다.[당시 고발인은 양순직 의원 ]
강경 법원에서 징역 1년 인가를 선고받고 선울 고법으로 항소 한 뒤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됐고 항소심에서 벌금 5000원을 선고받은뒤 석방됐으니 징역운은 좋은 셈이었지 싶었다..
감옥애서 풀려나온 뒤 군입대를 자원 하고 싶었다, 당시 해군 입대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추천이 필요 했고 당시 8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한수 의원을 국회의원 회관 [ 현 코리아나 호텔]을 방문 해군 입대를 위한 추천장을 써즐것을 요청 했다.
그때 김한수 의원은 아직 징집 영장이 니오지도 없았는데 군에 일찍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국회의원 비서실에서 일해 즐것을 권유 했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들리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그 제안을 수용했다. 국회의원실에서 내가 맡은 주임무는 김한수 의원이 대정부 질문요지를 정서 하는 일과 의원 회관 방문객을 응대 하는 일이었지만 김한수 의원은 박정희 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우는 선봉장 역을 맡은 터여서 사무실 분위기는 늘상 긴장의 연속이었고 당시 김한수 의원 비서관은 고 김수진 선생으로 김한수 의원을 훌륭하 보좌했다.
그러나 영구 집권을 확책 하던 박정희 정권은 어느 가을날 느닷없이 국회를 해산 하는 폭거를 자행했고 김한수 의원은 민주화 투쟁의 강골 인사들과 함께 체포돼 끌려가 모진고문을 받는 등 정치적 수난을 겪었고 나는 논산으로 다시 돌아와 마침 당도한 현역 징집 영장을 받고 32사단에 입대 했다.
나의 현역병시절은 논산 공주 부여 지역의 예비군 교육을 담임 하는 조교 생활로 마감하고 어느 휴가일에는 상병 게급장을 단 군복을 입고 당시 사찰당국이 입출입을 통제 하던 서울 동교동 김 대중 대통령의 사저 담을 넘어 들어가 선생께 큰 절을 올리는 등으로 헌벙대애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는 등 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 제대 했고 다시 고형 논산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반체제 운동의 선봉에 섰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