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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본능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8-17 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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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南大川)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 속에서 부화(孵化)한 연어의 치어(稚魚)가 망망대해(茫茫大海)로 정처 없이 떠나지만 그 중의 일부는 성어(成魚)가 되어 산란을 할 때가 되면 태어난 보금자리를 다시 찾아 생을 마감하는 희한한 광경을 우리는 매년 봅니다.

조물주가 만든 이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조화는 연어 외에 제비나 진돗개 같은 날짐승이나 포유동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우리 인간의 사회생활에서도 종종 화제에 오릅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정부청사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유 장관과 인사를 나눈 후 반 총장은 과거 자기가 손님을 맞을 때 항상 앉았던 장관 자리로 가려다가 당황한 직원의 안내로 손님 자리로 옮겼습니다. 누군가가 반 총장의 귀소본능이 발동한 것이라고 해 좌중을 웃겼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이지만 만물의 영장(靈長) 인간에게도 중국 고대의 유명한 문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비롯해 노후에 그리운 옛 보금자리를 찾아가 삶을 마감하는 선인의 애기가 많이 전해져 왔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벼슬자리에 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면 서울을 떠나 낙향하는 선비들도 많았던 탓인지 지금처럼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정도로 수도권에의 폭발적인 인구집중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말년에 가까운 1940년의 어느 인구통계에 의하면 지금의 서울이 경성(京城)으로 불리던 당시의 인구는 77만이었다고 하니 1,000만이 넘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광복 후 급속한 산업화의 진행으로 농촌의 공동화가 심화되면서 우리사회에서 고향이라는 말의 뜻이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한 사람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저 자신 태어난 곳은 일본이었지만 교육은 한국에서 받아야 한다고 외가가 있는 경남 남해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다음 5년간은 진주에서 하숙을 하며 중학교(현재의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광복 후의 혼란기에 약 1년 남해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곧 부산에 일자리를 얻어 다시 객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휴전 후 환도하는 직장을 따라 서울에 온 것이 결국 저를 고향을 아주 등지는 타향살이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원 고향은 경기도 개성이었는데 중앙정부에서 일하던 조선 말엽의 혼란기에 모종의 난을 피하기 위해 임시로 경남 고성(固城)에 거처를 옮겼다가 한일합병으로 그냥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계(家系)의 기구한 역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종가의 3남이었던 아버지는 광복 전 일본에서의 일자리를 접고 귀국하여 저의 외가가 있던 남해에 분가하여 그곳으로 본적을 옮겼습니다.

그러니 누가 저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언제나 약간 당황하게 됩니다. 지금도 종가의 종형은 고성에 계시지만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그곳을 고향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원적만이 남아 있으나 7년 정도밖에 산 적이 없는 남해를 고향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행정 편의 상 본적마저 옮겨 50년 이상 살아 온 서울을 고향이라 불러야 할지 마음의 혼란을 겪는다는 뜻에서입니다.

비록 본적은 서울로 되어 있지만 물론 서울을 고향이라 부를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전후 7년간만을 생활한 남해, 종가가 있지만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고성, 그 둘 중 어느 곳을 고향이라 소개해야 할지, 그렇다고 할아버지 고향인 개성을 들먹일 수도 없어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복잡한 심정을 가지는 분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1,000만을 헤아리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1세대는 그렇다 치고 이남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손들은 출생지가 곧 그들의 고향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많을 것으로 추산되는 직장관계로 타향살이를 오래 하다 아이들 교육문제 등으로 결국 큰 도시에 정착한 분들은 또 어떻겠습니까.

경남 하동(河東)이 고향인 어느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한 30년 산 고향을 떠나 직장관계로 각지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서울 근교에 살고 계십니다. 이 분이 아직도 고향에 남아 계시는 딱 한 분의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 위하여 얼마 전 고향을 찾았다고 합니다. 다방에서 만날 약속 시간이 좀 남아 있어 그 동안 1시간쯤 시내를 산책했는데, 그러는 동안 아는 사람을 한 분도 못 만났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고장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광복 후에는 그의 모교와 한 중학교에서 몇 년 동안 교단에도 선 경력을 가진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의 시골이라면 이제 노랫말 속에 나오는 “코스모스 반기는 정든 내 고향”이라는 정취를 기대하고 찾아갈 옛 보금자리는 오직 자기 머리 속밖에 없다고 개탄하셨습니다. 타향에서 노후를 보내는 농어촌 출신 분들 중에서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어찌 이 선배 한 분 뿐이겠습니까?







필자소개



황경춘


-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 TIME 서울지국 기자
-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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