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현자(賢者)는 어디에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5-28 12:11:02

기사수정
 
현자(賢者)는 어디에

새 정부에 줄을 대고 한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실력자들 주변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수 천 개의 감투가 있고 벼슬자리를 차지하면 가문의 영광은 물론 봉록과 권한마저 녹록하지 않으니 탐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요.

물갈이를 잘 해야 경제도 살리고 일자리도 늘리고 민생도 살찌울 수 있을 텐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실패한 용인(用人)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옛날 사례 몇 가지를 들춰볼까 합니다.

#
인상여 (藺相如)는 중국 조(趙)나라 혜문왕의 총신 집에 식객으로 있었습니다. 조나라는 항상 이웃한 강국 진(秦)나라의 강압과 침공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는 천하의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탐낸 진의 소왕이 15개 성과 보물을 바꾸자는 제안에 특사로 뽑혀 담판 끝에 소왕의 거짓을 꿰뚫어 보고 화씨벽을 보존한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3년 뒤 (B.C 280) 상여는 진•조 수호(修好) 정상회담에 동행하였습니다. 동등한 지위가 아닌 진왕의 강압적 요구에 상여는 조리를 세워 조왕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국익도 챙겼습니다. 그 공로로 그는 상경(上卿)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상여의 지위는 명장 염파(廉頗)보다 높았습니다.

염파는 크게 분개하였습니다. “나는 산전수전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한갓 입과 혀만 놀려 지위가 나의 위에 있게 되었다. 천출인 인상여를 보면 반드시 욕을 보여 주겠다”고 별렀습니다. 그 후로 인상여는 병을 핑계삼아 국무회의에도 나가지 않고, 외출했다가 염파가 오는 것을 보면 골목길에 숨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느 날 상여의 부하 한 사람이 정떨어진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을 모신 것은 당신의 뜻이 올곧고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상경의 신분에 오른 당신이 염파장군을 무서워하다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상여는 그 부하를 붙들고 “염 장군과 진왕 중 어느 쪽이 무서운가?”하고 묻자 “물론 진왕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그런 진왕을 진조정에서 질책하고 군신들도 욕보였다. 강국인 진이 우리나라를 침공하지 않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장군을 피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원한을 뒤로하기 때문이다”상여는 깊은 뜻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상여의 집을 찾아 진심으로 사죄했습니다. 그 후로 두 고굉지신(股肱之臣)은 친교를 거듭하여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이 잘려도 상관 없다는 뜻의 절친한 교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
관중(管仲)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인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명재상이었습니다. 그가 병이 무거워지자 환공(桓公)이 적합한 후임자를 물었습니다. 관중은 관포지교로 잘 알려진 친구 포숙아(飽叔牙)를 두고 습붕(隰朋)을 적임자로 추천하였습니다.

환공(桓公)이 이들 관중과 습붕을 앞세워 이웃 소국 고죽(孤竹)을 토벌하러 나섰습니다. 봄에 출병한 제나라 군대는 악전고투 끝에 겨울을 맞아 철병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악천후로 퇴로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이 때 관중이 나섰습니다. “이런 때에는 늙은 말이 길을 찾아낸다”며 짐말 중에서 노마(老馬) 한 마리를 풀어 주었습니다. 늙은 말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앞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병사들도 제 길을 찾아 행군하였습니다.

험한 산길을 행군하고 있을 때 전군의 휴대용 식수가 바닥났습니다. 연못도 시내도 강도 찾지 못해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을 때 습붕이 지혜를 짜냈습니다. “한 치의 개미집을 찾으면 그 아래 8척 되는 곳에 물이 있다”고. 그의 말대로 개미집을 찾아 땅을 파본즉 물이 콸콸 솟아나 전군의 갈증을 풀어 주었습니다.

관중의 성(聖)과 습붕의 지(智)로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르면 노마나 개미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하여 노마지지(老馬之智)란 고사가 생겨났습니다. 뭐든지 안다고 잘난 체 해도 그 지혜가 노마나 개미만도 못한 점이 있고,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각자의 장점과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
조사(趙奢)는 조나라의 전세(田稅)를 거두는 아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족인 평원군(平原君)이 납세를 거부하자 그는 법에 따라 평원군의 집사 9명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평원군이 대로하여 조사를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조사는 평원군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君은 조나라의 귀척(貴戚)입니다. 君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내버려 두면 법이 무너집니다. 법이 침해되면 나라가 약해지고, 나라가 약해지면 제후들이 침범해 올 것이고, 끝내는 나라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君은 어떻게 이 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평원군은 화를 풀고 그를 현명하다고 하여 왕에게 추천해 국세청장에 등용시켰습니다. 조사는 세금을 공평하게 부과하고 백성들의 흠모를 받으며 나라 곳간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뒷날 진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혁혁한 공을 세워 혜문왕은 조사를 염파•인상여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은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워 “병법에 있어서는 나를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괄은 아버지와 군략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는데 최고의 군략가인 조사도 반박을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변설을 듣기는 했으나 한 마디도 칭찬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능변에 홀린 어머니가 조사에게 왜 칭찬을 해 주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싸움이란 목숨을 거는 것이야(兵死地也). 괄은 이론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싸움을 논하고 있어. 만약 괄이 대장이 되는 일이 생기면 그 때문에 조나라는 망하게 될 거야.” 조사의 대답이었습니다.

