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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없으면 쥐가 논다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12-10 15: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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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토박이’ 김치를 생산하고 있는 K 씨. 재작년 학교 급식 집단 식중독 파동으로 명확한 원인규명도 없이 줄곧 해 오던 대기업 김치공급이 중단되면서 요즘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적자로 사업을 그만둘까 하지만 20명 남짓한 직원들의 생계가 걱정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공장 구매식당 앞에 지난 여름 까칠한 도둑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꼴이 불쌍해 남은 밥과 반찬을 주자 고양이 새끼들은 때마다 식당 앞에 나타나 맛있게 밥을 얻어먹곤 했습니다. 중국산 김치에 밀려 날로 쪼그라드는 회사에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측은지심이 작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들도 염치가 있어야지 만날 공짜로 밥만 얻어먹으러 오냐?” 어느 날 직원 아주머니가 잔반을 주며 새끼 고양이들에게 한 마디 내뱉은 다음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점심시간에 새끼 고양이들이 쥐 한 마리를 잡아 식당 문 앞에 놓아두고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더라는 것입니다.

“이것 좀 봐요. 공밥 먹는다고 나무랐더니 이놈들이 쥐를 잡아 왔어요.” 아주머니의 수다에 온 직원들이 밥을 먹다 말고 뛰어 나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파렴치하다고 믿었던 도둑고양이의 보은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고양이 새끼들은 그 때부터 푸짐한 식사 대접을 받으며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고양이 간의 단순한 관계개선 만이 아니라 그 이후로는 공장 안팎에 설쳐대던 ‘토박이’ 쥐들이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김치 재료의 안전한 보관과 위생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 것입니다.

겨울 문턱에 접어들면서 새끼 고양이들은 뽀송뽀송한 털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공장 안팎을 쏜살같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사람 눈치 보는 일도 없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K 씨는 “먹이사슬의 위력도 놀랍지만 작은 사랑이 큰 기적을 낳을 수 있다는 경험을 얻게 돼 숙연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고양이에 얽힌 이야기는 서양 쪽이 더 많습니다. 김흥식의 "세상의 모든 지식"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14세기 중엽 영국의 글로스터(Gloucester) 마을에서 태어난 딕 휘팅턴은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었습니다. 살붙일 곳조차 없었던 그는 소년이 되자 런던으로 갔습니다. 쫄쫄 굶다 어느 집 앞에서 잠이 들었는데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 그를 거두어 주었습니다.

당시 한창 날리던 무역상이었던 집주인 휴 피츠워렌은 휘팅턴에게 다락방을 내주고 심부름을 시키며 상술을 가르쳤습니다. 다락방에는 늘 쥐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휘팅턴은 구두를 닦아 번 돈을 털어 고양이 한 마리를 샀습니다. 그 날 이후 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피츠워렌은 어느 날 수하 사람들에게 동방으로 보내는 무역선에 가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무엇이든 투자하라고 권했습니다. 뱃삯도 받지 않고 그 상품으로 생긴 수익은 모두 돌려준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휘팅턴은 유일한 재산이자 정이 든 고양이를 동방행 배에 실어 보냈습니다.

심한 풍랑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무역선은 가까스로 낯선 항구에 닿았습니다. 외지인을 자주 만나지 못했던 그곳 지배자는 선원들에게 후한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요리사들을 총동원해 산해진미를 준비한 연회는 사람들이 수저도 들기 전에 쥐들의 잔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쥐를 그냥 두십니까?”
“우리는 쥐를 없앨 재주가 없다오.”
“그러면 고양이를 기르십시오.”
선원들은 즉시 배에 싣고 온 고양이를 데려와 풀어 놓았습니다. 오랜만에 고기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금방 쥐 몇 마리를 잡아 숨통을 끊어놓자 연회석의 쥐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쥐 사냥 광경에 넋이 나간 지배자는 막대한 사례금을 주고 고양이를 샀습니다. 이렇게 해서 휘팅턴은 일확천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피츠워렌의 딸을 아내로 맞은 그는 런던 시장을 네 차례나 지냈으며, 훗날 리처드 휘팅턴 경(sir)이라는 칭호도 받았습니다.

피츠워렌으로부터 배운 상술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휘팅턴은 죽을 때까지 자식이 없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6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영국에는 그가 남긴 재산으로 세워진 병원, 구제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거주지 등이 숱하게 있고 활동도 활발하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유난히 쥐가 많습니다. 국고를 축내는 쥐, 무리지어 다른 무리를 물어뜯는 쥐, 훔친 물건을 나눠 먹으며 생색내는 쥐, 나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쥐들까지 우글거립니다. 쥐덫도 쥐약도 교묘히 피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쥐들 말입니다. 곳간과 공장도 지키고, 고장과 나라를 살릴 고양이는 없을까요?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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