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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연세에는 이런 스타일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요."
'헉~, 왠 어머님!'
흠칫 놀란 저의 당황스런 신음 소리였습니다.
엊그제 미용실에서 제 머리를 다듬어 준 미용사가 저더러 연신 '어머님'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여곡절 끝의 극적인 모녀 상봉일 리는 만무하고 젊은 미용사 눈에 제가 그만큼 나이들어 보인다는 뜻이었겠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인 가게나 미용실에 들를 때면 '이모'나 '언니'라고 했는데 이제는 급기야 '어머님'으로 불리기 시작하나 봅니다.
하기사 피 한 방울 나눈 적 없이 '이모'가 되고 싶은 맘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누구 맘대로 내가 지 언니래?'하고 '언니'라고 불리는 것에도 고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이모'나 '언니'에는 나이 개념은 없었는데 '어머니'는 누가 들어도 연장자임을 내포하는 호칭인지라 '아니, 벌써!'하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 노므 호칭이 문제인 거라, 호주처럼 나이, 신분 구분없이 죄다 이름을 부르면 좀 좋아.'
기분이 상해서 얄궂은 한국의 호칭 문화에다 대고 화풀이를 해봅니다.
전에 한국 가서 보니 40대 이상 중년 아저씨들은 무조건 '사장님'이더군요. 하도 지나쳐서 짜증도 나는데다 무심코 넘기기에는 당사자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서울 언니 집에 머물던 어느 날 저녁, 직장에서 돌아온 형부는 그날, 호칭과 관련하여 민망함의 극치를 경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부는 그 날도 예의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꼬박 '사장님, 사장님'이라고 자신을 부르더랍니다.
그러지 말라고 하자니 무안해 할 것 같고, 그냥 듣고 있자니 주위 사람들이 킥킥대고 웃는 것 같아 그야말로 함께 있는 내내 황당해서 어쩔 줄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형부는 치과의사입니다. 건물 외벽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 ○○치과'라는 간판을 써붙이고 진료를 하지요. 그날 그 사람도 그 간판을 보고 들어왔을 터인데, 그럼에도 흰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 꼬박꼬박 사장님이라고 불러댔다는 것 아닙니까.
첫마디 실수도 아니요, 그렇다고 작정하고 약 올리자는 건 더욱 아닌 것 같아 은근히 그 환자의 직업이 궁금해지더랍니다. 사장 소리가 습관적으로 입에 붙지 않고서야 어찌 제 이를 고쳐주고 있는 의사를 아무 생각 없이 사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어 기가 찼던 게지요.
그런가 하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절반은 여자이고, 그 여자들 중에 얼추 반은 아줌마들이건만 '아줌마'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거의 '불경죄'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단언컨대 같은 아줌마들끼리도 시침 뚝 떼고선 서로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만 가면 '아줌마' 소리를 듣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역 내에서 느닷없이 "아줌마!" 하는 또렷하고 낭랑한 음성이 쨍하니 울려왔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줌마'였습니다.
'누군지 어지간히도 '아줌마스러운'가 보다. 요즘 세상에 아줌마 소리를 다 듣고.'라며 비웃음을 머금는 순간, "아줌마, 시내로 가려면 어느 쪽 지하철을 타야 되나요?" 하며 상큼한 아가씨 하나가 제게 길을 물어 왔습니다. 아, 그 '아줌마'는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대학생 차림의 해맑은 미소를 띤 여학생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우리시대 금지된 호칭인 '아줌마'를 입에 담고 있었습니다.
한순간에 일격을 당한 듯 저는 아찔해졌습니다. '저 학생의 눈에는 내가 제대로 된 아줌마로 보인단 말인가.'
그 아가씨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주인공 꼬마처럼 허위와 속임으로 어설프게 부풀어 있는 가식적 호칭세태에 신선한 일갈을 날린 것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아픈 법. 비로소 '나의 나'됨을 되찾는 순간, 오리무중 떠다니던 나의 정체성이 그제야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나를 아줌마라고 불러다오! '사장님'들도 어서 '아저씨'로 돌아와 한 쌍으로 정겹던 예전의 호칭 '아저씨와 아줌마'로 맘 편하게 살아봅시다!'
큰 깨달음(?)을 얻은 저는 이렇게 양심 선언을 한 후 그 때부터 착하고 정직한 아줌마가 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변변한 아줌마 소리 한 번 못 들어보고 급기야는 그만 '어머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아~, 제발 나를 다시 한 번 아줌마라고 불러주오!'
필자소개
신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