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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질없을 글을 정동영 상임고문께 드립니다.
매번의 재보궐선거는 집권 여당에게는 작은 중간평가처럼 여겨집니다.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냐’ ‘지지냐’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매번의 재보궐선거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보궐선거의 승패 여부에 따라 정당의 정치적 입지가 사뭇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4월 재보궐선거는 중요합니다. 독재정권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게 정치적 경종을 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다면 저들은 MB 악법은 물론 독재정권의 본색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 와중에 정동영 상임고문은 출마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곧 공천 신청을 하시겠지요. 그러나 민주당 최고위원의 한 사람인 저는 정동영 상임고문의 공천에 반대할 것입니다.
첫째, 재보궐선거 구도를 방해합니다.
재보궐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주는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지역입니다. 어려운 싸움이어서 중량급 후보가 필요한 선거가 아닙니다. 민주당 후보라면 어렵지 않게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선거입니다.
문제는 수도권 선거입니다. 선거는 구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구도는 힘을 모으는 일입니다. 차력사의 벽돌격파처럼 이슈를 모으고 관점을 모아서 여론을 끌어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정동영 고문의 출마는 이런 전선을 다 희석시킵니다. ‘대선에 패배한 후보의 정치 재기전’으로 주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정동영 후보의 정치 재기가 재보궐선거의 이슈와 구도가 되어선 안 됩니다.
얼른 공천을 줘버리면 이슈가 안 될 것이란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출마는 그 즉시 재보궐선거 구도를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 상임고문의 정치 복귀전으로 장식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런 선거구도가 사활을 걸고 임하는 당의 4월 재보궐선거 전선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4월 재보궐선거는 고스란히 ‘이명박 정부의 독재 회귀냐 아니냐’, ‘악법이냐 저지냐’로 집중되어야 합니다.
둘째, 80석 중의 하나 - ‘국회의원 정동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동영 후보가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원내에 들어오는 것, 그 자체가 민주당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요. 정동영 고문이 국회에 들어오면 1인 100표라도 행사한다는 말씀인가요. 정동영 고문이 국회에 들어오면 당 지지율이 하루아침에 지난 대선 때보다도 더 높게 뛰어 오릅니까. 정동영 고문이 국회에 들어오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바뀌기라도 하나요.
우리 당에는 기라성 같은 많은 중진 선배 정치인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의 역량이 모자라 오늘의 현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정치를 재개하고 싶으시다면 정치활동을 재개하십시오.
땅 짚고 헤엄치는 전주 선거는 정동영 상임고문의 체면만 깎고 전국 재보궐선거 구도를 어렵게만 만들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당을 위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위해 정치 지도자로서 승부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전과자란 이유로 공천심사 대상도 되지 못하고 탈락한 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결과에 승복했습니다. 국회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국회의원 안희정’으로서의 포부도 있었지만 깨끗이 접고 승복했습니다.
왜냐고요.
불복은 정당인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의 지도부, 당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국회의원 안희정'이 아니더라도 저는 ‘정치인 안희정’으로서, 정당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라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를 위해 도전하는 것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역사와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왼쪽 가슴에 뱃지를 달아야 활동할 수 있는 정치라면 수많은 후배 정치지망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훌륭한 지도자의 미덕이 아니겠습니까? 국회의원 뱃지에 구차하게 연연하지 마십시오.
2009년 3월 14일 안 희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