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계룡시,「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주제어 SNS 공모 이벤트 개최- 시민과 함께 만드는 엑스포... 8월 10일부터 20일까지 주제어 공모 - 충남 계룡시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의 비전과 가치를 담은 주제어를 발굴하기 위한 SNS 공모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9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2029년 10월 5일...
낭인[浪人]의 자회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되다,,, 운명의 시간들이 다가서고...
낭인[浪人]의 자화상 [6] 대전교도소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 대전지방법원에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징역 2년4개월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서울고등밥원에 항소했다. 민주헌정동지회 측에서 이택돈 의원 등 두명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 해 주었다. 생각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심정은 담담했고 나...


계백과 관창의 구국 혼[魂]을 쫓다,
백제 16관등 중 두번째 품계인 달솔[達率]의 지위에 오른 계백대장군은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한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칠천의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섰다
이미 나라의 멸망을 예감하여 처자식을 목베고 전선에 나선 계백과 그를 따르는 장졸[將卒] 들의 사기[士氣]가 오를리 없건만 정사[正史]나 야사[野史]를 통해 전해지는 황산벌 전투의 내용들은 백제의 계백과 오천의 결사대가 5만신라군을 당적[當敵]해서 네번을 싸워 이긴끝에 세궁역진[勢窮力盡]한끝에 결국 전멸[全滅] 당했다고 쓰고 있다
지금의 연산면 관동리에 소재한 황산성에 장군진을 설치하고 전투를 지휘하던 계백대장군 앞에 단기필마로 백제군 진영을 짓쳐들어온 열여섯나이의 화랑 관창이 붙들려왔을때 어린아이를 차마 목벨수 없었던 계백이 이를 측은히 여겨 살려보냈음에도 죽기를 한사코 달려드는 관창을 결국 목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내니 분기탱천[憤氣撑天]한 신라군이 백제군을 무찔러 승리로 이끌었다고도 쓰고 있다
계백대장군을 따라 전투에 나선 칠천의 군사들..마지막 결전을 앞둔 대장군 계백은 이천여의 노약 장졸[老弱將卒]들을 불러모아놓고 "그대들은 싸움에 나설것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 처자식과 부모를 봉양하라"고 일러 돌아가라하고 끝까지 자신과 함께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4-5천의 결사대는계백대장군과 함께 분전[奮戰]끝에 목숨을 앗기니 이를 지켜본 노약장졸들이 순국혼[殉國魂]이됐다.
잔투가 끝나고 살아남은 장졸들이 죽어간 백제군의 주검을 수습해 묻으니 거기가 바로 오늘 연산면 연산리에서 송정리로 이르는 오르막 길섶의 골짜기가 시장골[屍葬骨]이다,
패주하던 또다른 백제잔병들이 계백대장군의 주검을 수습[收拾]하여 장군의 투구와 보검등과 함께 매장한곳이 바로 오늘 계백장군 묘소인 수락산[首落山]이며 가장골[假藏骨]이라고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계백대장군이 화랑관창을 목베었다는 곳은 계백대장군의 장군진[將軍陣]이었다는 황산성터로 오르다 만나는 관동리[官洞里]로 애초에는 관창골,관골,관저골로 지칭[指稱]되다 오늘날의 관동리로 불리우게 됐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2만오천분의1지도상에는 수락산[首落山], 가장골,[假葬骨]시장골[屍葬骨] 관동리 [官洞里]의 지명이 옛사람들의 의로운 넋을 기리듯 선명[鮮明]하게 표기되어 있다
더욱 계백과 오천결사대의 주검들을 수습[收拾]하여 매장한뒤 남은 노약잔병 들은 나라가 망한터에 돌아갈 고향이 따로 있겠느냐고 오늘의 연산지역으로 추정되는 "느르메'를 중심으로 새로운 삶의 둥지를 마련하니 이들이 바로 오늘날 논산지역 원주민들의 조상에 다름아니라고 야사[野史]는 적고 있기도 하다
나라를 구하기위해 싸우다 죽어간 백제 대장군 계백의 충의정신[忠義精神],,,,그에 맞서 임전무퇴[臨戰無退]의 화랑정신으로 초개[草芥]같이 몸을 던진 관창의 투혼[鬪魂]이 맞부딛혀 피워낸것이 오늘 우리 논산인들의 선비정신이며 충효정신[忠孝精神]이요 협동정신[協同精神]이나 아닌지 싶다
| 울창한 수림이 우거진 이곳 시장골의 원통한 넋들,, 그 원통한 넋들을 달래줄 그날은 언제 일 것인가?, |
우리나라는 옛이나 지금이나 의로운 이들의 삶의 궤적[軌跡]을 더듬어 드러내 밝히고 기리는데 인색하지않다
마을에 열녀 한사람만 있어도 조정에 상주해 정문[旌門]을 세우고 부모에게 효도한이를 기리는 효자비[孝子碑]또한 드물지 않게 세워져있음을 본다,
나라가 어려운 때 몸을 던진 의인[義人] 열사[烈士]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돌비를 세우고 흉상[胸像]을 건립하고 기적비[紀跡碑]를 세우곤한다, 조그만 나라 곳곳을 돌아보면 적어도 두어동네 간격으로 돌비석하나쯤 보기란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이웃한 금산군의 "칠백의총[七百義塚]'만해도 칠백의 의로운 순국혼을 기리는 기념비적 묘소이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중 대통령의 결단으로 조성한 사적지이다,
그렇게 볼때 우리논산인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어디에 내놔도 비견키 어려운 고결한 넋들인 계백과 오천결사대, 화랑 관창과 반굴과 신라의 전몰장병까지..그 위대한 순국혼[殉國魂]들에 대해 너무 무심한거나 아닌지 ,,하는 생각을 지우지못한다
물론 부적면 에 위치한 계백대장군의 묘소를 중심으로 군사박물관을 조성하고 충장사[忠將詞]를 세워 때때로 계백장군제[祭]를 지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황산벌이라 불리우는 그어디에도 계백과 함께 산화[散化]한 오천결사대.화랑과 반굴과 신라 전몰장졸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비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는것은 참으로 부끄러운일에 다름아니다
일찌기 논산시의회 2대의회가 황산벌 오천결사대 충혼비 건립을 위한 특별위원회 까지 구성해서 충혼비 건립을 추진한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수 십년전부터 도기정 논산시민소통위원장을 중심으로 결성한 황산성 복원회가 논산시 충남도 중 앙정부에 끜질긴 청원을 통해 충남도 차원의 황산성 복원 사업에 시동을 한 것으로도 일고 있으나 아직 주춤거린다,
논산시민들이 그에 대해 무심한중에 이십여년전에 년전 이웃한 부여군에서 상당한 예산을 들여 부여 궁남지 부근 화지산에 웅장한 규모의 오천결사대 충혼비를 세우고 백제문화제 전야제 성격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것은 더욱 논산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논산인의 한사람으로 서 오천결사대의 위대한 넋들의 주검을 다시 수습[收拾]하는 심정으로 시장골[屍葬骨]을 더듬어 위대한 넋들을 오늘에 되살려 내자고 제안한다,
선대 시의회의 제안에 한벌 더 나가 황산벌 전투에서 산화한 백제군 신라군 장병들의 합동 위령비 건립 추진을 하고 싶다.. 온나라가 동으로 서로 여로 야로 보수와 진보로 갈갈이 편가르기에 골몰한 이분열의 작태를 봉합할 거국적인 위령제 거행을 통해 우리 논산시가 국민 통합 화해의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아 !누구있어 계관[階官]의 꿈을 드러내 밝힐것인가?
논산시의회 의원 서승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