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첩의 전과 후
요즘 청첩장이 그야말로 노도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원래 결혼을 많이 하는 계절인 데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자녀를 한창 결혼시키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청첩이 이어집니다. 경사(慶事)만 있는 게 아니라 조사(弔事)까지 자주 생깁니다. 자녀를 시집 장가 보내는 나이는 곧 부모가 돌아가시는 나이입니다. 부모를 여의고 자녀를 내보내는 게 같은 시기라는 점이 삶의 오묘함이지만, 불행하게도 본인 사망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조사는 당연히 진심으로 축하하고 정성을 다해 위로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다 보니 참된 경조상문(慶弔相問)을 행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도 결혼식이 하나 있었는데 잊어 버렸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습니다. 아마 마음 속으로 귀찮게 여겼기 때문에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 결혼식은 토요일 오후라서 가기 어려웠고 혼주와 최근 몇 년간 접촉이 없어서 축의금을 전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나에게 토요일은 딱 하루 쉬는 날인데, 그것도 하루의 중간인 오후 1시에 열리는 결혼식이 반가울 리 없습니다. 마지 못해 눈도장을 찍으러 가면서도 속으로는 욕을 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차라리 은행 온라인계좌를 적어 보내주면 편리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적나라한 청첩장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시쳇말로 청첩장은 고지서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체면 상 계좌번호까지 적어 보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체국을 더러 이용합니다. 아들인 경우 ‘결혼 19'를 선택하면 “아드님의 결혼을 축하하오며…” 하는 문구의 경조환을 때 맞춰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쾌한 기억은 의외로 많습니다. 둘 다 아는 부부가 한 달 쯤 전에 아들을 장가 보낸다고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참석하지는 못하고 당연히 두 사람 몫의 부조를 하고 꽃까지 보냈는데, 친분으로 보아 인사전화라도 할 줄 알았더니 그 이후 소식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며느리를 보는 사람에게 꽃을 보내고 결혼식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당은 꽃을 받지 않는 방침을 지켜 계단 옆 후미진 곳에 쓰레기처럼 꽃을 마구 버린 게 눈에 띄었습니다. 꽃을 안 받는다고 알려 주기라도 하거나 안 보이게 숨기기나 하지…그걸 보며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도 결혼식 후에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한 전직 공무원과 어떤 모임에서 명함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것 말고는 이야기도 한 적이 없는데 1주일 후 그가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받자마자 찢어 버리지는 않고 얌전하게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전직인데도 이러니 현직일 때는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동창회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은 청첩장을 갖고 온 사람입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는 당연히 또 나오지 않습니다. 뒤에서 욕하는 걸 본인만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모친상을 당하자 대학 동창들에게 좀 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평소 모임에 나온 적이 없어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다음부터 동창회에 잘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문상을 갔지만, 그 뒤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경조사로 부조를 받았을 경우 일을 치른 뒤 일정액을 동창회나 모임을 위해 기부하도록 규칙으로 정해 운영하는 곳도 많은 것 같습니다.
청첩장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1)무조건 다 보내지 말고 가려서 보내라. 그리고 따로 전화로 알려라. 2)화장실 갈 때와 다녀와서가 다르면 안 된다. 감사인사를 빠뜨리지 말라. 동창회든 뭐든 소속된 단체에 홈페이지가 있으면 거기에 인사를 올려라. 3)받았으면 반드시 갚아라. 내 경조사 챙기듯 다른 사람의 경조사를 챙겨라.
그러나 이런 이야기만 해야 할 만큼 불쾌한 기억과 얌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후배는 장녀를 시집 보낸 뒤 결혼식에 가지 못한 나에게도 감사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인쇄된 감사장이 아닌, 육필 편지를 오랜만에 받았습니다. 또 그 뒤 고마움의 표시라며 자기 회사에서 낸 책을 보내고, 책을 보낸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왔습니다.
전직 대학총장 한 분은 작년 10월에 부부 명의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셋째 아이(딸)가 결혼했다는 걸 사후에 알리는 글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장가 보낼 때에도 혼례를 치른 다음 인사장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다른 감사편지와 다르게 신랑신부의 경력과 전공을 자세히 설명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남들의 경조사에 부조를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럴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 적도 있지만, 남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그렇게 양가 가족만 모인 가운데 결혼식을 치른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축의금과 조위금 출입상황을 일일이 기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저 놈이 나한테 얼마를 냈으니 나도 똑같이 얼마를 낸다 그런 주의입니다. 성가시고 귀찮아서라도 그 짓을 못할 것 같은데 그는 일일이 액수를 적어 넣고, 무슨 방정식인지 몰라도 몇 년 전과 지금의 물가를 비교해 자기가 주어야 할 액수를 정합니다. 야박하고 각박한 느낌이 듭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대신 내 달라는 친구 부탁을 받고 결혼식에 찾아가 축의금을 냈습니다. 그 뒤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돈을 돌려 받기는커녕 그에게서 돈을 꾼 걸로 착각해 오히려 돈을 주었답니다.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비슷합니다. 꼭 덤 앤 더머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걸 보면 축의금 조위금 출입상황을 세세히 적어 놓는 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