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중국의 채원정[蔡元定]이 "홀로 행할때에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고 홀로 잠잘때에도 이불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조선 선조 효종조의 대학자인 연산출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의 아드님 김집[金集/1574[선조7년]-1656[효종7년]]선생은 이말을 사랑하여 스스로 신독재[愼獨齋]라는 자호[自號]를 짓고 스스로를 경계했다.
조선유학사에 의하면 이런 선생에 대하여 "자품이 단정하며 치밀하고 온아 유순 순수하여 항상 대인관계에 있어서 한결같이 성의와 예로써 대접하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매양 근실을 위주로 삼가고 또 삼가는 유림의 사표[師票]였다"고 적고 있다.
또 "차리리 몸을 낮출지언정 높은체 하지말고 차리리 학문이 얕을지언정 깊은체 하지말고 차라리 행동이 졸렬할 지언정 교묘하지말라" 하는 글로 자신의 몸가짐을 바로잡았다고 덧붙이고 있다..
8월 17일 오전 충남인뉴스 굿모닝논산 김용훈 대표는 취임 1년을 맞는 논산문화원 류제협 문화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행하면서 류제협[65] 원장의 풍모에서 문득 "홀로 행할때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고 잠잘때 이불에 부끄럽지 않겠다" 던 채원정의 말이 떠올랐다고 토로했다.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 궁벽한 산골 출신인 류제협 원장은 논산 부창초등학교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 [17회]를 졸업했다.
젊은 학창시절 가출해서 3년여를 배회하며 고뇌하기도 했던 류제협 원장은 그 덕분에 3년 후배들과 함께 동문수학하는 인연을 맺게 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고향에 남아 살면서 가사불구하고 주변의 부로들이 관청을 찾는 민원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봉사역을 담임하기도 했고 그런 진실한 사람됨을 높이산 지역주민들은 그를 2대 3대 논산시의원으로 내리 당선 시키기도 했다.
류제협 원장은 3대의원을 끝으로 맞수가 거의 없는 지역정치 지역정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4대의원선거에 불출마를 선언 하는가 했더니 향토사 연구에 몰입했다.
지역에 산재한 숱한 선인들의 삶의 체취를 찾아 나서고 문화유적에 얽힌 '스토리"를 들추어 엮어내기 시작하면서 돋보인 그의 역량은 문화관광해설사[현]로 논산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현]으로 위촉돼 지역문화 창달에 치력[致力]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문광부는 얼마전 그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지역으로서는 더 없이 명예로운 일에 다름아니다.
지난해 문화원 회원들에 의해 제19대 논산문화원장으로 추대된바 있는 류제협 원장은 논산문화원은 한마디로 논산 시민의 정신문화센터 라고 정의한다.
문화원이 펼치는 사업들이 시민들의 삶 자체를 직접적으로 윤택하게 하는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정신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시민들의 문화품격을 높여 시민과 함께 향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제협 원장은 향후 논산문화원의 사업방향과 관련해서 7-80년대 문화원의 기능은 향토사 연구 및 발굴 등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해 왔으나 앞으로는 평생학습관이나 읍면 주민자치위 예총 등이 하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함과 동시에 다른 단체니 기관에서 하기어려운 전문성이 필요한 수준높은 문화창달 사업에 전력 투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내년도 사업 계획과 관련해 논산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전통예절과 현대 에티켓과 접목시킨 생활예절 프로그램을 기획중에 있으며 노성면에 있는 종학당 등에서 시 낭송회 격조높은 공연 등을 유치 함으로써 지역문화자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역 문화활성화를 꾀해 나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류제협 원장은 충남 도 관내 16개 시군중 독립문화원청사가 없는 곳은 우리 논산시 뿐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로 얼마전 부여군이 문화원 독립원사를 짓기위해 설계비로 5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을 보면 논산시도 시민들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문화원 독립원사 짓기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명선 시장의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격이 높고 가치관 또한 전임자들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시가 미구에 조성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민공원이 만들어 질때 적어도 4층 규모의 독립원사가 들어서 지하는 지역연예인들의 연습장소로, 1층은 공연장으로, 2층은 전시실, 3-4층은 논산시 역사문화자료관 등으로 쓰여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문화원 건립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류 원장은 논산시관내에 많은 역사유물과 함께 기관이나 개인소장하고 있는 향토사 자료 생활 용기 등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전시관 하나 마련못해 타지역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 들조차 농업기술센터 백제군사박물관 등에 나뉘어져 진열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류제협 원장은 논산지방의 옛과 오늘에 이르는 선조들의 생할양식과 풍습을 발굴 하고 지역향토문화유산을 집대성한 '논산의 어제" 라는 책자의 발간을 준비중에 있으며 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재임중이던 지난 2005년 지역명문가로 얼려진 파평윤증선생가 사계 김장생 선생의 아드님 신독재 김집 선생 가의 선조 기일을 찾아 각 문중의 제례의식의 형식과 절차 등 상례를 실은 " 논산의 제례의식" 공동저자로 발간 하기도 해 유림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류제협 원장은 앞으로 개인적인 삶의 방향과 관련해 나이 서른살 되던 시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 하는 고뇌와 번민이 컸던 한때가 있었다고 술회하고 그때부터의 인생관은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있어 내집이 잘되고 내가 있어 내동네가 잘되고 내가 있어 우리고장이 잘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훗날 "류제협이 있어 우리고장이 좀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로 모아진다면 그보다 더 큰 인생의 성공이 어디 있겠느냐고 빙그레 웃어보였다.
본향인 가야곡면 삼전리 숲속에 집필실을 겸한 아담한 주택을 짓고 수십년을 공직에 몸담아온 끝에 정년퇴임한 부인 김애순 [61]여사와 단둘이 신혼같은 노후를 지내며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치열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류제협 논산문화원장 ..
모처럼 찾은 불청객을 맞는 예의 빙그레 웃는 얼굴.색이기화[色夷氣和 색이기화/온화한 얼굴기색]하고 신정예공[神定禮恭/정신이 안정되고 예로 공손한모양]한 그의 모습이 무더위속 대화를 나누는 좁은 원장실을 시종 무더위를 쫓는 한줄기 청쾌한 바람으로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