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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뀌는 여자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9-03-23 09: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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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젊은 여자들이 무서워’라는 글에서 젊은 여자들의 무례함과 난폭함을 일방적으로 비난해 놓고, 약간 졸아서 여성들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항의와 비난메일은 의외로 거의 없었고, ‘젊은 여성’이라는 사람의 댓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메일은 “어쩌면 아직까지 여성의 대우가 남성들처럼 완전히 보장 받지 않아서 그렇게나마 소심하게 히스테리 부리는 건 아닐까요?”라고 젊은 여자들을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드러내 놓고 난동과 행패를 부리지 못한다, 그러나 차차 우아하고 교양 있고 부드러운 여성으로 거듭나야 할 ‘운명’을 알고 있다, 그러니 과도기라 생각하고 귀엽게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직장여성은 “왜 여성들이라도 좀더 아름답고 우아하고 교양있고 부드러워야 하는지 너무 부당한 요구 같다”고 지적하고, “글에 공감하면서도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좀더 부드럽고 친절하다 보면 목숨이 날아가는 사회”라는 말도 했습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사건의 충격이 엿보이는 댓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과 일상의 억압구조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권이 신장되고 남녀가 평등해졌다지만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통과 부자유는 여전합니다. 그 여성의 억울한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살아가는 삶은 부자유를 넘어 억압과 속박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人生莫作婦人身 百年苦樂由他人(인생막작부인신 백년고락유타인),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의 아내 되지 마라 백년고락이 남편에게 달렸느니, 이런 한시도 있는데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남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쉽고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여성이 겪는 억압과 부자유의 대표적인 일로, 엉뚱하게도 방귀 뀌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방귀는 왜 방귀인지. 방구라고 하면 알기 쉽고 진짜 그것처럼 보이는데 굳이 방귀라고 표기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세상 사람들,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은 다 똥 싸고 방귀를 뀝니다. 선덕여왕이든 측천무후든 양귀비든 황진이든 엘리자베스 여왕이든 힐러리든 아무리 근엄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 앞에서 ‘젊은 여성’이 남자들의 난동과 행패를 거론했지만, 난동과 행패 수준이 아니라도 남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뻔뻔스럽게 방귀를 뀌는 자유를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여자가 남들 앞에서 편안하게 마음 놓고 방귀를 뀔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어려서 선생님은 방귀를 안 뀌는 줄 알았고, 젊고 예쁜 여자들은 방귀는 물론 똥도 싸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고춧가루 같은 게 이 사이에 끼지 않는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술 한 잔 하고 동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 한 분이 부욱, 방귀를 뀌더니 깔깔거리며 “보리 방구냐 쌀 방구냐?”하고 물어 선생님도 방귀를 뀌는 걸 알았습니다. 젊고 예쁜 여자들에 대한 착각과 환상은 오래 갔는데, 언제 착각과 환상이 깨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남자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간 여성이 있었습니다. 풋풋하고 맑고 예쁜 20대 처녀, 그녀는 아주 인기가 높았습니다. 봄 소풍을 갔던 날, 솔밭에서 오락을 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는데 갑자기 뽕 하고 방귀가 나왔습니다. 무안해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얼굴이 빨개진 채 다른 곳으로 뛰어갔습니다. 학생들은 신이 나서 ‘뽕빨딱’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이 ‘뽕빨딱 선생님’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낯을 들지 못한 채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신혼여행 시절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호텔 앞 바위에 우아하게 앉아 사진을 찍을 때 저도 모르게 방귀가 나왔습니다. 소리가 작아 못 들었겠지 했는데, 자동카메라를 세우던 신랑이 갑자기 카메라 다리를 척척 접어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자가 교양 없고 조심성 없게 방귀를 뀌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녀는 임신을 했을 때도 배가 눌려 방귀가 나오는 것을 남편 앞에서 참느라 무척 고생했다고 합니다. 방귀 스트레스가 정말 컸다고 합니다.

