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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형부!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10-06 0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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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6일 귀국하기에 앞서, 한국에 거주하는 가까운 친척과 일본에서 만나 다시 한번 나라(奈良)현의 세계 문화유산인 사찰들을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사카(大阪)에 일단 여장을 풀고, 나라현의 호류지(法隆寺)와 도다이지(東大寺) 등 사찰들을 둘러보다 너무 피곤해져 잠시 도다이지의 연못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던 중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뜻밖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던, 나에게는 형부이고 그녀에게는 시이모부가 되시는 분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자살을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던 집안에 단 한 번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강남에 거주하는 처조카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한 층 위에 살았던 형부의 죽음을 처조카 부인인 그녀가 최초로 목격했던 것입니다. 12층에서 투신하여 흰 천으로 덮인 그 모습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고, 그 고통을 누구에게 말도 못했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쏟아 놓았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해맑은 얼굴로 처음 우리 집에 오셨던 미남 형부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의 슬픈 운명 앞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KS마크는 아니지만 명문 S대학 S고교를 나오신 형부는 수재였던 걸로 압니다. 집안은 유복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생활이 어려워진 형부는 S대 재학 중 등록금이 없어 입대를 했습니다. 그는 복학 바로 전에 그분 어머니와의 연고로 우리집에 오셨고 저와 함께 한 여름방학을 보냈습니다. 이후 언니와 결혼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동시에 유수한 대기업에 입사하여 요직을 다 거친 후 정년퇴직했습니다.

보수성이 강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상당히 진취적이었던 그의 장점이자 단점을 말하자면 친구와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착한 그는 친구들의 융자 보증 등으로 큰 손해를 본 적도 많았고, 많은 친구들과의 술자리 계산도 항상 그의 몫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는 잠시 한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 형제 중 유일하게 형부의 술친구를 몇 번 해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친형제보다 더욱 형부를 존경하고 좋아했으며, 형부는 누구보다도 나를 진심으로 믿어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어서 그분께 갚을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정년 후 형부께서 술 대작할 친구 없으면 제가 돌아와서 친구해 드릴게요.” 일시 귀국해 살던 한국 생활을 다시 접고 떠날 때, 내가 드린 말씀에 기쁘게 웃으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로 자존과 자긍심이 강하시고, 한국 유수 기업의 장이었던 그 분이 정년퇴직한 후 5년, 아직 70도 안 되신 나이에 그렇게 쉽지 않은 투신을 하여 삶을 마감하신 겁니다.

두 달 전쯤에 토론토의 한인타운 크리스티 공원의 벤치에서 65세의 한국 노인 남성이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 정부가 주는 보조금만으로 살아온 그는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워진 데다 당뇨병까지 심해 그나마 쉬운 막일조차 구할 수 없어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토론토의 노인이 생활고와 지병으로 비관 자살한 것은 그나마 설득력이 있지만, 68세의 노인 형부의 자살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중산층 이상의 지성인으로 자녀 모두 다 결혼하여 손자손녀까지 있으며, 박사학위를 받은 장남과 외교관 가족인 딸이 돌아온 지 몇 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물론 그의 자살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년 후, 퇴직 전에는 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져 갔으며, 겉으로는 다복해 보였지만 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온 장남과 외국에서 돌아온 딸의 가족뿐 아니라, 서울에 거주하는 다른 자녀들도 아버지와의 만남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우정같은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부부간의 불화와 가족에게서 받은 소외감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던 걸로 여겨집니다.

이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일까요? 금전적 괴로움, 육체적 병고, 오직 그것 때문일까요? 어느 선생님 말씀대로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외로움’ 이것입니까? 아마도 가족, 친구에게서 받은 소외감과 외로움, 특히 가족들이 보여준 무관심은 그를 아파트에서 투신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게 몰고 갑니까? 엘리트 의식이 강하신 그 분이 왜 그렇게 처참한 방법으로 생을 끝내야만 했을까요?

자녀가 결혼하면 집장만 혼수 장만조차 연로한 부모가 해 주어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그릇된 인식과, 그걸 충족시키지 못한 부모는 부양 의무가 없다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젊은이들의 물질적 사고, 이제는 “시부모는 네 부모, 친정부모는 내 부모”라고 편 가르기까지, 극단적인 핵가족사회의 이기심이 우리의 아름다운 경로사상마저 땅에 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전화 한 통화마저 인색해진 대한민국 자녀들을 한국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와 우리 세대는 무엇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었으며 무엇을 그들에게 가르쳤을까요? 이웃끼리도 콩 한쪽을 나누어 먹는다는 한국인의 정서는 어디로 실종되어 버렸는지요?

나 역시 술친구 해 드리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못하였을 뿐더러 전화 한 번 변변히 드리지 못한 죄가 있습니다. 자주 전화만 해 드렸어도 형부의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 내가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해서, 깊이 후회한다고 해서 12층에서의 투신을 결심했던 그 날의 그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던 형부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건지요?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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