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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그릇을 씻다가 갑자기 뿔이 난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몬트리올에서 토론토로 돌아오기 전에 호텔 근처의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일본식 해초 무침을 스시와 함께 사 먹었습니다. 해초무침은 3달러 40센트였습니다. 토론토로 돌아와 공항에서 귀가 길에 잠깐 한국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는데, 밑반찬 파는 곳에서 똑같은 일본사 제품에 용량도 같은 해초무침을 6달러 50센트에 팔고 있었습니다. 이 해초무침은 일본회사 제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마켓들이 조금씩 플라스틱 용기에 상인 임의대로 담아서 파는 것입니다.
그런데 몬트리올보다 물류 유통이 더 편한 토론토의 북쪽에 위치한 한국 식품점에서 왜 값이 3달러 이상 더 비싸냐 하는 것입니다. 조그맣고 납작한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는 제일 작은 분량으로 어제 사 먹은 곳은 몬트리올의 유명 호텔과 컨벤션 센터가 있는 시내 요지의 비싼 건물 안에 있는 일본식 패스트푸드 가게입니다. 몇 센트나 몇 십센트의 차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3달러 이상이나 차이가 납니까? 이 일본식 해초무침은 일본식 상급 식당에서도 전식으로 6달러 정도 받습니다.
금년 봄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거리에 대형 한국 식품점이 생겼습니다. 가까워서 즐겁게 시장을 보러 가곤 했습니다. 본사가 미국의 뉴욕에 있고 뉴욕에서 성공적인 식품점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형 슈퍼 안이 한산할 뿐 점점 손님이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이 슈퍼는 소비자의 심리나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인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매장의 입구 구조부터 고객들의 출입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물건을 잔뜩 입구에 쌓아 놓아 카트를 밀고 들고나기가 불편한 점등 매장 구성에서부터 상품 진열이나 가격이 다른 식품점과 비교하여 소비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객센터의 직원들도 친절하지 못했고 소비자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 하는 태도였습니다.
식품의 양도 문제입니다. 핵가족 시대에 맞춰 적당하게 한 끼 분량만큼만 포장하면 소비자는 냉장고에 오래 묵히지 않아서 좋습니다. 구입 가격도 부담 없어서 합리적일 텐데도 작은 포장을 찾으니 직원의 말이 이익이 안 남아 많은 분량을 포장한다고 합니다. 다른 슈퍼는 작게 포장해서 파는데 큰 대형 마켓에서 그렇게 팔아야 하는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80%의 메트로폴리탄 토론토 지역의 식품점에서 팔고 있고 소비자가 많이 찾는 브랜드들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몇 달도 안 되어 그런 상품들을 철수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상품들을 찾아 조금 더 멀리 있는 슈퍼에 가서 장을 한꺼번에 보게 됩니다.
물론 마켓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한국 식품회사가 생산하는 포장된 가공식품들은 일본의 포장식품에 비하여 너무 분량이 많고 크기만 합니다. 조사를 해 보면 거의 모든 포장 식품은 2인분 기준을 찾기가 어렵고 4인분 5인분 기준이 많습니다. 그러니 식구가 2인이거나 1인일 때 한 끼에 먹어 치울 수 없는 포장들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먹을 수도 없고 다시 나머지를 포장하여 냉장고에 넣는데 맛도 떨어지고 비좁은 냉장고도 문제입니다.
얼마 전 한국 신문의 기사를 보니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식품이나 소비재들이 한국에서 생산되어 파는 식품이나 소비재보다 더 싸다고 돼 있었습니다. 아기 기저귀 국산품 중형 한 세트가 2만~2만 7,000원인데 일본 상품은 2만원입니다. 또 일본 것은 기저귀 겉면에 아기가 대소변을 보면 파란 띠가 생겨 구별하도록 되어 있어 품질 면에서 훨씬 앞서고 있다고 합니다. 할인점에서 파는 일본산 된장이 1 kg에 6,530원인데 한국산은 4,000원대부터 8,900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점점 일본 상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일본 상품이 포장이나 위생에서도 더 믿을 수가 있으니 품질 좋고 값싼데 누가 우리 상품을 사고 싶겠냐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일 무역 적자폭은 확대일로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기업들이 책임을 지거나 개선하지 않고는 일본제를 찾는 주부들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며 기업의 상도덕 재무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부러운 것은 누구나 손쉽고 간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일본 슈퍼마켓의 합리적이고 위생적인 식품들입니다. 적당한 분량으로 냉장고에 오래 저장해 둘 필요 없이, 한 끼만 신선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작게 포장된 수많은 식품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것도 부러울 뿐더러 장을 보는 시민들의 자세 역시 일본의 민도를 보여 줍니다.
어느 때쯤이면 우리의 한국식품 마켓에서도 일본의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신선하고 위생적이며 합리적인 식품을 살 수 있을까요. 아니 그런 식품 구성만 부러운 것이 아니고 시장 보러 나온 일본 주부들의 태도도 부러웠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시장 보는 그들의 태도와, 마켓의 구매자들이 다니는 통로 가운데 물건을 실은 카트를 세워놓고 통행을 막아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우리 주부들의 태도가 대조되어 보입니다. 우리 주부들부터 변해야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필자소개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