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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굿모닝논산 창간칼럼 "돌아보니 공[空]인걸"
  • 뉴스관리자
  • 등록 2016-12-26 16:23:09
  • 수정 2016-12-27 09: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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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들 양지로 등떠미는 훈훈한 미풍이 되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고향의 강가에 섰다, 여섯살 어린시절 얼음이 꽁꽁언 강에서 공차기를 하다 얼음이 깨져 얼음밑으로 떠내려가다 구사일생을 하기도 했던, 강모래 밭에서 소꿉장난으로 해지는줄 몰랐던 아련한 기억들이 생생한 강가에서 남은 생의 길을 묻는다.

고향의 강가에  섰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니 세상나이  예순을 훨씬  넘었습니다, 
 잡초[雜草] 처럼 살았습니다,
 
 양촌에서  방앗간집  둘째 손자로  태어났으니   운명의 시작은  괜찮은 것 같은데   참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서생적  기질을 지닌  아버지는   오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세상의 일손을  놨습니다. 가게를 꾸리는 수입원이던 문구점 문은 닫아야 했고 가족들의 일상은 엉망이 됐고 모두가 우울해졌습니다.
 
  술 취한 아버지의  악의 없는   폭력에  목숨을 떨어  울어야 했던   시절이  악몽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세상 누구에게도   해 끼치는 일은  하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었기에     미움 같은 건 없습니다.
 
  곤궁한  가계를 꾸려 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대건고  1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밤   바느질   품을 팔던  어머니의   눈물을  보게 됐습니다.
 
강경상고 졸업반이던   형과  나의  학비 모두를  댈 수 없어 오열하던 어머니의 그   얼굴에 비친 얼룩은 피눈물이었습니다,  고통스런  그 눈물을  견디기  어려워   가출 했습니다.
 
세상을 떠돌며 입에 빵 한 조각을 넣기 위해 드러내 밝히기도 민망한 일들도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맞은 스무 살 되던 어느 날 우연스레 정당 판에 뛰어듭니다.
 
정치가 뭔지 알지 못했죠, 아마 제7대 대통령 선거 8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던 때 였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돕는 대열에 몸을 담았습니다,
 
미치도록 열심히 했습니다, 엄동의 눈 내리는 겨울날 보자기에 싼 한 장짜리 달력을 돌리면서 밤의 시골길을 누벼야 했고 때론 상대편 운동원들과 격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후보의 당선과 김한수 국회의원이 탄생했지만 낙선한 패들은 나를 얽어맸고  결국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던져졌습니다.
 
항소심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할 일도 갈 곳도 없었습니다,. 군대에 지원 입대 하려는 순간 , 운명의 여신은 또 내편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김한수 의원의 권유로 비서실에서 [ 당시국회의원화관은 현재 조선일보 사옥] 일했습니다,
 
하는 일의 대강은 김한수 의원의 대정부 질문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수진 [작고] 비서관 등 참모들이 초안을 가져오면 김한수 의원이 단상에서 보고 연설할 수 있도록 마무리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희 정권은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 정국을 열었습니다, 김한수 의원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군대 갈 적령이 돼서 군에 입대 했습니다. 군복을 입고 휴기를 나와서도 정당 주변을 맴돌다 붙들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또 갈 곳 없는  낭인  생활에  몸을 맏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경찰 시험을 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영어 수학은 문외한이지만 다행히 경찰시험에 영어 수학은 없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경찰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인상 깊은 것은 시지선다형 외에 “ 무엇 무엇에 대해 써라 ”는 논문형 시험은 꽤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경찰 생활을 할 수 있었더라면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신원검증 과정에서 전과자 [대통령선거법 위반 ] 인 사실이 새롭게 들어나 자퇴 할 수박에 없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경찰 노릇을  하라는 팔자는  아니었나봅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다시 재야에 몸을 던진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던 대표적 민주운동단체인 민주헌정동지회 논산군 조직 책임자로 임명됐고 반체제 조직 활동을 하게 됩니다.,  제 나이 스물일곱시절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헌정동지회 회장은 71년 나를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던 양순직 의원이었습니다,
 
부지런히 했습니다, 작고한 부적의 서주원 노성의 문기범 선배 들이 경찰에 불려가 고초를 겪고 나는 대전 중부서로 끌려갔습니다.