뒷날 효성왕 때 진의 침공을 받자, 왕은 진의 이간책에 속아 염파를 제치고 조괄을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괄의 어머니와 상여가 그의 대장 기용을 말렸지만 왕은 이미 결정한 일이라며 밀어 붙였습니다. 조괄은 이론만 믿고 서두르다 일전에서 군사 45만을 잃고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캠프 시절부터 새 정부 출범 100일을 앞둔 지금도 권부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그 중에는 인상여•염파•조사나 관중•습붕 같은 출중한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 준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를 달리려는 파리 (부기미:付驥尾)같은 무리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앞의 고사는 최고 권력자나 실력자 그리고 부름을 받아 나라에 봉공할 사람의 자세와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적인 이해보다 공적인 이익이 우선해야 합니다. 둘째는 덕망과 지혜를 가졌더라도 중지를 모으는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오만하지 말고 항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정부는 출범 초반부터 극심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한•미쇠고기협상과 FTA비준 반대, 여당내 갈등과 당정간 불협화음, 물가급등이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유가와 곡물값 폭등, 국제수지악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런 국난을 극복할 관건은 결국 사람입니다. 수많은 공약을 실행하고 실용성 있는 비전을 내놓을 현자를 두루 찾아야 맨땅에 그림떡을 그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와우 ! 대박예감... 신개념 에이스롤러장, .카페 '오슈 신장 개업 논산에  최신 시설을  구비한  대형 실내  롤러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다.  롤러 스케이트  방방  키즈까페 등을    주유한 뒤  잠시 몸을  내려 쉬며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취향의  차향 [茶香]을  함께  탐닉할  " 까페 오슈"도  함께다.  논산시 내동 아주아파...
  2. "이변은 없었다"논산농협 조합장 선거 기호 4번 윤판수 후보 당선 5월 3일  치러진 논산농협 조합장 보궐선거에서  기호 4번 윤판수 후보가  총 투표수  2.775 표중  1338표를 얻어  압승의  영광을 안았다.  조합장으로서의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선거에서  이변을 노렸던 기호 3번  신석순 후보는  681표를  얻어  차점 낙선의  불운을  ...
  3. 2024 화지전통시장 옛살비 야시장 개막 , , 공직사회 총출동 ,,,, 논산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편의 하나로  화지시장  상인회에  예산을 지원해  시행하는  2024년  엣살비  야시장  개막식이  5월  3일  오후 5시  화지시장  제2주차장    광장에서  열렸다. 백성현  논산시장 서원 논산  시의회  의장  최진...
  4. 창경궁 춘당지에 나타난 청룡 창경궁 춘당지에 나타난 청룡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 대춘당지에서 시민들이 궁중문화축전 미디어아트 체험형 야간 관람 프로그램인 '창경궁 물빛연화'를 관람하고 있다. 2024.5.3 yatoya@yna.co.kr(끝)
  5. 제주 하늘에 뜬 햇무리 제주 하늘에 뜬 햇무리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4일 제주시 하늘에 햇무리가 관측돼 길을 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햇무리는 햇빛이 대기 중 수증기에 굴절돼 태양 주변으로 둥근 원 모양 무지개처럼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4.5.4 jihopark@yna.co.kr(끝)
  6. 동해해경, 어린이날 기념 함정공개 행사 동해해경, 어린이날 기념 함정공개 행사 (동해=연합뉴스) 4일 동해해양경찰서가 제102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동해해경 전용부두에서 실시한 대형 함정 공개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각종 체험을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 2024.5.4 [동해해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oo21@yna.co.kr(끝)
  7. 초여름 기온 보인 주말, 시원한 분수에서 삼매경 초여름 기온 보인 주말, 시원한 분수에서 삼매경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설치된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초여름 더위를 잊기 위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날 서울은 29도 가까이 기온이 올라 초여름 날씨를 보였다. 2024.5.4 hkmpooh@yna.co.kr(끝)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