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문명사적 위험' 저출산, 그리고 한국
머스크는 출산율이 감소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잠재적으로 쾅(bang) 하고 죽는 문명이 아니라 성인 기저귀를 차고 신음하다가 죽는 문명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에 밀컨 회장은 "한국처럼 한때 출산율이 6명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0.75명이 됐다"며 우리나라를 사례로 들어 맞장구를 쳤다. 밀컨 회장이 언급한 내용이 모두 정확하지는 않다. 한국의 출산율은 1950년대 6명 안팎이었는데 작년 출산율은 0.72명이다.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는 밀컨 연구소가 1998년부터 매년 4월 LA에서 여는 행사로 '미국판 다보스 포럼'으로도 불린다. 세계적 석학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해 미국의 정치, 경제, 금융,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놓고 논의를 벌인다.
밀컨 연구소는 1980년대 고위험, 고수익 채권인 정크본드 시장을 처음 개척한 인물인 밀컨이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후 1991년 설립한 싱크탱크다. 출산율 감소가 문명사적 위험이라는 경고가 나온 국제행사에서 한국이 최악의 사례로 거론된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이 외국에서 화제가 되거나 걱정거리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가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상황이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유럽의 상황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이달 6일 발표한 '2024년 인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작년 기준 5천171만명에서 2065년 3천969만명으로 감소해 3천만명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15∼64세에 속하는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3천657만명에서 2044년 2천717만명으로 감소한다.
20년 후면 노동인구가 1천만명 가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인실 연구원장은 "인구 감소로 인한 재앙은 대한민국의 존립이 달린 사안"이라며 "인구 회복의 골든타임이 지나가면 우리 사회가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외의 경고와 지적에도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반전될 조짐은 좀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통계청 최신 통계인 '2월 인구동향'을 보면 올해 2월 태어난 아기는 2월 기준 처음으로 2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2월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돌면서 2019년 11월부터 52개월째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충북 청주의 한 단독주택에서 장애인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에서 발견된 60대 어머니와 40대 남매는 모두 지체 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약 20년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생계를 유지해왔으며, 타살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이 밝혔다.
주변에서는 생활고 때문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와 이웃의 관심이 좀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인 한국의 한해 자살사망자는 1만2천906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책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다.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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