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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Bonn)과 베를린(Berlin)
  • 뉴스관리자
  • 등록 2010-02-01 22: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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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나는 의원친선협회 일원으로 유럽 3개국을 방문하였다.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아는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현재 핵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고, 오래 전부터 독일 전문가로 독일 통일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장시간 많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헤어질 때 나에게 읽어보라며 페이퍼 하나를 넘겨주었다. 바로 통일 독일이 본에 있던 정부부처를 베를린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아주 객관적으로 분석한 내용이었다.

그는 정치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 나라 안이 세종시 문제로 너무 시끄러우니까 참고가 될까 하여 정리한 내용이라며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 내용이 너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나 혼자 읽고 버리기 아까워 여기에 소개하기로 하였다. 많은 분들이 읽고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의회와 정부 소재지를 베를린으로 이전


1701년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Ⅰ) 즉위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결정된 후로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줄곧 독일의 수도였다. 2차 대전 패망과 동서냉전 발발로 베를린은 승전 4개국에 의해 분할되어 법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은 소련 점령구역인 동 베를린을 수도로 결정하였다. 1949년 5월 23일 건국된 서독은 베를린을 수도로 선언하였으나, 정부와 의회의 소재지를 임시수도(provisorische Hauptstadt)인 본(Bonn)으로 결정하였다. 1954년과 1956-57년에도 연방하원은 통일 후 수도는 베를린이 되어야 함을 결의하였다.

1990년 8월 동․서독 간 체결된 통일조약 제2조 제1항은 베를린이 통일독일의 수도임을 재차 확인하였고, 기본법 제22조에도 독일연방국의 수도는 베를린임을 명시하고 있다(“Die Hauptstadt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ist Berlin").


단지 본과 베를린 중 장차 의회와 연방정부의 소재지를 어디로 결정지을지는 통일 이후에 다루기로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이전 결정 (Hauptstadtbeschluss)”이란 표현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용어의 선정이다. 독일의 수도는 과거부터 베를린이었기 때문에 “그간 분단으로 임시수도에 있던 의회와 정부 소재지를 통일 후 정식으로 확정된 수도 베를린으로 옮길지, 혹은 말지 여부”가 이전과 관련된 정확한 개념이다.


의회와 행정부의 소재지 결정을 위해 의회 내에서 거센 찬반논란이 있었다. 베를린을 지지하는 그룹은 첫째, 의회와 정부 부처를 수도 베를린으로 이전시키는 문제는 지역정치적 차원이나 당파 차원을 떠나, 독일과 독일 전체 국민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안으로 “독일 통일의 완성”이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둘째, 베를린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앙으로 횡으로는 런던, 종으로는 나폴리와 만나며, 베를린을 중심으로 파리-바르샤뱌-모스크바 축과 스톡홀름-프라하-비엔나-부다페스트 축이 서로 교차되어, 장차 유럽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셋째, 동․서독간 발전 격차를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베를린지지 그룹은 독일 통일을 추진한 콜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기민/기사엽합(CDU/CSU), 사민당(SPD) 총재 출신 빌리브란트 전 수상, 동독출신 국회의원들이었다.


이에 반해 본(Bonn)을 지지하는 반대진영은 본이 속해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1) 출신 의원들과 본에 생활기반을 갖춘 정부관리나 학자 및 중산층, 그리고 남부독일 다수의 기업인들로서,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본은 2차 대전 후 독일이 구축한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산물2)이며, 동시에 지방 분권주의의 상징물이란 것이다. 또한 지난 40년간 구축한 선진화된 산업구조와 네트워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막대한 통일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회와 행정부 이전을 위한 추가 비용을 투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미 발전된 지역에 투자를 집중하여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1991년 6월 20일 통일 이후 새로이 구성된 독일연방하원에서 연방의회와 정부소재지의 베를린 이전 결의안이 찬성 338대 반대 320의 근소한 표차로 채택되었다.3)




"독일 통일의 완성(Vollendung der Einheit Deutschlands)"이라 명명된 총 9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결의안의 주요내용은, 연방의회의 소재지는 베를린이며(1항), 연방정부는 늦어도 10~12년 이후 베를린 시가 연방의회 및 정부 소재지로서의 완전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2항), 베를린과 본 간의 공정한 업무분담을 통해 의회가 베를린으로 이전한 이후에도 본이 독일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하며, 정부부처나 기관 중 일차적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부서와 기관을 본에 잔류시키며(4항), 연방대통령의 제1집무실을 베를린으로 이전할 것(8항)과, 상원의 연방제 전통을 고려하여 연방상원을 본에 잔류시킬 것(9항) 등이다.




1991년 12월 11일, 연방 각의에서 수상실 및 이전대상 정부부처가 확정되었다. 베를린으로 이전될 부처는 수상실과 공보실을 포함하여 모두 10개의 연방부처(외교, 내무, 재정, 법무, 경제․기술, 노동․사회복지, 교통․건설․도시개발, 가정․노인․여성․청소년)이고, 본에 잔류할 부처는 6개 연방부처(국방, 환경, 경제협력, 교육․연구, 농업․소비자 보호, 보건)이다.




