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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매사에 최악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입니다. 언젠가 제가 묵직한 상자를 장롱 위에 올려두었는데 아버지께서 장롱 앞으로 비쭉 나온 상자를 보시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지진이라도 나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두느냐는 것이었지요. 지진이라니 말도 안 돼, 속으로 구시렁댔지만 그 피가 어디 가겠습니까? 저 역시 남들이 어이없어할 만큼 근심하고 조심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미얀마와 중국을 강타한 자연재해 앞에선 근심도 조심도 헛된 것만 같습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은 첨단의 과학을 비웃듯 느닷없이 도둑처럼 덮쳤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으니 말입니다. 더욱 두려운 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아무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는 거지요. 사과나무를 심을까 기도를 할까 하다가 그저 책이나 읽기로 합니다. 물리학자 어네스트 지브로스키가 쓴『잠 못 이루는 행성』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입니다. 저자는 뉴턴의 결정론적 사고에서 카오스적 사고로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언젠가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자연재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은 안 합니다. 오히려 400쪽에 걸친 꼼꼼한 과학적, 기술공학적 분석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자연재해에 얼마나 취약한가 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취약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죠.
이 점은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건은 문명이 발전하면서 자연 재앙에 대한 취약성 역시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문명이 그 증거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활용하고 통제하며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문명은 자연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극에 지진이 일어나면 재해가 아닙니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 지각활동은 재앙이 됩니다. 어떤 점에선 인간이 자연재해를 만드는 것이지요.
『잠 못 이루는 행성』에는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혀온 자연재해들이 나옵니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의 아침이 밝습니다. 만성절을 맞아 교회는 사람들로 북적이지요. 오전 9시 40분경 쿠르릉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립니다. 3분 만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폐허로 변합니다. 허나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한 시간 뒤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바닷물에 쓸려간 뒤 세 번째 재앙이 덮칩니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불길이 타오릅니다. 완전히 잿더미가 된 도시에서 빵을 놓고 도둑질과 살인이 벌어집니다. 275,000명의 인구는 하룻밤 만에 수백 명으로 줄어듭니다. 사실적으로 복원된 역사를 읽으며, 똑같은 재난이 일어난다면 3백 년 전 리스본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나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자문했습니다. 고개를 젓는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닐 겁니다.
천재(天災)와 인재가 서로를 부추기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1889년 미국의 존스타운을 집어삼킨 홍수는 부실한 댐이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댐의 소유자는 앤드류 카네기를 비롯한 그 지역 백만장자들의 모임인 ‘사냥과 낚시 클럽’이었습니다. 댐은 건설된 지 십년 만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관리 소홀로 점점 흉물, 아니 흉기가 되어갔습니다. 하류의 주민들은 댐의 위험성을 걱정했지만 댐 소유자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폭우가 쏟아지고 댐이 무너졌습니다. 그 뒤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지브로스키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댐을 소유한 백만장자들은 이 속에 없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미국 정부는 개인 땅의 작은 지류에 댐을 지을 때도 철저한 환경 평가와 공청회, 정밀조사를 시행토록 했습니다.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잘 배우고 있습니까?
지브로스키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가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기의 파동 중에서 어떤 것이 모자를 날리는 바람으로 끝나고 어떤 것이 허리케인으로 발달할지, 무엇이 그 변화의 원인인지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기본적인 요인이 매우 작다는 것, 나비처럼 작은 변이도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비효과’란 바로 그 점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또한 자연의 나비는 인간의 역사에 폭풍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못이 없어서 말굽을 잃었다네. 말굽이 없어서 말을 잃었다네. 말이 없어서 기사를 잃었다네. 기사가 없어서 전쟁에 졌다네. 전쟁에 져서 왕국을 잃었다네.”라는 영국의 옛 시처럼 말이지요.
작은 못 하나가 모든 것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말하는 진실입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홍수와 가뭄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과거의 인간보다 지금의 우리가 자연에 대해 더 많은 걸 압니다. 하지만 모든 걸 알지는 못합니다. 지브로스키는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알아듣기 힘든 자연의 속삭임에 오래, 끈기 있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112층짜리 빌딩을 짓겠다고, 강물마다 운하를 파겠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 자신감이 인류 문명의 한 축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상황 또한 인류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최악을 생각하는 소심함도 필요합니다. 소심보다 부끄러운 건, 한 사람을 잃는 것은 온 세상을 잃는 것임을 모르는 마음입니다. 그 무지가 자연재해를 부릅니다.
필자소개
김이경
"취미로 시작한 책읽기가 직업이 되어 출판사 편집주간으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책을 읽고 쓰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립도서관에서 독서회를 11년째 지도 중이며,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인사동 가는 길]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