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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 행운의 숫자만으로 짜인 올림픽 축제의 개막 시각을 공표하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중국이 뜻하지 않았던 대재난을 맞았습니다.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이에 대한 세계 여론의 비난도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지진이라는 자연의 대재앙에는 속수무책, 망연자실일 뿐입니다.
지난 12일 발생한 쓰촨(四川) 지진으로 중국 정부는 최소한 5만명의 인명피해 가능성을 공식으로 인정했습니다. 실제로는 2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1976년의 탕산(唐山) 대지진보다 피해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상황은 실시간으로 중국 내외의 언론을 통해 속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 성화는 지금 어느 곳을 달리고 있는지 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저지양성(浙江省) 샤오싱(紹興)을 지나 항저우(杭州) 부근을 달리고 있겠지만 누구도 그곳으로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참극 속에서도 중국인들의 아픈 상처를 달래는 묘방이 있어 세상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원자바오(溫家) 총리의 눈물입니다.
원자바오는 지진이 발생한 몇 시간 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족을 잃고 울고 있는 소녀를 다독이며 “울지 마라. 나와 중국 정부가 꼭 너를 돌봐 줄 거야”하고 위로했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깔려 있는 아이에게 직접 물을 먹여 주기도 했습니다. 재난의 현장에서 총리가 피해주민들을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중국 대륙으로, 전 세계로 중계되었습니다.
카메라를 찾아서 재해지역에 나타나 증명사진을 찍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정치꾼들만 보아온 눈에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원자바오의 쓰촨 방문은 지진 피해주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티베트 시위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칼날을 세웠던 세계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물론 원자바오의 눈물이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극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습니다.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그의 ‘감성 정치’에 대한 비판이 일던 터였습니다. 지난 4월 제17차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당내 좌파세력들은 “총리는 날마다 서민들을 쫓아다니며 울기나 했지, 실제 이룬 것은 별 것 없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들은 총리의 정책을 ‘우경 기회주의’, 친민 행정을 ‘쇼’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원자바오의 서민적인 풍모는 예전부터 화제가 되어 왔습니다. 10년 이상이나 된 점퍼를 입거나, 몇 차례씩 수선한 운동화를 신고 지방 시찰을 다닌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많은 블로거들이 원자바오의 검소하고 서민적인 행장을 칭송하는 글을 올릴 정도입니다.
당내의 심각한 노선갈등 속에서도 서민의 친구 원자바오 총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화해온 중국 대륙에서 그의 정치행보는 위태롭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번 대재난 속에서 거둔 ‘원자바오 효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올해 66세, 원자바오는 누구보다 앞장서 현장을 찾는 정치인입니다. ‘정부 권력은 모두 인민들이 부여한 것’, ‘민생은 하늘보다 크다’, ‘민주, 법치, 자유, 인권, 평등, 박애는 자본주의만의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이야기합니다. 원자바오가 악어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마음으로는 가깝고도 먼 나라의 총리지만 솔직히 그의 존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체육부장, 부국장, 경영기획실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의 현장을 취재했고,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조직과 운영에도 참여하며 스포츠경기는 물론 스포츠마케팅과 미디어의 관계, 체육과 청소년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집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