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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하는 정치는 국민들이 정치인을 모를 때라고 합니다. 최근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남녀 인물로 정치인인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뽑은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이 어지간히 어렵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가 1위를 기록한 것은 5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존경 받는 사람이 몇 년 새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죠. 솔직히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에 한국인들 중에는 그를 안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은 지금 정치인을 마구 욕하고 있습니다. 정당들의 낮은 지지도도 그 증거의 하나죠. 지난 세밑을 앞두고 벌어진 국회의 공전사태는 우리에게 대의 정치가 무엇인가를 묻게 합니다. “원대한 국가의 비전보다 자당의 이익을 위해 쟁투하는 듯한 정치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요.
야당은 ‘MB악법’ 등등의 플래카드를 본회의장 안과 밖에 내걸고 거리의 시위대처럼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노조원들처럼 피킷 들고 행동하는 모양이 흉했습니다. 몇 달을 허송세월 하다가 달력의 끝장이 다가오자 ‘MB 악법’이라고 한데 몰아 반대하는 모양은 논리적인 정치가 아니죠. 시간은 우리나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일하면 선진국이 저절로 다가 온답디까?
물론 종부세 일부 위헌 결정이 보여주듯이 국회에서의 일방적인 법안 의결은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개헌하면 여야 충돌 완화 장치로 국회구조를 상하 양원제로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 행태를 볼 때 단원제로도 늘 다투고 국민들의 의사 반영에 늑장을 부리는데 상원까지 생긴다면 국민들의 불만과 의회의 비능률은 상상을 불허하겠지요.
한편으론 이렇게 국회가 투쟁으로 질척대는 것은 ‘위민(爲民)’으로 위장하여 언론의 주목을 끌려는 정치 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국민을 위해서’라는 이름을 달고 법안에 대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야가 대립하고 심의를 지연시키는 버릇을 고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20세기형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의 간접 민주주의에 정말 지쳤습니다. 그러니 여야 충돌로 국회가 늑장부리는 법안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국민 직접의결’ 제도라도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쟁점 현안에 대해 편파적인 미디어가 가세하여 여야가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분열을 향해 치달을 때에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이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광우병 촛불 시위 때 어느 사람이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했다는데 지금 필자는 우리 국회 ‘꼴’을 보면 간접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단언합니다. 나이 제한도, 선수(選數)제한도 없는 ‘철밥통’ 직업 정치꾼들의 정쟁에 국민들은 녹초가 되었으니 그 좋다는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 정말 해봅시다. 국민들의 직접 표결로… 그러면 ‘날치기’니 ‘정권 안보’니 하는 소리도 사라지겠죠. 언제까지 국민들이 일 안하는 국회, 국민 앞길 가로막는 의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는 없죠.
미래학자들은 1인 미디어의 발달로 거대 미디어가 영향력을 상실한다고 말합니다. 날로 심화하는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통치하는 새로운 정치 제도를 요구할 것이며 20-30년 뒤에 정당과 정치인은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똑똑한 개인들이 고비용 저효율의 바보 같은 제도에 정치를 위탁, 대행시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국민들이 전자투표로 직접 법안을 의결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강국이기도 하니 이를 앞당겨 지금부터 준비해 봅시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