다시  감옥의 찬방에   갇혀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중촌동   구 대전교도소   곱 징역이라  불리는   독방 , 그 지독한  외로움은 지금 생각해도  악몽입니다.
 
서슬 퍼런 박정권의 재판부는 징역 2년6개월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고  대전교도소를 거쳐 항소 끝에 영등포 구치소로 옮겨졌습니다,
 
법정에서 촤후 진술을 하던날 나는  “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 라며 독배를 마셨지만 본 피고는 악법은 철폐돼야 한다 ‘는 신념을 버리지 못한다고 외쳤고, 방청석을 꽉 메운 민주인사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방청석에는   양순직 전의원  김대중 대통령님의 큰아들 김홍일  선배의 모습도  보였습니다,.오래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영등포 구치소 ,,,당시 반독재 세력은 줄줄이 감옥행이라서 차디찬 감옥 방은 미어 터졌습니다. 누워도 한방 서도 한방 않아도 한방인 감옥의 좁은 방엔 햇살조차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추스려야 했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아침에 기상하면 담요를 접어 앞에 놓고 아내가 차입해준 책들을 놓고 읽기 시작 합니다.

 약혼을 했지만  이틀을  마다않고  면회를 와주는 그녀에게  미안했습니다,
 
비들기[편지]를 날렸습니다, “ 우리 손목한번 안 잡아본 사이니 날 포기하시오 , 아내는  약혼자가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버스 대신 완행열차를  타고  면회를  오가며  아낀 비용으로   책을  구입 해다  넣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햇살조차  들기를 꺼려한  김옥의 독방은   너무도  춥고   외로웠습니다. 또  아들을 감옥에 보내놓고   한복을 지어 보낸  어머니에게는 특히  죄스러웠습니다,

 번민의  긴 시간  속에  격식 없는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 밖에 있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상심하지 않고 스스로 갖는 민주회복의 신념을 스스로 의로운 것으로 다짐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라고 간구 했습니다.

기도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마음은 차분해 졌고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앗기고 긴급조치 9호 해제와 함께  석방됐습니다.
 
감옥을 나오면서 안국동의 윤보선 대통령 사저를 방문 감옥생활중 후원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동교동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뵙고 큰 절을 올렸습니다.
 
대통령 께서는 반갑게 손을 잡아주시면서 “ 김동지 고생했구먼 ,일주일만 쉬고 올라 오소” 하셨습니다, 귀가 의심스러웠지만 비서실로 출근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서울의 봄 그때 나는 대통령의 분신으로 전국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스토브가   추위를  녹이는 겨울의 동교동 서재애서   대통령의  불편한 발을  주물러 드릴 때  대통령 께서는   제게   무엇이 되는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올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 무리도 하지 말고  쉬지도  마라 “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 평생의 좌우명이  됐습니다,
 
 행복한 시간들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세력은  12,12 사태를 일으켰고   대통령은 감옥으로,,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아내와 함께 고향 양촌에서 귀양생활[?]을 합니다, 기가 막히게도 면사무소 경찰 중정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무시로 감시의 눈길을 보냈고 전두환 정권은 정치활동 규제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들에게  화를 내면  “ 불편 하신점이  없으신가  해서 왔습니다, ”  는
말에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던 중 김대중 김영삼 두 거목을 정치권에서 배제한 전두환 정권은 어용야당 민한당을 파트너로 해서 국정을 농단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국 등 자유우방의 거센 압력에 못이긴 전두환 정권은 끝내 김대중 선생의 귀국을 허용 한다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는 총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동교동 비서실 선배로부터 서울로 집결 명령이 전달 됐지만 논산을 벗어날 방법이 내게는 없었습니다,.

