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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君 臣臣 父父 子子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4-03 22: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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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본들/
따뜻하게 맞는 건/
좌변기 뿐!’
구조조정 바람에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조차 애완동물보다 후순위로 대접받는 샐러리맨들의 절박한 넋두리입니다.

일본 다이이치(第一) 생명보험이 연전 직장인들을 상대로 공모한 ‘센류’(川柳) 중 입선작에 대한 인기투표 결과 2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센류는 하이쿠(排句)처럼 5ㆍ7ㆍ5의 3구 17자로 이루어지며, 자연과 서정을 노래하는 하이쿠와 달리 인간사나 세태를 풍자하는 짧은 시라고 합니다.

상위 10개 중에는 직장과 가정에서 소외되는 가장을 묘사한 내용이 많습니다. 3위에 오른 ‘절벽견’ 센류는 ‘개는 좋겠다/ 절벽에 걸려서도/ 구조가 되고’입니다. 도쿠시마(德島)현에서 산기슭 붕괴를 막기 위해 설치된 100m 높이의 옹벽에 걸린 개 한 마리를 이틀 만의 구조 작업 끝에 구해 낸 사건에 빗댄 것입니다. 이틀 동안 TV로 생중계되었다고 합니다.

8위 작품은 ‘여보 밥 있어?/ 하면 되지.... 왜 그래?/ 아니 괜찮아’라는 시구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TV 드라마에 빠져 남편에게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아내 사이에 오간 대화를 센류의 운율에 담은 것입니다. 고개 숙인 가장들의 비애가 가슴에 와 닿는 듯합니다. 우리 현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올 봄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던 M 씨(34)는 혼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직장 생활 6년 동안 알뜰살뜰 모은 돈 3천만 원을 펀드에 맡겼다가 반 토막 났기 때문입니다. 약혼한 여성마저 비슷한 상황이 돼 작은 전세방 하나도 구하기 힘든 처지여서 인륜의 대사마저 미루어야 했습니다.

희망에 넘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오순도순 살아 보겠다는 꿈은 하루아침에 일장춘몽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저지른 일인 데다 그런 꼴을 당한 사람이 한둘도 아니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며느리 손자를 기다리는 노부모님에게도 죄송하고 나이 찬 동생한테도 미안한 감이 앞서 M 씨는 참담한 기분입니다.

4천여 개의 귀금속상이 몰려있는 서울 종로 3가에는 요즘 금을 팔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합니다. 반지ㆍ목걸이는 물론 금이 붙은 온갖 물건이 등장합니다. 생활비에 보태려고 할머니가 들고 온 금비녀와 금니, 자취비용이 모자라 대학생이 가져 온 휴대전화 금고리, 주부의 금수저, 실직자의 금박명함까지 가지각색입니다. 덩달아 이웃 전당포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불황 여파로 중산층이 많이 사는 지역의 쓰레기 배출량도 뚝 떨어졌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재활용품 수거 처리업체의 반입량은 지난해 9월 994t에서 12월 649t으로 줄었습니다. 대신 소주병과 몰래 섞어 버린 쓰레기만 늘어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이 바뀌는 요즘 예년과 달리 버리는 옷가지도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판국에 지난 시절의 비리가 속속 불거져 나오니 서민들의 가슴은 저리다 못해 허파가 뒤집어질 지경입니다. 전남 해남읍사무소의 한 여직원이 7년 동안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 줄 생계ㆍ주거급여 10억 원을 횡령했다가 긴급 체포됐습니다. 이 여직원은 그 돈으로 자동차와 땅을 사고, 어머니에게 현금 5억 원을 주는 효도도 했다고 합니다. 개 등의 등겨를 털어먹은 꼴입니다.

꼭 공자 말씀을 빌지 않아도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君君 臣臣 父父 子子)’ 만드는 것이 정치의 요체임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공직자가 공직자답지 못하고, 선생이 선생답지 못하고, 학생이 학생답지 못한 사회가 안정되고 발전하는 법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 주변 인물과 국회의원 공직자들이 갖은 비리로 고구마 달려 나오듯 잡혀 들어가는 와중에도 지난 한 달은 야구 보는 재미로 겨우 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야구대회에 출전한 한국 팀은 명쾌한 팀워크와 호쾌한 타격, 상쾌한 수비로 장쾌한 승리를 얻어 냈습니다. 국민들을 유쾌하게 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본래의 일자리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이 삽상합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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