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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은 지도 어느 새 한달이 되어갑니다. 특별히 작년 12월부터 새해 한달은 격조했던 지인들을 만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멀게는 19년 만에, 가깝게는 10년 만에 서로의 근황을 묻는 자리였지만 한달음에 내달리듯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이 얼마나 오롯하고 쏠쏠했는지 모릅니다. 연말연시라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일을 하면서 한 해를 의미있게 시작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합니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는 법이지요. 물질적인 보탬 뿐 아니라 한마디 따스한 격려의 말도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는 사람에게는 붙들고 일어설 의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첫 만남부터 돌잡이가 딸린 ‘심란한’ 학생 부부에게 언제든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어주고, 아무 때나 배불리 먹어도 좋다며 부엌을 통째로 내 맡기는 후한 인심을 접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19년전 남편의 유학시절, 저희 부부에게 그런 훈훈함을 베풀어 준 가족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으로 성공을 했지만 그 때는 네살박이 딸 하나를 데리고 부부가 청소를 하면서 본인들도 이민생활에 채 정착을 못한 단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면서 그 분들의 고마움을 잊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한번 만나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적극성은 왠지 쉽사리 발휘되지 않던 차에, 이번 만큼은 마음을 달리 먹고 이런저런 수소문 끝에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수하게 고마운 마음 한 켠에 20년 가까이 일말의 부채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터라 막상 만나게 되니 그간의 변명부터 여차저차 늘어놓게 되었지만 정작 그 분들은 당시 우리 부부의 존재조차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고 했습니다. 처지가 비슷한 호주 신출내기들이 무시로 자기 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우리한테만 딱히 뭘 고맙게 해 주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난다는 말로 저의 다소간의 의도적 호들갑을 너그러이 받아 주었습니다.
몇년 전 한국의 어느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 오랜 여행 끝에 공항에 내렸을 때, 누가 그를 마중하러 나왔느냐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중 나온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도 결정되기 때문이라는군요. 마중 나온 사람이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세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탁 일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될 것이고,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금융과 관련한 일자리 정보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나를 마중한 사람은 물론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당장 머물 곳을 구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이어 ‘그러나 마중 나온 사람이 어떤 길을 제시하든 상황에 순응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맺었습니다.
글에서처럼 이민 생활에서는 맨 처음 만난 사람과 무슨 주술적인 운명처럼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말을 이따금 듣습니다.
경험이 전무한 백지 상태의 신생아처럼 살던 곳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땅에 다시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와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이런저런 조언을 무시할 수 없고, 그래서 자주 만나다보면 별다른 준비나 계획이 없을 때는 어느 새 그 사람의 사는 모양을 따라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좋은지 나쁜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더 살아봐야 알 일이지만 한마디로 ‘이민짬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분들도 ‘초짜’이던 우리 부부에게 본인들이 겪은 호주 생활의 조각이나 단면을 '들이대며' 은연중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를 기억조차 못하겠다니 우리의 길을 찾아가는 데 여하한 방해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글대로라면 제 가족의 이민 생활은 불길한 영향권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을 테니까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정식으로 이민 절차를 밟아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내렸을 때 우리를 마중나온 분은 몇 년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잡지의 글 그대로 공교롭게도 그 분은 당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연고가 없던 우리에게 당장 머물 곳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그후 그 분을 따라 금융업계에서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의 허망한 죽음을 갚을 대상이 없는 빚으로 여기며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되받을 생각이 전혀 없을 때가 베풀기의 가장 적절한 타이밍인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여리고 다치기 쉬운 처지일수록, 특수한 삶의 조건 속에 있을수록 주되, '깡끄리 잊어주어야' 그 상대가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데 진정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정녕 당신들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노라'는 19년전 그 분들처럼 말입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