기차로도 버스로도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경찰은 말착 감시로 귀경길을 가로막았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시하는데 10여명의  경찰관들이  매달렸습니다. 대통령께서  귀국하던날  나는  끝내  귀경을 포기해야 했고  경찰관들과 함께 통음을   했습니다,  양주한잔에 우유한잔  번갈아 마시니  왜 그리  술이  취하지 않던지 ,,

 

 그때  총선을 통해  당선된 이미 고인이 된 김한수 전 의원과의 관계가 고약했습니다. 당초 저와 함께 정치활동규제에서 2차 해금된 김한수 의원은 민한당에  먼저 입당해서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민한당의  어용성을 극복하고 야당성 회복을 위해 애쓰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철승 당 지도부는 3차 해금자인 박찬의원을 공천자로 발표합나다,
 
민한당을 탈당한 김한수 의원은 자신을 도와 줄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공천을 못 받은 것을 기화로 민한딩을 탈당한다는 김한수 의원과의 합류를 거절 했습니다.
 
결과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신한민주당이 승리 했고  합류를  거절한  김한수 의원은  재선에 성공합니다,

 

나는 다시금 세상의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카토릭 농민회에 가입했던  나는  농민단체가  없던  논산에서  농민연합회를  스스로  결성해  초대 회장으로서   수세 폐지운동을  주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20년전 제2대 시의원 선거에 나섰습니다, 당시 논산읍 지역에서 둘을 뽑는 그 선거에서는 내 일생일대의 최고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가진 것 없이 선거에 나선 나에게 시민들은 4,974 표를 던져 3002표를 얻어 2위 당선자가 된 ㅅ모 의원을 2.000표 가까이 앞서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대한민국  기초의원  선거사상   2위 당선자와  표차이가  가장 큰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아내와 나는 1톤 트럭에 함께 올라 시민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올렸고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아마 결혼생활 이후 아내에게 남편 노릇 잘한 것은 그날 트럭위에서 받은 시민들의 환호를  안겨준  것이지 싶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충남도 사무처장에 발탁됩니다.,
시의원 생활,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계룡분리반대 , 황산벌 오천결사대 충혼비 건립 ,축산단지 집단화 주장한  일들은  옳은  일이었고  호남고속철도 정차역 건립에 대해서도 나는 2대의회 대표발의자로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독재와 싸워온 강성이미지에 겸손하지조차 못했던 터여서 공무원들 사이에선  아마도  기피인물  제1호 였지  싶습니다,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아무튼 다음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다시 나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했음에도 당은 도 사무처장인 나를 논산 1지구 도의원 선거에 공천자로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자민련의 임성규 전 시장 그리고 이인제의 국민신당으로 나온 김옥경 전 도의원과 자웅을 겨룬 선거에서 사무실 조차 마련하지 못한 나는 11,000 표를 얻어 18.000표를 얻은 임성규 후보에게 많이 뒤졌습니다. [김옥경 후보는 8000 여표 ]
 
스스로 분수를 알지 못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의 무모성이 내 발목을 묵어 버린 거랍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무처장을 하면서 당시 이인제 의원이 연무지구 도의원 보궐선거에 정서적으로 합당치 않은 후보를 공천한데 실망한 나는 제법 괜찮은 사무처장직을 내던지고 무소속으로 도전 또 고배를 마십니다.
 
그러니 생활은 엉망이고 아내와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2001년에는 뜻하지 않게 또 논산시장 재선거에 나서는 등  엉터리  행보를 거듭히면서 주변을 실망시킨 것 같습니다,

 

그런 경박하고 우유부단한 처신이 가져온  나의  일상은   헝크러질대로   헝크러졌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두  아들은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잘 자라주었고   큰 아이는   육군소령으로  지난해는 레비논  파병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세계를  종횡하며 꿈을 키워갑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아내의  은공입니다,  내게  아이들은  저절로 커준  하늘의  선물이지만 ,

,,

 정치적으로 엇박자의   광대춤을  덩실추는    헤픈날들을  보내면서 한때 저를 아껴주었던 지지자들은 모두 제 곁을 떠난 셈이고  무언가 할 일을 찾던 나는 월간 “ 새뜸 ” 잡지 창간했습니다,  

 

   역량부족이었겠지만 월간  “새뜸”은  통권  9권을  끝으로  문을 닫고  지난 2007년 인터넷신문 굿모닝논산을 창간 10년을  버텨 왔습니다.

