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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앞 바다에서 고래의 감동적인 장례식이 관찰됐다고 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가 지난 6월말 포착한 장면은 숨지기 직전의 참돌고래를 다른 참돌고래 5,6마리가 머리와 등으로 수면 위로 밀어 올려 숨을 쉴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었습니다.
1시간 넘게 같은 행동을 계속했으나 늙은 참돌고래는 기운이 다한 듯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동료들은 해역을 떠났습니다. 참돌고래의 이타적(利他的) 행동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반 정치망 어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초청으로 구룡포를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태생이 내륙의 농촌이어서 아직도 바다와 친숙한 편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나가 정치망을 걷어 올려 싱싱한 생선을 주워 담는 작업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가지가지 자연산 생선요리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의 고래 이야기였습니다. 한 해 전 정치망에 밍크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로 걸려 횡재를 했는데, 나이 든 어부의 말이 고래는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리면 발악을 하지 않고 쉽게 삶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일정 간격으로 물 위로 머리를 드러내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정치망에 걸리거나 노쇠하면 물속에 빠져 죽는다는 설명입니다. 바다에서만 사는 고래가 물에 빠져 죽다니……. 함께 간 친구들 모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을 장엄하게 받아들이는 동물은 고래뿐만이 아닙니다.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는 알과 정액을 배출한 뒤 생을 마치고, 새끼 살모사는 어미 몸통을 뜯어 먹고 출생한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상아를 뽑아가지 못하게 늪 속에 빠져 죽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상아 해안은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그 중에서 고래는 죽어서도 온갖 유용한 재료로 이용됩니다. ‘맛좋은’ 고래 고기는 식용이나 소시지 재료 또는 사료로 쓰입니다. 고래 기름은 세제 기계유 의약품 등의 원료로, 턱뼈나 수염은 공예 재료로 이용되는가 하면 향료나 비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위도 있습니다.
은유적 표현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도 있지만, 고래는 그리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집단으로 서식하면서 부부애가 돈독하고, 먹이사슬을 벗어난 살육이나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초대어(超大魚)다운 금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추석을 맞아 장바닥을 누빈 정치인, 고향을 찾은 지도자들이 종족에 쏟은 애정과 헌신이 고래의 반만큼이나 될까 싶어서입니다. 피부로 민심을 읽었다는 사람들의 표현은 으레 ‘남의 탓’으로 끝나니 말입니다.
자기만 살기 위해 사소한 이익에 히죽대며 깝죽거리고, 남 잘 되는 걸 보면 이죽거리거나 깐죽대다가 심하면 딴죽까지 치는 작태가 이 가을에는 사라졌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말싸움으로 백성 등 터지게 하지 말고 고래수염만큼이라도 유용한 열매를 거두는 풍성한 계절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