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바에서 본 한국의 인권 | 글 우종길, 사진제공 UN Photo/Pierre Virot
올해는 세계인권선언(이하 선언)이 채택된 지 60주년이 된다. 국제사회는 반기문유엔사무총장 주도로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년 내내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채택된 선언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확인하는 것으로, 각국 정부는 이를 근거로 자국 국민과 자국의 관할권 하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 선언의 내용을 준수, 보호하고 실행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도 60주년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선언에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선언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망라했기 때문에 당연히 도덕적 설득력을 갖는다. 국제법적으로 볼 때 '조약'이 아닌 '선언'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오늘날 선언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은 국제관습법으로서의 법적 효력을 갖는다.
또한 선언은 이후 유엔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권규약,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권규약,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협약, 여성의 차별 철폐와 권리를 보장하는 협약, 고문방지 및 처벌을 위한 협약, 인종차별금지와 철폐를 위한 협약, 장애인권리보호협약,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보호협약 및 강제실종금지협약 등 9개의 주요 국제인권조약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유엔인권위원회가 선언을 기초로 국제인권규범을 설정하는데 공헌한 것에는 이론이 없다 해도 실질적으로 인권규범을 이행하는 데 들인 노력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이에 더해 유엔인권위원회의 소위 '정치화'가 심화됨으로써 50주년 중반을 넘은 시점에 와서는 존립마저 위협받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 돌파의 방법으로 유엔이 채택한 길은 2006년 인권위원회를 유엔인권이사회로 새롭게 개편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유엔인권이사회는 이전까지 지역그룹 국가들이 추천한 나라를 자동적으로 회원국에 지정했던 인권위원회와 달리 개별 후보국의 인권 준수 의지 및 공약을 심사해 유엔총회의 투표로 회원국을 선출한다.
기존의 대표적인 국제 인권보호제도인 조약감시기구(treaty bodies) 및 특별보고절차제도(Special Procedures)를 강화하고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인권기구와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주된 변화 내용이다.
또 새로운 국제인권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모든 유엔회원국에 대해 4년마다 정기적으로 인권상황을 심사하는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다.
대한민국은 2006년 유엔인권이사회 초대 회원국으로 입후보하면서 다양한 자발적 공약을 제시했는데 여성차별철폐협약선택의정서 및 고문방지협약선택의정서 비준, 국제노동기구(ILO)의 주요 협약 비준, 인권보호정책수립 이행평가시 시민사회와의 협력 강화 그리고 인권교육 강화 등이다.
조약감시기구와의 적극적 협력, 국제인권제도와의 공조 강화 등도 포함돼 있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에게는 대한민국을 언제나 방문할 수 있는 초청장(standing invitation)을 내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공약은 국내 인권상황을 개선하고 그 수준을 국제적 기준에 맞게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는가?
지난 5월 우리 정부의 약속이행 사항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만났다.
우선 새로 도입된 유엔인권이사회의 UPR에 따른 정부 심의다. 정부는 외교통상부 차관을 단장으로 관련부처 실무자들을 포함한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또한 그동안 지적된 인권문제에 대해 해당 부처 실무자들이 꼼꼼하게 답변하고 필요시 보충설명을 더하는 등 성실한 태도를 보여 긍정적 인상을 남겼다.
UPR 심사시 대한민국 인권문제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권리, 이주노동자 인권, 장애인 차별, 여성 인권, 성적소수자 인권, 언론 및 집회결사의 자유 등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인권문제들이 골고루 지적됐다. 또한 국제사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33개에 이르는 권고안을 냈는데 구체적으로는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보장,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등이 모두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인권을 보호하며 당면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권고안에 대해서는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해서는 이 법이 남용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하며 전면 폐지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주노동자권리협약에 대해서는 국내법과의 충돌을 이유로 현재 비준할 의사는 없으나 기존 국내법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의 보건 및 안전을 보호하고 그들의 근로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답변에 대해 한국 NGO들은 정부보고서가 작성된 이래 정부의 변화된 인권정책을 분석한 자료를 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하면서 한국의 인권정책이 UPR보고서 작성 때보다도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두 번째 기회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조약이행 내용 심사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UPR 때와는 달리 상당히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우리 정부 대표들은 심의 전 제출한 국가보고서 내용과 전혀 다르게 답변하거나 동문서답함으로써 위원들로 하여금 사실관계 파악마저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들었다. 현장에 참석했던 NGO대표들도 정부가 과연 심의를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또 해당 심의조약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관해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양희교수가 유엔 산하 조약감독기구의 위원장으로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이 정부에는 더욱 쓰게 들렸을 것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각국의 국가인권기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국가인권기구에 취해온 태도에 대해 국제사회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새로운 유엔인권이사회는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인권기구가 국내인권 보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01년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한 점 그리고 한국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 A등급을 받은 점 등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올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편입시키려 했을 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인권기준을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이행하는 데는 소위 '파리원칙'이라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독립적 국가인권기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특히 긴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러한 우려는 단기간에 경제발전과 인권신장을 이룬 아시아의 모범국가로서 한국의 모델을 지향하고자 하는 다른 나라들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발생한 촛불시위 관련 인권침해 주장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국으로 돌리는 데 기여했다. 국제인권 NGO의 대표주자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조사관을 파견해 촛불집회 과정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한 것은 아마 아시아의 인권모범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인권이 퇴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암묵적 합의를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앞으로 특별보고관 제도를 비롯한 유엔인권 메커니즘이 촛불집회와 관련한 인권침해 사례를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에 문제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60년 전 선언이 탄생하던 해에 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