 

 그 10년 동안   지역 언론인으로서 나름의  정성을 기울여 왔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보다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양산한 것 같습니다,

 

 다시금 시의회에 들어가  못 다한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냈습니다,  그러나    패착이었습니다, 꼴찌를 하고 맙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은 부끄럼이 컸지만 살아있는 생명이니 어쩝니까? 출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토록 시민들을 실망시켰는지 곰씹기를 거듭해 왔습니다.
 
결론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가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그 모진세월 세상 풍진을 다 뒤집어쓰고 버텨온 터 이까짓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랴 하는 심정입니다.
 
또 솔직히 말하면 지난번 선거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정부가 인정하고 민주화운동관련자 라는 인증서 까지 받은 저의 그 처절한  민주투쟁과정의 감옥 생활에 대해 칭찬은 고사하고 전과자라고 음해하는 세력에 부화뇌동한 일부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말 야속하기조차 했습니다

.

 그러나  모두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또   주변의 음해와  모략을  극복하지 못한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컸습니다.

 


 이제 다시금  월간 굿모닝논산을 창간했습니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잡지를 만들고 싶고 나쁜 사람들이 싫어하는  옳곧은 잡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투박할 글맛일지라도 우리 위대한 논산의 옛과 오늘을 이어온 자랑 스런 논산인 들의 진면목을 드러내 밝히고, 귀동냥한 글한 줄 잘 갈무리해서 곁에 두고 싶은 책 한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으로 출발선에  섰습니다,
 
매일같이 집을 나서면서 스승 맹자의 가르침 한 구절을 웅얼거립니다.
 
거 천하지광거 [居 天下之廣居, 입 천하지정위 [立 天下之正位]행 천하지대도 [行 天下之大道] 득지여민 유지 [得志與民 由之] 부득지 독행기도 [不得志 獨行其道] 부귀불능음 [富貴不能淫] 빈천불능이 [貧賤不能移] 위무불능굴 [威武不能屈] 차지위 대장부 [此之謂 大丈夫]
 
넓은 천하를 거처로 삼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대도를 행한다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하고, 뜻을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 도를 행하노니
 
부귀인들 어찌 이를 어지럽히겠느냐 빈천인들 어찌 그 뜻을 꺽을 것이며 권세 앞 인들 어찌 그에 굴할까보냐.. 사람들은 이를 바로 대장부라 하노라
 
이 한편의 가르침을 소리 내어 웅얼거리다보면 가슴이 꿈틀댑니다., 여러분도 최소한 이 가르침 한 구절은 외우셔도 좋을 것입니다
 
또 한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불학 편노이쇠 [不學 便老而衰] 라고 하셨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쉽게 늙는다는 말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즉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용기를   내서  다시 출발하는 것은  감옥의  독방에서   읇조리던 맹자의  고자 편에  나오는  이 한 구절 가르침의  힘임을  고백합니다,

 고 천장강 대임어시인야[故 天將降大任於是人也]필선 고기심지 노기근골[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아기체부 공핍기신 행볼란기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소위 소이   동심인성   증익  기소불능[所爲所以 動心人性 增益其所不能]

 하늘이  한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하면   먼저  그 뜻을  어지럽게 하고  몸을 곤고하게  하고   꾀하는 일마다  어긋 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 사람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을  키우고자 함이다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마는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가르침 이지요

이제 굿모닝논산은   실시간 뉴스를 전달하는   인터넷뉴스로서  만이 아니라  월간지  발행과  함께  시민민여러분  , 독자여러분을  양지로 등 떠미는   한줌  훈훈한  미풍이  되고자 합니다,  부디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창간사에   가름 합니다,

 

세상  모든일이  부질없고    덧없으며   모든것이  결국 공 [空] 일지라도  생명이    있는한   멈출수 없는 인생의 길    사람의  길로  넓혀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새해  큰 복받으시고  뜻하시는 모든일들  순조롭게  성취 되시기를  가도 합니다,
 
 
 새해  새아침   월간   굿모닝논산   발행인  김용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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