5년 전 타계한 유명 시인 K씨의 손녀가 작년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냈습니다. 그 속에 ‘할머니를 위한 변명’이 나옵니다. 평생 남편 앞에서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깨끗했던 할머니가 어느 날 TV를 보며 수박화채를 먹을 때, ‘뽀옹’하고 귀여운 소리를 냈습니다. K시인은 혼자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초등학생이던 손녀는 너무 뜻밖이고 재미있어서 이게 무슨 소리냐고 호들갑을 떨었답니다. 당황한 할머니는 손녀의 입을 틀어막고 다리를 차다가 갑자기 손녀보다 더 크게 웃으며 “무슨 숙녀가 그런 실수를 하느냐”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골이 난 손녀가 방에 들어가 버리자 따라 들어온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다 이르겠다”며 씩씩거리는 손녀에게 “나는 평생 누구 앞에서 그런 실수를 한 일이 없는데 네가 하도 내 혼을 빼고 다녀 그랬던 것”이라며 달랬습니다. 그러나 다시 거실로 나와 TV를 볼 때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또 실수를 했습니다. 얄미운 손녀는 “할머니, 걱정 마! 내가 뀌었다고 해 줄게”라고 소리를 질러 아무것도 모르던 할아버지가 모든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에 대해 ‘관심 있는 일이 아니면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K시인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모르는 척 했을 것 같습니다.

암으로 남편보다 먼저 타계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던 분인지 방귀사건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 시인의 연인으로 남고 싶은 단정한 여심, 살림도 모르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시와 문학 외에는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의 아내로서 살얼음 밟듯, 깊은 못 가에 선 듯 노심초사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여성의 스트레스도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우스운 설화를 모은 우리 고전 <古今笑叢(고금소총)>에는 방귀 이야기가 꽤 들어 있습니다. 방귀 뀐 며느리가 무안해 할까 봐 시아버지가 “아들 낳을 복방귀”라고 하자 며느리 왈, “아까 부엌에서는 더 많이 뀌었는데요”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방귀 뀌는 게 자랑이라면 으레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성들은 평생 괄약근을 조이고 오무리고 조심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元(원진 779~831)은 27세의 꽃다운 아내를 여의고, '惟將終夜長開眼 報答平生未展眉(유장종야장개안 보답평생미전미:오직 두 눈 뜬 채 이 긴 밤 지새며 평생 눈썹도 못 펴고 고생한 당신에게 보답하리’라는 내용의 悼亡詩(도망시)를 지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지은 시문을 모아 <眉眼記(미안기)>라고 했다는데, 가난과 고생에 찌들어 하루도 눈썹 펼 날이 없던 貧妻(빈처)에게 바친 글입니다. 방귀도 제대로 뀌지 못하고 숨진 아내를 위해서는 <放記(방비기)>라도 지어야 한다고 말하면 엉뚱하고 지나친 농담이 될는지….

엉뚱한 이야기를 한 김에 결론 삼아 덧붙이면 3월 23일을 여성들을 위한 날, 이른바 FFF데이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가 되는지 모르지만 FFF데이는 Feminine Free Fart day, 여성들이 마음 놓고 방귀를 뀌는 날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한 가지 걱정은 지구가 메탄가스로 오염되는 것입니다. 소들이 트림과 방귀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때문에 지구 온난화와 오염이 심각해지자 소에 방귀세를 물리는 나라도 있다는데, 여성들이 이렇게 일제히 여기저기서 방귀를 마구 뀌면 그것도 인류생존에 관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려서 본 만화에 <단 방구 장수>라는 게 있었습니다. 단 방구 장수는 무슨 찹쌀떡이나 메밀묵 팔듯 동네방네 골목을 누비며 “단 방구 사~려!”하고 외치고 다닙니다. 돈을 내고 얼굴을 들이대면 방귀를 뀌어 주는데, 방귀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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