1992년 6월 23일 연방정부는 베를린 이전 전체 계획안을 발표하였고, 그 해 8월 25일 베를린 의회 및 브란덴부르크 주 정부와 연방수도 협약을 체결하였다. 1993년 10월 12일 연방정부는 이전 추진기간을 2000년 까지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1994년 4월 26일 연방하원은 10조로 구성된 ‘베를린/본 法’을 제정하여 이전 관련 세부 이행법안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각 부처를 베를린과 본에 분리하여 이원화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즉, 베를린 소재 부처는 본에 사무소(제2청사)를 두며, 본에 소재하고 있는 부처는 베를린에 사무소를 설치하여 유기적으로 업무의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다.4) 연방상원(Bundesrat)은 1996년 9월 베를린으로 이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1994년 1월부터 연방대통령은 베를린 소재 Bellevue 궁을 제1집무실로 정하여 근무하고 있고, 1998년 11월 Bonn에 있던 제2집무실을 베를린으로 이전하였다. 1999년 4월 연방하원은 베를린 소재 구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개관식을 가졌고, 1999년 8월부터 연방수상은 베를린에서 집무를 시작하고 있다.5) 연방상원은 2000년 이전을 완료하고 9월 29일 베를린에서 정식 회기를 시작하였다. 2000년 12월 부로 10개 이전 대상 부처는 베를린으로 이전을 완료하였고, 총 이전 비용은 약 102억 유로가 소요되었다.




현재 정부인력 총 17,874명 중, 본 근무 인력이 약 9,148명(51%), 베를린 근무 인력이 8726명(49%)에 달한다.




정부기관의 분리 운용에 따른 업무공백을 방지하기 위하여 1999년부터 베를린-본 간 정보통신망(IVBB)을 구축하여 운용 중이다.6)




연방의회와 일부 정부 부처의 베를린이전으로 인해 본 시가 입을 경제적 피해를 보상하고 본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정부와 시 차원에서 강구되었다. 연방정부는 과거 임시수도로서 독일 내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본의 명성을 기리기 위해 연방시(Bundesstadt)로 명명하였다.




본 시는 연방 카르텔청과 연방감사원 등 18개의 청 단위 기관과 독일국제개발재단 등 6개 연구기관을 유치하였고, 1999년부터 연방 청단위 기관21개소(인력 약7000명)7)가 본으로 이전해 왔다. 그 외에 본의 국제도시화 전략의 일환으로 UNFCC, UNCCD 등 12개 UN 기구를 유치하였다.







14.3 억 유로에 해당하는 정부 예산이 본의 개발(교통/대학/문화 시설 등의 분야)을 위해 투자되었고, 이로 인해 약 2000 여 개의 일자리와 18,500 여명의 인구가 새로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본은 과거 임시수도 시절과 비교하여 주민 수가 증가되었고 실업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실업률 8.2%)




이원화 체제에 따른 문제점




정부기관을 분리 운용해온 지도 10 년이 경과되었다. 분리운용에 따른 근본적인 문제는 업무의 비효율성이다.




첫째, 베를린-본간 첨단 정보통신망 구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원 및 관리들의 전자통신 및 서류체계 이용률이 저조하여 신속한 통신업무협조체제에 문제점 대두되고 있고, 시급한 정치적인 현안 토의 시, 화상회의 등으로도 완벽한 의사소통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둘째, 본-베를린간 잦은 출장 이동으로 많은 업무소비 시간과 여행경비가 소요되어 업무의 비효율성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고 있다. 본 근무 인력들의 베를린 출장 소요는 연평균 6만 6천여 건(총 여행비만 9백만 유로)에 해당된다. 매월 약 5,500회 본-베를린 왕복 운항이 시행되며, 본에 근무하는 총 인력 중 매일 680명은 비행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꼴이다. 이외에 750톤의 우편물이 추가로 소요된다. 연방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이원화 체제 운영으로 인해 추가로 소요되는 총 운영 경비는 2,300만 유로에 달한다.




셋째, 대부분의 장관 등 고위관리들의 베를린에 상주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고, 본에 근무하는 인력들의 부처 지휘부와의 접촉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지역에 근무하는 인력들은 베를린에 근무하는 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력이나 승진에 불리한 조건하에 있어 사기가 저하되고 불만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는 가운데, 본 소재 일부 부처는 일부 인력을 추가적으로 베를린으로 이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국방부의 경우 2007년 약 500명의 합참 인력을 추가적으로 베를린에 배치하였고,8) 가족, 노인, 청소년부의 경우, 본 소재 잔류인력 일체를 베를린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다.9) 내무부 장관은 산하 연방범죄 수사청 인력 2,500명을 베를린으로 이전시키길 희망하고 있다. 연방공보청 등 기타 연방기관 및 부처도 베를린으로 이전되길 희망한다.10)




정부 부처의 이원화 체제 운영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도 중반부터 정치인, 국회의원 및 주지사를 중심으로 본상 주부처의 베를린 완전 이전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11) 2006년 여.야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베를린.본 법의 폐지법안(Beendigungsgesetz zum Berli/Bonn-Gesetz)을 발의하였다.12) 이에 대한 근거는 본은 베를린.본 법의 원래 취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여, 자족도시로 이미 거듭났고, 베를린은 수도로서 장차 완전한 업무 수행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부 부처는 베를린으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완전 이전계획은 아직까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13) 메르켈 수상은 최근 Bild지의 “정부의 완전 이전계획” 관련 보도에 대해 일축하였다. 이는 현실적으로 실제 이전에 따른 예산상의 문제(추가 이전 비용 50억 유로 소요)14)뿐만 아니라, 법적, 지역 정치적 문제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모든 부처가 베를린으로 이전할 것이란 것이다.




