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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우리글
한글의 가치는 요즘 정보화시대를 맞아 빛나고 있습니다. 562년 전에 창제한 한글이 IT시대에 이렇게도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휴대폰에서 쪽글(문자메시지의 우리말)을 보내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글자보다 빨리 입력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영문자로 소리 값을 입력하면 나타나는 여러 글자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자를 입력할 때와 비슷한 방식이지요. 오직 입력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 다행일 터이니 속도는 들먹일 여지가 없습니다. 영문자 입력도 시간이 걸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휴대전화에서 영어로 내용을 보내 보십시오. 한글 입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빨라 다른 부작용도 생기기도 하지만.
한글의 큰 장점은 글자와 발음이 같다는 점일 것입니다. 영어 등 외국어에서는 같은 글자를 적어놓고 다른 소리를 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자와 발음을 각각 익혀야 합니다. 한글은 외국인이라도 닿소리와 홀소리 값만 익히면 발음하는 법을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을 살리기 위해서 같은 글자가 위치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두음법칙은 가급적 적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글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9월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서 한국어가 특허협력조약(PCTㆍPatent Cooperation Treaty)의 공식 공개언어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는 국제기구에서 한국어가 공식 언어로 최초로 인정 받은 사례입니다. 이제까지 국제특허 공개어는 영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의 8개였으나, 한국어의 채택으로 국제 공개어는 포르투갈어를 포함하여 모두 10개가 되었습니다. 2009년 1월부터 한글로 기술내용이 공개되고, 국제특허절차도 한글로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 속의 한글이 되었습니다.
한글을 더욱 자랑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한글을 물들이고 있는 일본식 표현을 걷어내야 하겠습니다. ‘…에 있어서’는 쓰지 않아야 할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이고, 이는 모두 ‘…에서’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것을 고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 말 우리 글"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후부터 책을 읽을 때 이런 표현이 나오면 지우고 고쳐 가면서 읽습니다.
‘현재 게시물 내에는 검색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간주차제가 해제됨을 알려 드립니다’, ‘9월은 재산세 납부의 달’, 이와 같이 써 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 대신에 ‘…검색된 내용이 없습니다’, ‘야간주차를 할 수 없습니다’, ‘9월은 재산세 내는 달’이라고 하면 더 쉽게 알 수 있고 자연스러운데 왜 그렇게 딱딱하고 어렵게 쓸까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지만 번역된 책을 읽으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글자로 적혀 있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원본이 그렇게 어렵게 되어 있나 싶어 직접 원본을 읽으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뜻이 이해되긴 하더군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제 추측으로, 번역자의 국어실력 문제일 것입니다. 번역은 국어실력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합니다. 우리 문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번역해야 하는데 외국어만 아는 사람이 번역한 탓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국어를 쓸 때에는 문법도 확인하고 단어가 맞는지 사전도 찾으면서 정작 한글을 쓸 때에는 우리 문법과 어법을 모르면서 확인할 생각조차 않고 자기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은 아닌가요.
다음 이유는 번역자가 사용한 원본이 진짜 원본이 아니었을 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깁니다. 혹시 원본 대신 일본어판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요?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우리말로 번역했다면 원본에서 그만큼 멀어졌을 것이니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 짐작이 갑니다.
한글을 가꾸고 키우기 위해 내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한글사전과 한글 문법이 옆에 있습니까? 이런! 제 옆에도 없네요. 지금 문법책 구하러 갑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mymail@patinfo.com
1958년 진주 출생. 진주고, 서울대 건축학과 졸. 건축시공기술사, 건축기계설비기술사, 변리사 자격 보유. 대한기술사회 회장과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 역임. 현재 행정개혁시민연합(행개련) 과학기술위원장,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국민실천위원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