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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불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직장에 들어가고도 하루아침에 때려 치우고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거나 외국여행을 떠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을 바꿔 1학년부터 다시 대학에 다니기도 합니다. 무슨 큰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어느 날 “엄마, 나 학교 그만뒀다”하고 말한 여대생도 있습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을 듣고 자라온 세대에게는 생소하고 납득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과거에도 그런 사람은 많았습니다. 내 친구 하나는 사회생활 초년기인 1970년대부터 10여년 동안 수시로 직장을 바꿨습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명함을 주곤 해 내가 오히려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또 한 친구는 수없이 직장을 전전하다가 출판사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월급을 너무 많이 주어 거기에 안주할 것 같다는 이유로 또 그만두고, 신문사를 거쳐 방송사 PD가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래 전부터 꿈꿔온 ‘딴따라판’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예전에는 일종의 예외였지만,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이 된 셈입니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노마디즘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을 노마드족이라고 하는데, 정착민이 되기를 거부하는 유목의 삶은 현대사회의 문화ㆍ심리 일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 행위’라는 개념에 생각이 미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마드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25년 넘게 방송현장을 누비던 이긍희(62) 전 MBC 사장이 화가로 데뷔해 10월 2~8일 첫 개인전을 연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 나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림대회 입선은커녕 미술반에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4년 전 미술가인 신부님이 캔버스와 화구를 선물하며 그림을 권유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 내 그림의 가장 큰 주제”라는 이씨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묘미에 빠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송과 미술은 창조적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집단적이고 시스템적인 방송과 달리 미술은 개인적이고 표현이 자유로워 캔버스와의 대화에 빠지는 행복감이 크다는 것입니다.
시인 문희자(76)씨는 8년 전 남편 몰래 그림공부를 시작해 3년 전 대한민국 회화대상전에 특선 입상한 데 이어 각종 미술전 출품, 개인전 개최 등으로 새로운 이력을 쌓은 유명 화가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의 사회적 성공은 흐뭇했지만 ‘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년 퇴임 이후의 해방감과 허무감이 뒤섞여 있을 때 만난 그림의 세계는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숨어 있는 색을 발견하는 눈이 생겼다. 난초 잎에도 녹색 이외의 색깔들이 오묘하게 섞여 있더라. 늦게나마 그림을 배우면서 이제껏 못 보던 세계를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잇는 ‘관계’라고 합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남편은 음악가로 한 평생 살다가 65세에 소설가가 된 이강숙(72)씨입니다. 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피아니스트, 음악평론가, 교육행정가인 이씨는 대학에 다닐 때 폐결핵에 걸려 2년 휴학하는 동안 평생 불치의 문학병에 걸렸습니다. 음악을 하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오래 간직하고 살다가 환갑도 더 지나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숙명여고의 음악교사와 국어교사일 때 알게 된 남녀는 처음엔 음악과 문학으로 만나 이제는 문학과 미술로 새로 사귀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는 새로운 부부가 되었습니다.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무렵이면 더 주목을 받는 시인 고은(75)씨는 얼마 전 그림과 글씨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고 합니다. 몇 가지 시 작업을 마치는 대로 유화를 본격적으로 그릴 예정이라는 그는 “화면 전체를 여지없이 채우는 관능적 충만이 내 그림의 꿈”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아내가 내년쯤 화실을 지어준다고 약속했다는 자랑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한동안 한국의 전통 산수나 문인화를 멀리할 것”이라며 “이런 태도는 동과 서의 편향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자유”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어령(74) 전 문화부장관은 등단 50년이 되는 해였던 2006년에 시인으로 데뷔했습니다. 결국 시인이 되기 위해 50년 동안 글을 써왔다는 그에게 시는 미당의 전복과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서정주의 <시론>이라는 시는 ‘바다 속에서 전복 따 파는 해녀도/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물 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고 돼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까워서 하지 못하다가 이제 그 전복을 따려고 물 속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래 전에 써둔 시로 데뷔했고, 두 달 전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집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지난해 7월 기독교 세례를 받고 신앙인의 삶을 새로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치과에 가면 “평균수명이 길어져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치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은 결국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만 있으면 뭐합니까?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꿈을 가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고은은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가 베풀어준 은혜가 아니라 나의 내일이 유혹하는 꿈의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내일의 유혹을 찾아 자기 내부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한국일보에서 30여년간 근무하는 동안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주필로 일하며 신문에 ‘임철순 칼럼’을 연재한다. 사회현상에 대한 참신한 시각과 함께 감성적인 터치로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