1992년 각의 결정에 따라, 본에 제1청사를 두고 있는 부처는 부처 전체 인력의 10% 이하만을 베를린(제2청사)으로 이전시킬 수 있기로 하였으나, 수도인 베를린에서의 업무량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l999년 각의에서는 이를 25%로 상향조정하였다.




국방부의 경우, 대부분은 본에서 근무하지만,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방부의 핵심부서들은 전 부수상에 대한 정책조언을 위해 베를린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에 소재하고 있는 다른 부서들도 같은 상황이다.




시사점




본에서 베를린으로의 수도 이전이 지역 경제에 미친 효과는 좀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관찰해야 할 것이다. 당장 베를린 중심의 수도권지역을 살펴볼 때, 수도 이전을 통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리라는 기대는 아직까지는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인구 350만)이 수도 기능을 회복한 후에도 인구가 오히려 감소하였고, 1인당 총생산도 독일 평균의 60%에 불과한 실정이다. 베를린과 주변의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주 일대 실업률은20%에 육박하고 있고,15) 베를린 지역에 소재하는 대기업체는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16) 이는 경제기반시설이 낙후하고, 생산성 저하로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베를린으로 수도 기능을 빼앗긴 본 지역은 '제2의 정치 중심 도시', 'UN도시 및 국제회의 개최도시', '유럽 및 독일 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중심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본 보상 기금' l 4.3억 유로의 60%를 과학기술 및 정보투자에 투자함으로써, 경제 중심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본의 상주 인구는 다소 증가되었고,17) 실업률은 약 6%로 독일 평균 실업률(11%)에 비해 5%정도 낮다. 의회와 정부 소재지의 베를린 이전 결정 후 새로운 일자리 16,000개 창출되고, 경제성장률은 12%, 구매력 20% 증가되었다.




전망




독일의 연방적이고 분권적인 성격에 비추어 베를린이전은 독일 연방 정치 기능의 이전에 국한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독일 정부는 본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회 및 행정 소재지의 베를린 이전 반대 여론과 막대한 이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현실적 대안으로 연방부처를 분산 운용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연방정부는 연방부처의 분산운용으로 인해 정책조정 및 조직 내부 협조체계 구축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장차 모든 연방부처는 베를린으로 이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를린 이전이 베를린 및 주변 구 동독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행정기구 이전만으로는 해당지역의 균형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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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서독 인구의 3분의 1(1700만) 차지

2) 나치 정권의 수도였던 베를린 이전에 대한 불안감

3) 베를린 이전 안 찬반 여보는 당론으로 결정하지 않고 의원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겼다. 베를린 이전 안 관련 각 당 지지율: 기민연/기사연합(CDU/CSU): 48%, 사민당(SPD) 47%, 자민당(FDP): 67%, 민사당(PDS):94%, 녹색당(Gruene): 75%

4) 각 부처의 본 잔류 소속기관 및 인력규모, 해당 장관이 결정

5) ‘01.5.2 연방수상, 베를린 새 수상실 완공/입주

6) 400 Gigabyte 용량의 디지털 정보 처리시설 구비, 화상회의 장비구축, 제반서류의 전자화 처리 시설망 구축, 이를 위해 약1억1천2백만 유로 투입

7) 연방카르텔청(Berlin에서 이전), 연방감사원(Frankfurt에서 이전), 독일 개발원(DED), 연방은행감독청, 연방보험감독청 등과 주요 기업체 도이체 텔레콤, 도이체 포스트 월드넷본부, 도이체 포스트뱅크 본부,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등이 본으로 이전했다.

8) 현재 국방부 인력배치 현황: 3000명(본), 8000명(베를린)

9) 현 인력 현황: 343명(본), 197명(베를린)

10) ※연방부처 공무원 전체 베를린 이전시, 50-90억 유로 추가 비용 추산

11) Bundestagsvizeprasident Wolfgang Thierse (SPD) Ost-Ministerprasidenten

12) Niedersachsens Regierungschef Christian Wulff

13) "Wir haben keine Umzugsplane in der Schublade Liegen"

14) 연방 감사원 평가에 따르면, 완전 이전보다 이원화 체제 운영이 더 경제적

15) ※독일 전체 실업율(‘04.8 현재): 약 11%

16) 유일 한 대기업체: 셰링 제약회사


17) 31만명(‘99년 이전:3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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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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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08 13:53:56

    수정안을 말하는것인지 아님 알파를 말씀하는건지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안된다는것인지 도통 이해가 안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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